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박요한(舊 박호용, 영어명 John Park,) 교수의 ‘요한학 시리즈 3부작’(Johannics Series Trilogy)이 아마존(Amazon) 킨들(Kindle)에서 영문판으로 출판되었다.
구약학자인 박 교수는 세 권의 주석서(창세기, 출애굽기, 에스겔 주석)를 썼는데, 몇 년 전 그의 요한학 시리즈 3부작이 쿰란출판사(사장 이형규 장로)에서 출판되었다. 제1권 『유레카ㆍ익투스 요한복음』(1056쪽, 2019년), 제2권 『요한복음에 비추어 본 요한계시록』(920쪽, 2020년), 제3권 『아자브 신학과 요한 르네상스』(472쪽, 2024년)가 그것이다.
제1권 『유레카ㆍ익투스 요한복음』과 제2권 『요한복음에 비추어 본 요한계시록』은 각각 한국기독교출판문화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받은 명저이고, 제3권 『아자브 신학과 요한 르네상스』는 지난 40여 년 동안 그의 신학 여정, 요한문헌을 연구하게 된 연유, 서구신학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 및 그동안의 요한학 연구자들의 해석의 빗나감과 그 이유를 소상히 밝힌 저서이다.
이번에 아마존(킨들)에서 출판된 영문판, The Gospel of John과 Revelation은 각각 제1권 『유레카ㆍ익투스 요한복음』과 제2권 『요한복음에 비추어 본 요한계시록』을 축약하여 번역한 저서이고, AJAB Theology and John Renaissance는 제3권 『아자브 신학과 요한 르네상스』을 완역하고 특별부록으로 “성령의 세 측면과 두 방향”이라는 글을 첨부하여 번역한 책이다. 요한학 시리즈 3부작이 영문판으로 세계 최고 온라인 쇼핑 플랫폼인 아마존(Amazon)에서 출판되었다는 것은 그의 저서에 대한 한국신학계의 평가를 넘어 세계신학계에서 한국신학의 위상이 평가받는 자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요한학 시리즈 3부작 영문판 출간과 관련하여 저자의 의도 및 신학적(역사적) 의미를 살펴보자. 저자는 신앙과 학문에 있어서 오늘의 자신은 ‘은혜와 사랑에 빚진 자’라고 고백한다. 저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오늘의 자리에 이르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감의도(E. Otto Decamp) 선교사(한국 기독교 방송국 창설자)가 베풀어 준 은혜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그와 더불어 1884년부터 시작된 서구 선교사들의 헌신과 수고가 오늘의 한국 근대화와 한국교회의 부흥을 가져왔으며, 오늘날의 한국신학은 한글성경 번역을 비롯한 서구신학을 전수한 선교사님들의 노고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정하며 그분들께 참으로 감사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서구신학으로부터 탈피하여 한국신학의 토착화를 위해 애쓴 한국의 여러 선배 신학자들, 특히 박준서(구약학), 문상희(신약학), 한태동(교회사) 교수님의 가르침에 크게 빚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 동안 자신이 행한 신학 여정과 오늘날 요한학 시리즈 3부작을 낳게 된 계기와 의미를 세 가지로 말한다.
첫째, 21세기 신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천 년 동안의 기독교의 역사는 거의 500년 단위로 분열과 개혁이 이루어져 왔다. 이는 500년 단위로 신학적 패러다임이 요청됨을 시사한다. 초대교회는 세 그룹(셈계, 헬라계, 라틴계)으로 구성되었는데, 주후 500년 경를 전후하여 단성론을 주장한 셈계가 떨어져 나갔다. 그 후 500년이 경과한 1054년 동방교회(헬라계)와 서방교회(라틴계)가 분리되었다. 그 후 약 500년이 지난 1517년 개신교 종교개혁으로 라틴계가 로마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분리되었다.
