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사적 관점에서 본 신구약성경의 전체 구조를 살펴보자. 이는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사복음서의 예수 기원의 문제”(제42강)에서 언급했듯이 마태와 누가는 남왕국 전승에 속하고, 마가와 요한은 북왕국 전승에 속한다. 주전 922년 이스라엘은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분열되는데, 여기서 갈릴리(사마리아)에 속한 북왕국은 모세(예언자)를 강조하는 전통으로 내려오고, 예루살렘에 속한 남왕국은 다윗(성전)을 강조하는 전통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새 모세 예수 이야기’를 말하는 사복음서의 편집(정경화) 과정을 살펴보면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에 마태와 누가가 첨부(편집)되고, 최종적으로 요한복음이 첨부(편집)됨으로써 완성되었다. 이는 최종적으로 첨가(편집)된 요한복음이 사복음서의 완성적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남왕국에 속하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고 남왕국 전통이 주류가 되면서 신약성경은 형식상 ‘남왕국의 틀’(framework)로 짜였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남왕국에 속하는 마태복음과 요한계시록이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구조로 엮어져 있다. 그런데 내용적으로는 북왕국에 속하는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이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신약성경의 시작과 끝 :
구조적으로는 남왕국 전승
내용적으로는 북왕국 전승
한편, 사복음서를 구약성경에 대비해서 말하면 ‘모세 이야기’는 4서(출-민)로 되어 있고, 그 앞에 첨부된 창세기는 ‘모세 이전 이야기’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모세오경’이라고 일컬어지는 다섯 권의 책은 오랫동안 구전 전승과 성문 전승으로 내려오다가 바벨론 포로 이후인 주전 500-450년경에 최종 편집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북왕국은 주전 722년에 아시리아에 멸망한 뒤 혼혈이 되었고, 남왕국은 주전 587년 바벨론에 멸망하여 포로생활을 했지만, 귀환 후 이스라엘의 법통(주류)은 제사장 전통인 남왕국으로 이어지면서 모세오경의 최종 편집이 ‘남왕국의 틀’(framework)로 짜였음을 의미한다(B.W.Anderson, Understanding of the Old Testament, 449-466 참조).
이를 언약신학(Covenant theology)적 측면에서 보면, 북왕국 전통인 모세(시내산) 언약(출 19:5-6)은 ‘조건적 쌍무언약’(If-then) 형식으로 되어 있다. 반면에 남왕국 전통인 다윗 언약(삼하 7:4-17)은 ‘무조건적 편무언약’(영원한 언약)으로 되어 있다.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 언약(9:8-17, 언약 7회[9,11,12,13,15,16,17절])이나 아브라함 언약(17:1-14, 언약 10회[2,4,7(2회),9,10,11,13(2회],14절])은 다윗 언약과 같은 ‘무조건적 편무언약’으로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창세기는 ‘남왕국의 틀’로 짜여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언약(노아와 아브라함)의 언약 용어의 합수가 17이고 곱수가 70이다. 이는 창세기가 새 모세를 노래하는 책이라기보다는 새 다윗을 노래하는 책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구약성경은 형식상 남왕국 전승에 속하는 창세기와 말라기가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구조로 엮어져 있다. 그런데 내용적으로는 출애굽 사건을 말하는 출애굽기로 시작하고 헬라시대의 유대교 박해를 기술하는 다니엘서로 끝나고 있다. 지금까지의 고찰을 도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창세기가 얼마나 남왕국 유다 지파의 ‘다윗’(예루살렘 또는 성전)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가를 창세기의 압축파일인 창세기 1-3장, 특히 첫 창조기사(창 1:1-2:3)을 통해 살펴보자. 창세기 전체의 압축파일인 1:1은 히브리어 7단어(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로 되어 있고, 1:2은 14단어(וְהָאָרֶץ הָיְתָה תֹהוּ וָבֹהוּ וְחֹשֶׁךְ עַל־פְּנֵי תְהֹום וְרוּחַ אֱלֹהִים מְרַחֶפֶת עַל־פְּנֵי הַמָּיִם׃)로 되어 있다.
여기서 숫자 14는 다윗의 세 알파벳(דוד)의 숫자(14=4+6+4)와 같다. 이는 앞으로 전개될 창세기의 모든 것이 다윗과 관련되어 있음을 시작하는 사인의 성격을 갖는다. 7일 창조 기사는 일곱째 날인 ‘안식일’(창 2:1-3)을 특별히 ‘구별된 날’(聖日, 이를 잘 말해주는 어휘가 2:3의 ‘거룩하게’라는 단어다)로 강조한다. 이는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1-6)은 주변을 형성하고, 일곱째 날(7)이 중심을 형성하는 정확히 ‘다윗의 별’ 형상으로 세상이 창조되었음을 시사한다. 즉 1:1의 7단어는 정확히 ‘다윗의 별’에 대한 사인의 성격을 갖는다.
