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3박4일간의 일정을 어떤 단어로 그 의미를 설명할것인가? 처음본 사람들, 학교도, 고향도, 직업도, 나이도, 거주하는 도시도, 교회도 일치하는 것이없다. 그러나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 그리고 게이트 시스템 회사와 이모저모로 연결되어,3박4일 함께 밥을 먹고, 한 호텔에서 머물고, 함께 모든 시간을 공유했다. 그런데 불편함 없이 잘 지냈다. 이제 우리의 시간을 추억으로 남기고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클로징 멘트을 했던 스루 현지 가이드의 마음에 스며드는 멘트가 떠오른다. 나는 어떤 단어로 홍콩의 일정을 묶어낼것인가? 운명, 필연, 인연, 시절인연(時節因縁, 때가 되어야 맺어지는 인연을 의미), 우연[(偶然), 해후(偶遇), 우연히 만난 상황] 등의 단어들을 떠올랐다. 이것을 평범한 한 단어로 말한다면 만남이다. 만남 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는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역사가 일어나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일어난다." 만남은 하늘과 사람을 이어가는 영적인 끈이며, 동시에 만남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살맛나게 이어가는 끈이다.
3박 4일 홍콩에서 가장 큰 추억은 만남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행복한 일은 없다. 가치관도, 생각도, 생김새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웃으며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만큼 큰 선물은 없다.
만남이란 신학적인 용어로 굳이 표현한다면 "섭리"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든 만남은 우연도 운명도 인연도 해후도 아니다. 가장 적절한 단어는 섭리이다. 섭리란 하나님께서 만남을 미리 예정하셨다는 뜻이다. 신앙인들의 모든 만남은 우연도 운명도 아닌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해야 한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나와 너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께서 너를 나에게 보내주셨다고 해석할 때 만남에 소중함을 키워갈 수 있다.
종교개혁자들의 후예인 청교도인들은 "성실"을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맡겨준 일”로 해석했다. 사람이든, 일이든, 구별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맡겨준 사람이고, 일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다. 여기서 자본주의가 태동된 것이다. 사람과의 만남에 등급을 매기고, 일의 형태에 따라 내가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한다면 이것은 성경적 가치와는 거리가 좀 멀다.
비즈니스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비즈니스의 내용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이 좋으면 묻지 않고 그 비즈니스에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던진다. 단순한 만남도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한다면 또 다른 깊고 견고한 관계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베드로는 어부였다. 베드로의 인생을 바꾸어준 사건이 있다. 예수님과의 만남이다. 베드로는 어느날 아침 갈릴리 호수가에 나타난 젊은 청년 예수를 만났다.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가복음 1:17). 그 한마디에 자신의 전부를 걸었다. 베드로는 즉시 “그물을 버려 두고 따랐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청년 예수의 부르심 앞에 이유를 달지 않았다. 내가 당신을 따르면 연봉을 얼마줄것인가?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것인가? 묻지도 않고 청년예수의 부르심앞에 인생 전체를 맡겼다. 그들에게는 결단이 있었다. 우리가 살면서 한번은 전부를 거는 그런 모험도 필요하다. 너무 안전한 길만 가면 기적같은 가슴 설레이는 일을 경험하기는 어렵다. 때로는 거룩한 길, 새로운 길에 자신의 전부를 내던지는 모험과 결단이 필요하다.
베드로의 인생에 시각을 열어준 단어가 있다. 예수님은 처음 만남에서 베드로에게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요1:42).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다. 그러데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베드로라고 지어주었다. 그 의미는 반석이라는 뜻이다. 너는 갈대가 아니라, 너는 조약돌이 아니라, 너는 모래가 아니라, 너는 반석이라고 불러주었다. 베드로 이름앞에 “장차”라는 단어가 삽입되어 있다. 이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장차란 앞으로 너는 반석이 될 인물이라는 뜻이다. 누구에게나 주님을 만나면 장차가 열린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장차가 있다. 오늘의 그 모습만 보고 사람의 가치를 등급 매기고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인간이기에 누구나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소중한 존재이다. 예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긍휼한 마음으로 대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인간이해이다. 무시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이 성경의 관점이다. 인간은 사랑받아야할 존재이다.
3박4일 일정, 참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 아름다운 기억들의 불씨들을 잘 살려내야할 책임은 거룩한 은혜의 숙제로 남겨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