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는 오순절에 성령을 체험하였다. 성령을 체험하기 전 그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사람이었다. 갈릴리 호수는 그가 청년 예수를 처음 만났던 장소이며, 예수님께로부터 '장차 반석'이 될 것이라는 꿈과 비전을 받은 곳이었다. 그 부르심 앞에서 그는 어부로 살아왔던 삶의 모든 도구를 내려놓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예수님의 제자로 보낸 3년 6개월은 베드로에게 있어서 인생의 절정이었다.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그 꿈은 한순간에 산산조각났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참히 죽임을 당하신 것이다. 그 사건은 베드로의 모든 기대와 희망을 무너뜨렸다.
절망에 빠진 그는 갈릴리 호수로 돌아가 다시 어부의 삶으로 회귀하였다. 그 시간은 배신의 고통과 깊은 절망의 시간이었고, 베드로의 내면은 무너져 있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어부생활하고 있는 갈릴리 호수로 찾아오셨고, 세 번 같은 질문을 하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왜 세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셨을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동일한 질문을 세 번 하심으로 그를 회복시키고자 하셨다. 베드로는 대답하였다.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양을 치라.”
부활하신 주님은 다시 한 번 베드로를 부르셨다. 그리고 오순절 날, 베드로는 성령을 체험하였다. 그 사건 이후 베드로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제자로서의 권위를 회복하고, 열두 사도 중 가룟 유다 대신 맛디아를 제비뽑아 세웠다.
성령 체험 후, 사람들은 제자들을 향해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당당히 일어서서, 이 사건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요엘서 2장28절이하에 기록된 예언의 성취라고 증언하였다. 그는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전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그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신다.” 성령 강림은 말세의 시작을 알리는 하나님의 신호였다고 외쳤다.
말세에는 자녀들이 예언하고,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며,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고 하셨다. 모든 종들에게도 성령이 부어지며, 그들도 예언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즉, 성령 충만은 특정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모든 육체에게 주어지는 은혜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말세에 그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시는가? 이유는 단 하나이다. 성령을 받으면 담대해지고, 하나님의 증인이 되기 때문이다. 증인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영혼 구원이다.
베드로는 담대히 외쳤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사도행전 2:21).
성령을 주시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영혼 구원이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고 외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이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매주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만, 구원의 복음을 말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다. 복음의 핵심을 잃어버리고, 예수님에 대해 확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해서 침묵한다면, 과연 그 사람이 진정 주님을 만났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외침을 잃고 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점점 잊어가고 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이 확신을 고백하지 못한다면, 지금 내 신앙을 점검해봐야 한다.
베드로의 인생은 성령을 받기 전과 성령을 체험한 후 완전히 달라졌다. 그의 언어가 달라졌고, 삶의 중심이 달라졌다. 그는 어디에서든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 그리고 재림을 당당히 선포하였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랑하였다. 예수님의 이름은 베드로 인생 최고의 무기가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기독교의 핵심은 구원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구원은 ‘물에서 건져내다’는 뜻이고, 성경적인 의미는 ‘죄로부터 건져내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를 건져내시는 분은 누구신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셨다.
바울 사도는 외쳤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24).
절망과 내면의 깊은 상처와 죄악의 덩어리에서 건져낼 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을 믿을 때에 가능하다. 다른 이름으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길을 하나로 정하셨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태복음 28:18).
하나님은 예수님께 모든 권한을 위임하셨다. 예수님의 이름 없이는 인생의 진짜 성공도 없다. 진짜 성공을 원한다면 예수님의 이름을 붙들어야 한다. 이것이 능력이다. 모든 지혜와 권능과 재물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담겨 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고 하찮게 여긴다면, 그 사람은 아직 성령 충만하지 못하고 종교인에 머물러 있는 증거이다. 우리는 살아도 죽어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외치고, 고백하고, 선포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증인의 삶이다.
예수님의 이름이 단순히 문장의 장식이나 기계적인 언어에 불과하다면, 그런 글이나 말은 아무런 효능이 없다.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라. 진짜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복음을 전한다. 이런 제자들이 진짜 성공한 그리스도인이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