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본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더니”(행2:31)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가?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를 지난 주일 말씀으로 나눴다. 부자나 거지나 다 죽는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원할 것 같은 인생도, 어느날 죽음의 문턱에 서 있으면 나약한 존재로 전락한다. 죽음은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죽음은 모든 활동의 멈춤이다. 삶의 모든 계획을 내려놓는 순간이다. 스스로가 아니라 생명의 창조주로부터 강요당한다. 그래서 죽음은 두려움이고 공포이고 인간의 약함을 드러낸다. 죽음의 손님이 찾아오기 전에는 인간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 물질, 쌓아올린 업적 등으로 인해 대단한 존재임을 스스로 말한다. 그러나 죽음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해진다. 죽음앞에서 더 이상 자랑할 것이 없다. 죽음의 손님이 찾아오면 지금까지 쌓아올린 인생의 탑이 그리중요하지 않다. 그때부터 깊은 불안과 고민의 세계로 들어간다. 죽음 이후에 나는 어떻게 될것인가? 가장 원초적인 질문앞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가 마주한 사도행전 2장 31절은 바로 이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적인 응답이다. 이 말씀은 다윗의 시편(시편 16:10)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해석하며, 죽음이 끝이 아님을 선언한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 썩음을 당하지 않으신 그리스도, 그분의 부활 안에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있다.
●“미리 본고로”: 구약 전체가 예언한 메시아의 부활
3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미리 본고로”[ προϊδὼν (proidōn),προ(pro, "앞") + εἶδον(eidon, "보다")의 합성어, "미리 보고", “앞서 본”]. 미리 본 고로 라는 의미는 '예언적으로 미래 사건을 앞서 보다'는 의미이다. 베드로는 아주 분명히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래된 약속, 예언의 성취라는 것이다. 미리 보았다고 전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에 이미 써 있다고 증언하는 것이다.
“주는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이다.”(시16:10).
"그가 자기 영혼을 속건제로 드리기에… 그는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사53장).
구약의 제사 제도가 있다. 속건제는 배상이 가능한 죄를 말한다. 하나님께 대한 부정, 또는 이웃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 그 잘못을 속죄하고 보상하는 제도이다. 속건제는 회복과 보상에 강조점이 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속건제물로 드렸다는 것은 우리의 죄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하나님께 드려진 보상과 회복이다.
하나님은 구약 전편에 걸쳐 메시아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그 후의 부활과 영광을 끊임없이 예고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었고, 그분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십자가는 계획이었고, 부활은 그 완성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으실 메시아를 준비하셨고, 그를 다시 살리심으로 인류를 새 생명으로 부르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의 중심이다. 구약이 그를 예언했고, 복음서가 그를 증언하며, 사도행전이 그를 선포했다.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예수님은 죽음을 통과하셨으나 죽음에 머물지 않으셨다.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이 구절은 예수님이 진짜 죽으셨다는 것을 먼저 인정한다.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실제로 죽으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무덤에 장사되셨으며, 사흘을 보내셨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분이 거기 머물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분은 “음부에 버림받은 자”가 아니라, “죽음을 꿰뚫고 나오신 분”이다. 사망 권세는 그분을 삼킬 수 없었다.
“나는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8).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예수님은 사망의 사슬을 끊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 이제 더 이상 죽음이 끝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성도의 부활의 보증이요, 첫 열매입니다. 죽음의 문이 닫힌 것이 아니라, 부활로 인해 활짝 열린 것이다.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썩을 몸에서 썩지 않을 영광으로
육체는 죽으면 썩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예수님의 육신은 썩지 않았다. 무덤에 계신 시간이 짧아서가 아니다. 그분의 부활은 단지 육체의 회복이 아니라, 영광의 몸으로의 변화였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고전15:42-44).
예수님의 부활은 새로운 존재의 탄생이다. 제자들이 만지고, 음식을 함께 드셨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인간의 몸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벽을 통과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셨다. 이는 부활이 단순한 소생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생명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의 썩어질 육신을 입고 오셨으나, 그 육신이 썩음에 머물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영원한 몸으로 변화시켜 주셨다. 우리의 소망도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썩지 않을 영광의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의 결말은 죽음은 끝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이 더 이상 공포, 허무가 아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주님이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강림할 때 부활의 영광체로 다시 살아난다는 영생의 약속을 주셨다. 그것을 예수님 스스로 보여주셨다. 신앙의 목적은 잘사는 것, 성공하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으로만 만족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부수적인 은혜이다. 가장 소중한 꿈은 저천국에 입성하는 것이다. 이 땅에 살면서 주어진 사명을 믿음으로 감당하다가 주님이 부르시는 날 기쁨으로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신앙인들에게 죽음이란 영원한 생명, 썩지 않을 몸, 죽음을 이긴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 이동의 시간이다.
●적용과 기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지식으로가 아니라 삶으로 믿고 있는가?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삶에, 부활의 생명력이 드러나고 있는가?
신앙의 목적은 영원한 천국에 입성하는 것이다. 준비되어 있는가?
●기도
부활하신 주님, 죽음을 이기시고 썩음을 당하지 않으신 그 은혜의 능력을 오늘 제 안에 부어주소서. 세상의 절망 속에서도 살아 있는 믿음으로, 부활의 생명을 전하는 자 되게 하소서. 죽음 이후의 소망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다시 살아나게 하소서. 오늘 이 하루 썩임을 당하지 않고 부활하신 주님을 고백하며 소망으로 채워가게 위로와 힘을 주소서, 가정과 일터들마다 영광의 은혜로 덮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