개신교 종교개혁 500여 년 지난 오늘날 개신교회는 심각한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교회의 위기는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도덕적 위기요 또 하나는 신학적 위기다. 루터는 전자보다 후자가 더 심각하고 중요하다고 보았는데, 그 까닭은 도덕적 위기는 어느 시대에나 있는 것이지만 신학적 위기는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청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늘 21세기 기독교회는 새로운 신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루터에 의한 개신교 종교개혁은 바울서신인 ‘로마서의 재발견’을 통한 ‘바울 르네상스’였다. 그런데 종교개혁의 모토가 ‘아드 폰테스’(Ad fontes), 즉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구호처럼 기독교의 근원은 바울이 아닌 예수이며, 그런 의미에서 바울에서 예수로, 바울서신에서 복음서로의 ‘아드 폰테스’가 요청된다. 이를 위해 저자가 외친 구호가 아자브(AJAB), 즉 ‘다시 예수’, ‘다시 성경’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울(루터)의 신학, 즉 ‘십자가 신학’에서 요한의 ‘부활의 신학’으로(제자도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의의 신학’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신학’으로(개인의 구원을 넘어 하나님의 세상 통치와 관련하여)의 신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그것이다.
요한복음은 기독교 사상적 측면에서 신구약성경 전체(66권)를 마무리 짓는 마지막 결정체(노름마치)라는 점에서 21세기 신학적 패러다임에 가장 적합한 ‘종교개혁의 텍스트’이다. 나아가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된 요한문헌, 특히 신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은 요한복음을 이해하기 위한 짝으로서의 중요한 기능(묵시문학적 측면에서)을 갖는다. 따라서 ‘요한문헌의 재발견’을 통한 ‘요한학의 부흥,’ 이를 일컬어 저자는 ‘요한 르네상스’라고 말한다.
둘째, 서구신학의 성서 해석의 빗나감 때문이다.
본래 신앙을 기반으로 한 헤브라이즘(Hebraism) 문서인 성경은 서구로 전파되면서 이성을 기반을 한 헬레니즘(Hellenism)과 결합되면서 성서 해석에 있어서의 의미의 변용을 가져왔다. 더욱이 성경을 교리를 변증하기 위한 ‘증빙 본문’(proof text)으로 사용한 교의학에서 성경신학으로 독립시킨(1787년) 가블러(G.P.Gabler) 이후 성경신학은 다시 구약신학과 신약신학으로 분리되었다. 이는 두 가지 결정적인 문제를 야기시켰다.
하나는 신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한 권의 책(요 5:39)인데, 둘로 나누어짐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성’(Christocentricity)이 희미해졌다는 점이다. 또하나는 ‘성경의 통전성’이 무너짐으로 인한 성경의 권위(힘)이 약화되고, 신구약 문서 해석의 빗나감을 초래했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 세기 요한학의 권위자인 불트만의 『요한복음 연구』(1941년)이다. 그의 요한복음 해석이 철저히 빗나갔음을 ‘3대 무지’로 말해 보자.
첫째, 불트만은 ‘구약성경에 대한 무지’로 인해 요한복음을 헬라적 복음서로 취급하면서, 요한복음이 얼마나 구약성경에 기초한 헤브라이즘적 복음서인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가령, ‘일곱 에고 에이미’ 용법은 ‘성막의 일곱 기구’에 해당). 둘째, 불트만은 ‘구약 전승(북왕국과 남왕국)에 대한 무지’로 인해 왜 양서가 강조점과 표현방식 및 세계관이 다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가령, 요한복음은 갈릴리와 모세를 강조하는 북왕국 전승이고, 요한계시록은 다윗과 예루살렘을 강조하는 남왕국 전승이다. 따라서 원어로 보면 ‘예루살렘’ 어휘 사용이 다르다). 셋째, 불트만은 ‘묵시문서에 대한 무지’로 인해 요한계시록처럼 요한복음 전체가 묵시적 암호상징(상징코드)으로 가득 차 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가령, 요한복음에 나타난 ‘38년 된 병자’(요 5:5)나 ‘큰물고기 153’(요 21:11)이 숫자상징코드인 ‘게마트리아’라는 사실).
셋째, 서구에서 비서구로의 시대적, 교회적 상황의 변화 때문이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1492년)을 기준으로 지난 500년 간의 역사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역사’였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서양중심주의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교세를 보더라도 서구보다 비서구가 더 크고 왕성하게 부흥하고 있다. 오늘날 서구 세계는 사실상 기독교회의 공동화와 더불어 이슬람의 부상으로 기독교 문명 세계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지난날 선교국에서 이제는 선교 대상국으로 전락한 것이 오늘날의 서구 세계의 실상이다.
