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 성령 사건은 예루살렘을 떠들썩하게 했고, 사람들은 놀랬다. 성령의 임재 사건은 인간의 언어로 지식으로 해석이 불가능한 초자연적 현상이었다. 그 현상을 보고 믿지 않는 무리들은 ‘새술에 취했다’고 조롱하며 비난하고 폄하했다.
성령충만한 베드로와 열한 사도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말했다. 120명의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의 임재를 분명하게 해석하여 알렸다.
(1)“우리는 술 취한 것이 아니다”(15절).
"때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15절). 삼시는 이스라엘 시간표로 계산하면 오전 9시에 해당된다. 베드로는 반문한다. 오전 9시에 이 많은 사람들이 술에 취할 수 있겠느냐? 베드로는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렸다.
(2)성령강림은 선지자 요엘의 예언이 성취된 사건임을 전했다(16-20절).
사도행전 2장 16절에서 20절까지 말씀은 요엘서 2장 28절에 기록된 말씀이다.
그 첫 번째 예언의 핵심은 성령 강림은 ‘말세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행2:17).
하나님은 말세에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요엘서의 예언을 인용하며, 지금이 바로 ‘말세(종말의 시대)라고 선포한 것이다. 즉 성령 강림은 말세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다. 말세는 종말이 당장 온다는 의미보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새로운 시대 곧 성령의 시대, 교회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두 번째 예언의 핵심은 “말세에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한다.”
말세에 일어나는 성령의 사건은 누구에게,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아들들과 딸들이 예언하고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이 꿈을 꾸며
남종과 여종에게도 성령을 부어 예언(행2:17,18).
말세에는 성령의 보편적인 임재가 나타난다. 구약에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주의 영이 임해서 그 임무와 사역을 감당했다. 그러나 말세에는 성령이 누구에게나 임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남녀노소, 계급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성령이 주어진다. 하나님이 직접 주권적인 역사로 시대를 움직이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신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누구나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놀라운 주의 뜻과 계획의 거룩한 동참자로 쓰임을 받는다. 말세에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나 큰 위로이며 도전이 되지 않는가. 성령은 특별한 사람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사모하고 부르는 모든 자에게 임한다.
말세에 젊은이들이 환상을 본다고 했다. 환상이란 히브리어로 "하존"(חָזוֹן), 헬라어로는 "호라마" (ὅραμα)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각적으로 또는 마음의 눈을 열어 보여주시는 초자연적인 계시를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환상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거룩한 그림’이다. 하나님의 계획, 소명, 방향, 미래를 마음과 영으로 보는 경험을 말한다. 젊은이들이 세상 술에 취해 방탕하며 낭비하며 허송세월하는 인생들이 많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새술인 성령에 취하면 환상을 본다. 환상을 보게되면 관점이 바뀐다. 현실을 너머 하나님의 계획을 보게 된다. 소명의식이 생긴다. 인생의 목적이 뚜렷해지고,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받은 환상대로 살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순종과 결단이 뒤 따른다.
한 젊은 크리스천 창업자가 있었다. 그는 새벽기도 중 “많은 사람들이 헐벗고, 억눌려 있으며, 고된 일에 시달리는 모습”을 환상으로 봤고, 그 가운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장면이 보였다.“이들을 자유케 하라.” 그 후 그는 기독교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기업문화를 만들기로 결단하고, 공정 무역, 복지 중심의 회사를 세워 일터 자체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사역자가 되었다.
성공한 기독 실업인이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우리 가정과 오랜 믿음의 교제를 함께한 소중한 분이다. 사업이 실패하고, 그것으로 인해 원치않게 오랜 시간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다. 변변한 일자리가 없었다. 그런데 인생에 새로운 계기가 찾아왔다. 새벽기도에 나가면 강대상에서신 예수님이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아내 권사님에게 환상을 이야기했더니 우리 남편이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제는 정신줄을 놓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새벽기도 드릴 때 마다 한 동안 그런 환상이 반복되었다고 한다. 직장이 없는 상황이었다. 평소 잘 알고 있던 지인이 부동산을 하고 있었다. 그 분이 함께 부동산하자고 제안했고, 그 당시는 부동산 경기가 최악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연속적으로 생겼다. 부동산 전문가도 아닌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셔서, 손님을 만나면 계약이 척척 이루어졌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 않는가?
하나님은 주의 자녀들에게 말세에 성령을 물붓듯이 부어주신다. 성령을 받으면 일터가 새로워지고,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다. 성령은 누구에게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성령은 한계가 없다. 성령충만하면 사역이 제한이 없다. 성령을 원하고 사모하는 분들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강력하게 부어주신다.
세 번째 예언의 핵심은 ‘말세에는 임박한 심판의 징조’가 있다.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19,20절). 하늘과 땅의 기사와 징조(피, 불, 연기),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이미지들은 분명 두려운 종말의 징조이다. 이런 단어들은 종말론적 말세의 징조를 나타내는 상징 코드이다. 이런 현상은 말세임을 선포하는 경고적 단어이다. 그러나 초점이 중요하다. 두려움과 공포냐? 아니면 구원이냐? 어디에 더 강조점을 두는가에 따라 말씀을 해석하고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단순히 말세에 심판의 공포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하나님이 설정한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말세에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늘날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지진, 해일, 기근, 전염병, 전쟁, 자연환경오염,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 폭설, 폭우, 불, 등 수많은 위협들이 인간의 터전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상황앞에서 그럼에도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보고 있는가? 종말의 순간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민족을 구원하고자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마음이다. 종말론적 말세교회공동체가 지금이야말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살아야 할 때가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