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다움의 회복(4) –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라(행 2:42)

  • 입력 2025.09.01 05:35
  • 수정 2025.09.01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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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장 42절은 초대교회의 네 가지 본질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고”,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쓴 것”이다. 초대교회공동체의 교회다움의 네 번째 특징은 “기도”이다. 초대교회가 능력 있고 건강한 공동체로 세워질 수 있었던 비결은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라”는 문장에 담겨 있다.

오늘 본문을 새벽에 묵상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내 마음에는 풀리지 않는 숙제들이 하나씩 쌓여가고 있다. 그 숙제들은 점점 무거운 짐이 되어 내 어깨를 누른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은 숙제 그 자체에 있지 않다. 내가 그 짐들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못하고 스스로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도, 신문사도, TBMC도, 투자도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지 않다. 그렇다고 완전히 안 되는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시원하게 잘 풀리는 것도 없다. 내 인생의 숙제들은 마치 나이테처럼 해마다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짧은 목회 인생을 되돌아볼 때, 분명한 경험의 자산이 있다. 그것은 문제 앞에 머뭇거리면 숙제는 쌓여가기만 하지만,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져가면 기적이라는 선물을 주신다는 사실이다. 이 단순한 원리가 기독교 신앙의 원동력이었고, 지금까지 내 삶을 지탱해 준 힘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기도해야 할 주제들을 그대로 쌓아두고 있다. 마치 숙제를 미뤄둔 학생처럼, 해결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아마도 내가 먼저 밀린 숙제부터 기도로 풀어내기를 원하실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내가 더 간절한 마음으로 그분께 나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오늘 아침, 내 마음은 이 한 문장에 붙들려 있다.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이 말씀은 내게, 그리고 오늘날 교회와 성도 모두에게 다시금 기도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강력한 부르심이다.

 

1. “오로지” – 한 마음, 한 방향

본문은 단순히 “기도했다”라고 말하지 않고, “오로지” 기도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헬라어로 proskartereō는 ‘끈질기게 계속하다, 전념하다, 몰입하다’는 뜻을 가진다. 이는 기도를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교회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로 두었다는 뜻이다.

120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의 말씀을 듣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한 장소에 모여 기도했다. 그 상황을 역사가인 누가는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행1:14).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이 말씀을 믿고 오로지 기도에 전념했다. 기도에 자신을 받쳤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교회다움은 다양한 활동보다, 먼저 한 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는 것에서 회복이 시작된다.

사도 베드로가 헤롯에 의해 옥에 갇혔을 때, 초대교회는 두려움 속에 흩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행 12:5)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의 기도는 형식적이지 않고, 오로지 한 마음으로 모여 끈질기게 드린 기도였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베드로를 옥에서 풀어 주셨다(행 12:7–11). 이것은 교회가 기도에 힘쓸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뀐다는 가장 분명한 사례이다.

“오로지”라는 언어를 묵상해보라. 인생에 얼마나 주님앞에 “오로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간절히 집중해서 기도해 본적이 얼마나 있는가? 인생에 한번은 불순물이나 잠념이나 인간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오로지 주님께 기도에 헌신해본적은 있는가? 초대교회는 오로지 기도에 자신을 받쳤을 때 오순절의 역사적 경험을 했고, 오로지 기도로 장벽들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선교가 가능하게 했다.

 

2. “기도” – 교회의 호흡

기도는 교회의 생명선이다. 개인에게 숨이 필요하듯, 교회 공동체에는 기도가 필요하다. 예수님도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40일 금식하며 기도하셨다(눅 4:1–2). 사도들도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모여 기도했다. 기도하는 곳에는 성령의 능력이 회복된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4:31)고 기록합니다.

교회가 능력을 잃는 것은 활동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도를 잃었기 때문이다. 기도 없는 교회는 무기력한 교회가 된다.

 

3. “힘쓰라” – 지속과 인내

본문은 “기도하라”에서 끝나지 않고, “힘쓰라”고 한다. 이것은 기도를 일시적으로,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끈질기게 인내하며 지속하라는 의미다.

성경에는 기도에 관한 말씀들이 너무 많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교회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길을 여시고, 사람을 변화시키시며, 막힌 담을 허무신다.

 

4. 교회의 기도의 힘 – 역사적 증거

초대교회는 기도로 옥에 갇힌 베드로가 풀려나고(행 12:5–17), 스데반의 순교 가운데도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 교회는 기도로 위기를 넘어섰다.

1973년 6월, 빌리 그래함 목사가 인도한 여의도 전도집회에는 약 320만명이 참여했고, 마지막 날인 6월 3일, 여의도 광장에는 약 1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모였다. 전도 집회 기간 동안 약 7만 2천 명 이상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고, 이 집회를 통해 많은 젊은이들이 목회자, 선교사, 각 지역 교회의 리더로 헌신의 결단을 했다. 전쟁의 상처와 가난 속에서 한국교회와 민족은 이 자리에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며 회개와 결단으로 무릎 꿇었다. 이 집회는 한국교회의 폭발적 부흥과 세계 선교를 향한 도약의 불씨가 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오늘 개인과 가정과 일터와 교회 공동체가 위기 앞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행동은 먼저 기도의 무릎을 회복해야 한다. 오로지, 끊임없이, 전심으로 기도하는 교회와 성도만이 교회다움, 교인다움을 세울 수 있다.

 

●적용과 결단

개인적으로: 매일 시간을 정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의 습관을 세우라.

공동체적으로: 교회의 모임마다 기도를 중심에 두라. 회의와 활동보다 먼저 기도하는 교회가되도록 힘쓰자.

영적으로: 기도가 응답되든 안 되든, 끝까지 붙드는 인내의 기도를 드리자.

교회다움의 회복은 사도의 가르침, 교제, 떡을 떼는 일 속에서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을 붙들고 움직이게 하는 힘은 기도이다. 오늘 우리도 초대교회처럼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쓰는 교회”가 되자.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양과 질을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들의 인생 가운데 분명히 일하신다. 이 사실을 의심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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