지난 2천 년 동안의 신학의 역사는 서구신학을 비서구 나라(교회)에 이식한 역사였다. 그러나 21세기의 시대적 상황은 모든 분야에서 서구에서 비서구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청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신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비서구 국가(교회) 중 가장 기독교가 활발한 그 동안의 한국신학도 서구신학의 이식 또는 번안신학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때가 무르익어 한국신학의 세계화, 즉 한국(비서구)에서 서구(전 세계)로의 방향 전환이 이루어져야 할 때가 왔다. 이는 한류 문화(K-Culture)의 세계화와도 맥을 같이 한다. K-pop, K-food, K-drama, K-sports, K-방산(防産) 등등은 이미 세계화되었다. 이는 K-신학에도 해당한다. 언제까지 서구신학에 매여 있어야 하는가. 이번 저자의 요한학 시리즈 3부작 영문판은 한류 문화의 일환으로서의 K-신학의 위상을 세계신학계에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끝으로, 요한학 시리즈 3부작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제1권(The Gospel of John)의 한글판은 제1부(해석의 틀)와 제2부(본장 주석) 및 부록으로 논문 “숫자 17과 큰물고기 153표적(요 21:11)의 의미”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영문판에서는 제1부는 거의 대부분을 번역했으나 제2부는 지면 관계상 본문 주석 부분을 다 생략하고 ‘본장 개요’ 부분만 번역하였고, 끝에 부록 논문을 실었다.
저자는 자신의 지난 40여 년 동안의 신앙생활을 이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한 준비 과정이요 훈련 기간이었다고 고백한다. 저자의 고백대로 이 책은 저자의 신앙과 신학, 학문과 경험 및 사상의 총체이자 장대한 역사철학(역사신학)이다. 이 책을 쓰기까지 저자는 서양철학(헬레니즘)과 구약학(헤브라이즘)을 전공하였고, 동양학까지 열심히 연구하였다. 그리하여 이 책의 바탕이 되는 요한복음 관련 저서들을 계속해서 출판하였다.
요한복음 강해설교인 『감악산의 두 돌판: 요한복음서 강해설교』(2005년)을 필두로, 『요한복음서 재발견: 부활의 신학』(2007년), 『요한의 천재성: 상징코드』(2009년), 『성경개관(요한복음 편)』(2011년)을 썼으며, 이를 바탕으로 마침내 『천하제일지서 요한복음』(2012년)을 썼다. 그리고 이를 확대하여 최종 결정판으로 낸 것이 『유레카ㆍ익투스 요한복음』(2019년)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동안 요한복음은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요한복음이야말로 그 어떤 책과도 비교가 안 되는 인류 역사상 최고, 최후의 걸작품(천하제일지서)이라고 역설한다. 이러한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저자는 기존의 모든 국내외 학자들의 요한복음 이론들을 철저히 비판한다. 그러고는 요한복음은 기본적으로 생존이 위협당하는 위기상황의 산물(묵시문서)로서, 요한복음 전체가 거대한 암호상징(상징코드)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일곱 상징코드(숫자, 표적, 말씀, 구조, 절기, 지리, 인물)를 통해 논리정연하게 설명하였다.
나아가 저자는 주후 1세기 말에 나타난 요한복음은 인류 사상사의 종언(노름마치)을 고한 책이라고 주장하면서, 종교다원주의, 율법주의, 인본주의 등으로 빗나간 오늘의 신학과 변질된 교회를 혁파하고, 예수의 유일성, 복음주의, 신본주의에 입각한 ‘팍스 크리스티나(Pax Christina)’의 새 시대(새 세상)를 여는 책으로 기능하기를 간절히 소망하였다.
제2권(Revelation)의 영문판 또한 지면 관계상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번역하였다. 이 책의 특징은 요한계시록을 요한복음에 비추어 보는 비교방식으로 책을 집필했다는 점이다. 비교방식을 택한 이유는 두 문서가 요한이라는 공통된 이름으로 된 문서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요한복음은 외견상 공관복음과 같은 전기문학(예수의 일대기를 그린 문서)처럼 보이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요한계시록과 같은 묵시문서에 속한다는 점에서이다. 거의 같은 시대(주후 90년대) 로마 황제의 기독교 박해라는 묵시문학적 상황에서 두 문서는 철저히 묵시문서가 갖고 있는 암호상징(상징코드)을 사용하고 있다.
