[들어가는 글]
(1)이사야 49장은 메시야가 장차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구원하실 것이며, 메시야가 인류 구원을 위해 당하실 수난과 승천을 예언했다. 또한 메시야가 열방에 포로되었던 자들을 구원하고 시온의 영광을 회복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2)메시야의 오심은 작게는 이스라엘의 회복이며, 더 나아가 이방의 빛으로 오셨다. 이스라엘이나 이방인들은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가?
1.성도는 존귀한 자이다.
1)사49:5, 하나님은 나를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종으로 지으셨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존귀한 자)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2)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영화로운 자, 가장 존귀한 자다. 그 이유는.
(1)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시2:7)
찬양 가사중에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잡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 하시네...너는 내 아들 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 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2)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았다(벧전1:18-19)
우리는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다.
(3)우리는 상속자다(롬8:7).
하나님의 자녀는 상속자다. 상속자에게는 부모의 모든 권리를 물려받는다. 효도를 잘 했기에 주는 것이 아니다. 자녀이기에 주는 것이다. 이것이 특권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늘의 축복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영적 자녀가 된다. 자녀에게 하나님의 부요한 은혜를 부어주신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미 부활의 영광을 보증받았다. 천국을 선물로 이미 받았다. 이 땅 살면서 때로는 고난을 당해도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는 것”이다. 시편기자는 “내게 고난은 나에게 유익이라”(시119:71)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은 그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고난이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고난 중에도 즐거워한다. 고난이 없다면 우리는 인내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연단 곧 고난을 통과한 자의 성숙한 삶과 성품을 지닐 수 없다. 고난 때문에 우리 속사람은 날로 강건해진다. 인내하는 사람에게 고난으로 인한 고통이 클수록 하나님의 위로도 그만큼 더 풍성합니다(롬5:1-4).
2. 성도는 택함 받은 존귀한 자다
(1)나는 택함 받은 존귀한 자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2:8). 이것이 우리의 적 신분이다.
(2)다윗은 목동에 불과했던 사이드 인생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2번째 왕으로 선택받았다. 다윗의 형들은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왕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사무엘도 이새의 장자 엘리압을 보고 감탄을 했을 정도이다.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삼상16:6). 그런데 하나님의 눈에 자격 미달이었다. 하나님은 엘리압을 보고 평가하기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다”고 했다. 이새의 아들 7명이 모두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중 8번째인 다윗을 선택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은 다윗이니라.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다윗은 일생동안 그 은혜를 잊지 않았다.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인생의 최고의 행복이라는 것을 고백했다.
(3)사도바울의 트래이드 마크가 있다. 서신을 보내면서 항상 서두에 쓰는 인사말이 있다. 은혜와 평강이란 단어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강조한 단어도 은혜이다.“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사도바울에게 은혜라는 단어가 매우 소중했다. 사도바울은 12사도에 포함되지 않았다. 사도바울은 극적으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다메섹으로 예수의 추종자를 잡으러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 만남 이후 이방인의 사도로 일생동안 쓰임받았다. 그 은혜를 알기에 사도바울은 마지막 순간까지 선교의 현장에서 자신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했다. 어떤 사도보다 더 많은 일을 했지만 자신을 자랑하지 않았다. 오직 예수님만 드러냈다. 사도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강림과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재림을 강조했던 복음주의 신학자, 선교사, 목회자였다.
(4)선택받았다는 것이 이렇게 큰 기쁨이고 축복이다. 성도는 선택받은 존귀한 존재다.
저는 확신한다. 본푸른교회는 선택받은 교회다. 하나님이 오래전에 이미 아시고 토평동 한강변에 자리를 만들어주셨다. 우리가 능력이 있고, 예지력이 있고, 통찰력 있고, 어떤 정부정책을 미리 알아서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해주셨다. 그리고 이곳에 자리를 잡게 해주셨다. 이것이 은혜다.
(5)저도 개인적으로 선택받은 사람이다. 굴곡진 인생을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이 저를 선택해주셨다. 그리고 영적인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 세월이 30년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모든 방황이 끝났다.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저주했던 나의 삶의 자리들을 더 이상 저주하지 아니였다. 그때부터 성령님께서 내 안에 꿈을 주셨다.거룩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날마다 비전을 주시고 플랜을 주시고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
선택받았다는 그 확신 하나가 인생의 길을 바꾸어 놓았다.
(6)우리는 존귀한 자, 영화로운 자다.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았다. 보배로운 피로 속죄함을 받았다. 우리는 부요함의 영적 축복을 받았다. 미래가 보장된 축복을 이미 받았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