다음으로, 첫 창조기사에서 하늘(궁창)이 21회, 땅이 21회 나타난다. 즉 하늘(궁창)과 땅은 도합 42회(21+21) 나타난다. 숫자 42는 14+14+14로써, 어떤 수를 세 번 반복해서 쓰는 것은 최고의 강조 용법이다. 다윗의 숫자인 14를 세 번 강조한다는 것은 최고로 다윗을 강조하는 용법이다. 마태는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42대(14대+14대+14대)로 구성하고 있다(마 1장). 이는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온전한 다윗의 성취를 의미한다.
그리고 첫 창조기사에서 거룩하게 구별된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하늘에서의 ‘하나님(엘로힘)’이고, 다른 하나는 땅에서의 ‘안식일’이다. 그런데 하나님(엘로힘) 단어가 35회, 안식일 본문(2:1-3) 단어가 35회 나타난다. 거룩하게 구별된 이 둘의 합이 70(35+35)이다. 숫자 70은 다윗의 수명이다(왕상 2:11). 창세기에서 숫자 70은 노아의 세 아들인 야벳(14지족), 함(30지족), 셈(26지족)이 70지족이다(창 10장). 그리고 야곱의 후손이 70명(창 46:27; 출 1:5)이다. 전부 다윗의 수명인 70세(삼하 5:4)와 관련된 숫자이다.
그런데 게마트리아에서 더하기와 곱하기는 상호교환된다는 의미에서 70(7×10)은 17(7+10)과 상호 관련된 숫자이다. 이 두 숫자는 평행한다(함께 간다). 이는 숫자 7(3+4)와 12(3×4)와 상호 관련된 숫자로써 이 두 숫자는 평행한다(함께 간다).
이는 숫자 70이 십자가의 숫자인 17과 관련된 숫자임을 암시한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이르시되’가 10회(1:3,6,9,11,14,20,24,26,28,29),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7회(1:4,10,12,18,21,25,31) 나타난다. 이 두 숫자의 합이 17(10+7)이다. 즉 창세기는 1장에서부터 십자가의 숫자인 17을 은밀히 비밀로 감추고 있다.
한편 창세기 1-3장은 다윗의 숫자(14)와 상응하는 14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1:1-2(태초에), 1:3-5(첫째날), 1:6-8(둘째날), 1:9-13(셋째날), 1:14-19(넷째날), 1:20-23(다섯째날), 1:24-31(여섯째날), 2:1-3(일곱째날), 2:4-7(둘째 이야기 서론), 2:8-17(에덴동산), 2:18-25(아담과 하와), 3:1-7(선악과를 먹음), 3:8-21(재판 받음), 3:22-24(에덴에서 쫓겨남)(김인철, 『창세기 1ㆍ2ㆍ3장 꼼꼼히 읽기』, 19-21 참조).
또한 다윗(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신전)과 관련된 인물로 ‘에덴동산 이야기’(창 2-3장)는 곧 성전(신전)과 상응하는 관계를 보여준다. 세상의 중심인 예루살렘 성전에서 생명수 강물이 흘러 온 세상을 풍요롭게 하듯이(겔 47장), 세상의 중심인 에덴동산에서 4개의 강이 흘러서 온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성전 구조가 세 부분(뜰, 성소, 지성소)으로 되어 있듯이, 에덴동산도 세 부분, 즉 일반나무, 선악나무, 생명나무로 되어 있다. 뜰은 일반나무, 성소는 선악나무, 지성소는 생명나무를 각각 해당한다. 이는 세상의 중심인 ‘에덴동산’의 위치가 곧 세상의 중심인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임을 시사한다(더 자세한 내용은 박호용, 『창세기 주석』, 64-68; 김인철, 위의 책, 179-195 참조).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다윗과 관련된 숫자언어(7,14,70)나 그림언어(‘다윗의 별’이나 에덴동산)를 통해 창세기(특히 1-3장)는 남왕국 전승에 속하는 문서임이 분명히 드러났다. 따라서 전승사적 측면으로 보면 신구약성경은 남왕국 전승의 ‘태초에’(창 1:1)로 시작해서 북왕국 전승의 ‘태초에’(요 1:1)로 끝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즉 창세기는 신구약성경의 ‘시작’이고, 요한복음은 그 ‘끝’을 장식한다.
이를 숫자언어와 그림언어로 표현하면 창세기 1:1은 유대교의 대표적 상징인 ‘다윗의 별’(7단어)로 되어 있다. 그리고 요한복음 1:1은 ‘말씀’이 기독교의 대표적 상징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라는 의미에서 17단어로 되어 있다’(ΕΝ ἀρχῇ ἦν ὁ λóγος καὶ ὁ λóγος ἦν πρὸς τὸν θóεν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óγος. 참고로 키아즘 구조에 따라 요 21:1도 17 단어로 되어 있음). 따라서 신구약성경을 음악과 관련된 숫자언어와 그림언어로 표현하면 ‘7과 17의 이중주’, ‘다윗의 별과 십자가의 이중주’라고 말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