다만 암호상징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요한계시록은 노출기법을 보여주는 데 반해 요한복음은 은폐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래의 모든 신학자들이 요한복음이 묵시문서에 속한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요한복음 연구의 결정적 빗나감을 초래하게 된 이유가 이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묵시문서에 속하는 두 문서를 비교함으로써 얻는 효과는 양서의 이해가 보다 새롭고 풍성해진다는 점이다.
두 문서에 대한 비교연구는 장르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넘어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전승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솔로몬 사후(주전 922년)부터 두 왕국(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으로 분열된 이스라엘 민족(나라)은 주후 1세기 말까지 계산하면 무려 1천 년이 넘는 기간이 된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양국의 극명한 전승의 차이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요한복음은 북왕국 이스라엘 전승(모세와 갈릴리와 바다 강조)에 속하며, 요한계시록은 남왕국 유다 전승(다윗과 예루살렘과 성전 강조)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북왕국 전승인 요한복음은 예수의 제자인 세베대의 아들 사도 요한의 작품으로, 요한복음은 역사적 예수와의 동행을 통해 얻은 체험, 오랫동안의 묵상과 사색, 그리고 보혜사 성령의 기억나게 하심을 통해 예수에 대한 회고록 또는 사모곡의 형태를 지닌 ‘경험의 산물’(동사 문체)이라는 점이다. 이에 반해 남왕국 전승인 요한계시록은 기본적으로 갈릴리(바다)와 아무 관계가 없는 예루살렘을 삶의 자리(Sitz im Leben)로 한 예언자 그룹에 속한 학자의 ‘학문의 산물’(명사 문체)이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소아시아로 건너가 활동한 예언자 그룹의 학자로서 구약성경만이 아니라 외경과 위경에 이르기까지 학문을 섭렵한 대학자이다. 그는 로마 황제 숭배에 따른 소아시아 일곱교회의 수난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에 기초한 초대교회의 최후의 승리를 말하고자 요한계시록을 집필했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두 문서의 차이점, 구체적으로 말하면, 전승의 차이, 저자의 차이, 숫자의 차이, 문체(어휘)의 차이, 구조의 차이, 구약 인용의 차이, 신약 문서와 외경(위경) 인용의 차이등을 통해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양서는 성경 전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요한계시록은 형식상에서, 요한복음은 내용상에서 그러하다. 맞수(쌍벽)인 모차르트와 베토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비유되는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은 각자가 일생을 두고 쓴 ‘단 한 권의 책’이다. 달라도 너무도 다른 양서의 차이에 대해 저자는 다른 방식으로 이렇게 말한다.
본디 갈릴리 어부 출신이었던 세베대의 아들 요한에게 있어서 갈릴리 바다는 그의 삶의 터전이었고, 그래서 그는 갈릴리 바다를 지극히 사랑했다. 뿐만 아니라 갈매기 떼 평화로이 나는 갈릴리 바다는 그가 처음으로 예수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기로 결단했던 첫사랑의 날카로운 추억을 간직한 곳이다. 그러기에 그는 ‘바다’(또는 ‘물’)을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혼돈의 세력’의 상징으로 보지 않았다. 요한복음에서 ‘바다’를 부정적 의미로 쓰인 것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북왕국 전통의 요한복음은 한 마디로 갈릴리 해변에서 만난 ‘예수와의 첫사랑의 그리움’을 노래한 회고록이자 사모곡이다.
반면에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묵시적 예언자 요한은 예수와 제자가 만난 갈릴리 바다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갈릴리’나 ‘제자’ 어휘가 전혀 나오지 않음). 요한계시록을 연구해 보면 그는 유대인들의 삶과 신앙의 중심인 예루살렘 성전과 관련해서 살아온 제사장 그룹의 사람으로 보인다. 그런 어느 날 로마 군대에 의해 시온 성전이 무참히 파괴되어 버렸다. 그때 그가 받은 충격은 그의 일생을 좌우하는 결정적 사건이 되었다. 그 후 그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되어 소아시아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로마 황제의 기독교 박해로 인해 지중해의 작은 섬 밧모(Patmos)에 가서 깊은 묵상에 잠겼다.
그런 그에게 ‘바다’(또는 ‘물’)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혼돈과 죽음의 세력’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바다’는 짐승이 올라오고(계 13:1), 음녀가 앉아 있고(계 17:1), 새 세상(새 예루살렘)이 오면 없어져야 할(계 21:1-2) 부정적 의미의 ‘혼돈과 죽음의 상징’이었다. 남왕국 전통인 요한계시록은 한 마디로 그발 강가에서 시온을 그리며 눈물짓던 예언자 에스겔처럼 밧모섬에서 시온 성전을 파괴한 자들에 대한 울분(응징)과 더불어 ‘새 다윗’(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 계 5:5)의 나라로서의 ‘새 예루살렘’(계 21:1-2)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책이다. 박신배 교수(현 KC대 구약학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요한복음에 이어서 요한계시록 연구사를 새롭게 다시 썼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국성서신학사에 새 이정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제3권(AJAB Theology And John Renaissance)은 헤겔의 변증법으로 말하면 요한복음은 정(正), 요한계시록은 반(反), 그리고 이 책은 합(合)에 해당하는 책이다. 이 책은 본 헤럴드(대표 최원영 목사)에 1년(52주)에 걸쳐 연재한 칼럼을 모아 엮어낸 저서이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아자브 신학(AJAB Theology): 토막신학에서 ‘통전신학’으로,” 제2부 “요한 르네상스: ‘바울 르네상스’에서 ‘예수 르네상스’로.”
저자는 40여 년간의 자신의 신학 여정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먼저, 저자는 ‘2M(Message and Mission)의 신학’으로 출발했다. 저자는 신학은 신학교 안에서 이론적으로 논쟁하는 것으로 머물러서는 안 되고, 반드시 교회에서 말씀의 선포로서의 ‘설교’(Message)로 나타나야 하며, 교회 밖 세상에서는 복음의 선포로서의 ‘선교’(Mission)로 나타나야 한다는 지론을 펼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저자는 그 동안 설교한 것을 여러 설교집으로 엮어내었고(요한복음 및 창세기 강해설교 등등), 총회 파송(예장 통합) 중국선교사로서도 사역(10년 6개월)하였다.
다음으로, 저자는 ‘통전신학(Holistic Theology)으로서의 예수학(Jesustics)’를 주장하였다. 그 배경에는 이미 언급했듯이 가블러 이후 성서신학이 구약학과 신약학으로 구분되면서 ‘그리스도 중심주의’가 희미해졌고, 성경의 힘(권위)이 무너졌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더 중요한 것은 신구약성경을 통전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해석이 빗나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신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한 권의 책(요 5:39)으로서의 예수학(Jesustics)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통전신학에 따른 사고의 통전성은 비단 신구약성경 해석만이 아니라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인 해체(경계 허뭄)와 융합이라는 시대적 정신처럼 이분법적인 양극화(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노동자와 사용자 등등)로 인한 심각한 갈등과 혼란에 대한 해소와 치유의 의미를 담고 있다.
끝으로, 저자는 종교개혁 505주년이 되는 2022년에 ‘아자브(AJAB) 신학’을 주창하였다. 이는 루터의 종교개혁의 원리인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에 근거하여 ‘다시 예수’(Again Jesus), ‘다시 성경’(Again Bible)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이다. 그 배경에는 개신교회, 즉 한국교회를 넘어 서구교회의 신학적 위기의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루터에 근거한 바울 르네상스에서 예수에 근거한 복음서, 특히 요한 르네상스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이를 위해 저자는 먼저 요한복음 연구의 권위자인 불트만의 신학이 왜 철저히 빗나가게 되었는가를 말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째, 구약성경에 대한 무지(히브리적 배경보다 헬라적 배경에 기초한 해석), 둘째, 구약 전승의 맥락에 대한 무지(북왕국 전승이라는 삶의 자리에 대한 인식의 결여), 셋째, 묵시문서인 요한계시록과의 비교연구를 통한 두 문서의 유사성과 차이점에 대한 무지가 그것이다.
불트만 비판에 이어 저자는 요한복음 연구에 이름을 올린 한국학자들을 차례로 비판하였다. 다석 류영모 선생, 도올 김용옥 선생, 민중신학자 김진호 목사의 요한복음 연구가 왜 빗나갔는가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마지막으로 요한문헌에 속하는 요한1,2,3서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끝으로 저자는 2025년이 시작되기 직전인 2024년 연말에 ‘다시 예수’와 ‘다시 성경’을 말하는 ‘아자브(AJAB) 신학’을 넘어 ‘한국교회의 재부흥’(Again 1907년)을 위한 운동 차원으로서의 ‘다시 성령’(Again spirit)을 첨가한 ‘아자바스’(AJABAS)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으로 이 책을 마무리했다.
아울러 박요한 교수의 10월 샬롬성경세미나도 진행될 예정이다. 샬롬 성경연구회(회장 정재현 목사)의 주관으로 “요한복음으로 비추어 본 요한계시록”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세미나는 오는 10월 17일(금)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열릴 예정이며 장소는 네오와인 석천재(수내역 3번 출구 다운타운빌딩 3층)이다. 회비는 1만원이며 식사를 지원할 계획이다. (문의: 이용섭 목사 010-5325-3258)
● 약력과 경력
감의도(E. Otto Decamp) 선교사(CBS 기독교 방송국 창설자)
에 의해 예수를 믿고 교회 출석 시작(17세)
연세대 철학과(B.A.), 장로회 신학대학원(M. Div.),
연세대 대학원 신학과 졸업(Th.M., Ph.D.)
모교회 동숭교회와 새문안교회에서 신앙생활,
해방교회 전도사, 예능교회 및 소망교회 부목사,
유라시아 선교회 회장 역임.
총회 파송(예장통합) 중국선교사(10년 반).
전 대전신대 구약학 교수 및 대학원장.
미디에이터교회 설교목사
한국기독교출판문화 신학부문 최우수상(요한복음)
및 우수상(요한계시록) 수상
대전신대 총동문회 학술공로상
2023년 한국교회 최고의 인물 대상(신학자 부문) 선정
「상록수문학」 문학평론가 등단, 신인상(2024년) 수상
현) 블레싱재팬 이사
현) 페이스(겟세마네) 신학교 교수
현) 아자바스(AJABAS) 선교회 대표
현) 꿈꾸는교회 협동목사
● 주요 저서
「너와 나는 약혼한 사이」, 「부르다가 내가 죽을 노래」,
「첫사랑의 날카로운 추억」, 「예수사랑의 연가」,
「감악산의 두 돌판: 요한복음서 강해설교」, 「창세기 강해설교」,
「야웨인지공식」, 「폰 라드: 구원사의 신학」,
「성경개관(圣经槪观)」 (한글판과 중국어판),
「요한복음서 재발견: 부활의 신학」,
「요한의 천재성: 상징코드」,
★ 구약 주석 3부작: 「창세기 주석」, 「출애굽기 주석」, 「에스겔 주석」,
★ 왕 시리즈 3부작: 「왕의 교체」, 「왕의 복음」, 「왕의 노래」,
★ 요한학 시리즈 3부작: 「유레카 익투스 요한복음」,
「요한복음에 비추어본 요한계시록」,「아자브(AJAB) 신학과 요한 르네상스」,
★ John Park’s Triology Johannics Series (The Gospel of John, Revelation,
AJAB Theology and John Renaissance),
★ 한일근대사 3부작: 「하나님의 시나리오 조선의 최후」,
「섭리사관으로 본 한일근대사」, 「아자브(AJAB) 일본선교여행」,
★ 아자바스 시리즈 3부작(「아자바스 운동 신학의 세 주제」,
「구약성서 연구의 새로운 지평」,「일본 작가 3인의 문학세계」) 등등.
● 역서
「모세」(G. W. Coats), 「에스겔」(R. W. Klein),
「삶의 세 철학: 욥기, 전도서, 아가서」(P. Kreeft),
「출애굽기 신학」(D. E. Gowan),
「마르틴 루터」(W. von Loewen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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