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륜 칼럼] 크리스천과 정치지식 (39)

  • 입력 2025.11.08 07:50
  • 수정 2025.11.0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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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크리스천과 이상적인 국가(3)

14세기말부터 유럽의 교황권이 쇠퇴하고 봉건영주들의 전성기를 거쳐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 미합중국의 독립, 마르크주의 세계화로 인한 극우 파시스트들의 상대적인 발호와 극좌 볼셰비키 혁명과 1, 2차 세계대전을 거쳐 인류는 1945년에 이르러서 겨우 국제 평화를 위해 유엔을 발족시켰다.

이 와중에서 기독교의 인격신에 의한 인류구원의 가치와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박애와 가난하고 병들고 힘없는 이웃들에 대한 이타적인 봉사 및 헌신을 위한 사회복지와 자유롭고 평안하게 개인의 영혼이 안식할 수 있는 국가 등을 모토로 하는 기독교 정당 운동이 유럽에서 일찍이 발생했다.

다음의 표를 보면 유럽의 기독교 정당의 역사가 얼마나 뿌리가 깊은지를 일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기독정당의 업적을 논하기 전에 우선 기독정당의 근본적인 이념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면 기독정당의 정신적 맹아는 프랑스 대혁명과 계몽주의에서부터 싹터온 민주주의에 기반해서 이른바 기독교 민주주의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민주주의 이념은 우선 인격신인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인정한다. 그리고 세계는 혼돈의 세계가 아니라 코스모스의 세계로서 그 속에서 각 개인은 만물을 다스릴 소명을 받고 태어났음을 인정한다. 그리하여 국가는 각 개인의 인격적 존엄성과 생명의 고귀함 및 개인이 자유롭고 평안하게 자신의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국가는 이런 개인들을 일정한 사회적 합의와 법률 아래서 보호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민주주의는 국가에 대한 맹신, 이데올로기, 집단주의 및 극좌 공산주의를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래서 기독교민주주의자들은 독일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토마스 니퍼다이(Thomas Nipperdey, 1927~1992)가 말한 다음의 진술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기독교도는 국가나 사회 또는 정치가 만들어낼 수 있는 지상 낙원의 유토피아를 믿지 않는다. 기독교도는 인간의 유한성, 불완전성 그리고 원죄를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에 기독교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기독정당들은 기독교의 정신과 현실정치가 괴리되어 있다고 보지 않으며, 되레 현실정치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기독교적 가치를 국가 사회 생활 속에서 전파하여야 한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우리는 유럽의 여러 나라 중에서 현대에 기독 정당이 집권하여 탁월한 정치적인 업적을 쌓은 네델란드와 독일의 기독정당의 정치를 살펴봄으로써 그들이 하나님 나라와 그 의의 확장을 위하여 얼마나 큰일을 했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3. 현대 유럽 기독정당의 집권과 정치: 네델란드와 독일의 기독정당의 업적

(1) 네델란드의 경우

네델란드에서 기독정당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첫째로 기독학교들을 설립할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둘째는 가난한 고용인들과 재정적으로 궁핍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남녀가 평등한 선거권을 획득하기 위한 사회법 제정을 위해서였다.

원래 기독교인들의 반혁명당(Antirevolutionar Party)은 아브라함 퀴퍼 (Abraham Kuyper, 1837-1920)가 설립했고, 로마카톨릭 국가당(Roman Catholic State Party)은 헤르만 쉐프만 (1844-1903)이 설립했다. 이들은 공동투쟁으로 네덜란드 헌법에 종파별 학교를 세울 권리와 주별로 종파별 학교를 세울 권리를 획득했다. 그러자 이들 기독교와 가톨릭 정당은 사회당과 때로는 자유당과 협력하여 사회법 제도를 마련하는데도 크게 공헌하였다.

1980년에 이 두 당은 기독교민주당으로 합당하고 집권하여 네델란드를 민주복지 국가로 크게 탈바꿈하였다. 그러나 1994년 이래 사회민주주의자와 자유주의자 연정으로 사회민주주의자가 총리가 되어 네델란드 정치는 세속화가 강화되어 가고 있으며 기독정당이 쌓은 업적들을 하나씩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2) 독일의 경우

1차 세계대전 전부터 독일에서는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사이의 극심한 계급적 갈등과 투쟁이 극심하였고 이로 인한 좌우익 정당이 극좌로부터 극우까지 다양하게 출현했는데 현대의 초교파적 기독정당이 출현한 것은 1945년 세계 2차 대전 이후였다.

패전국인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나누어져 4대 강국에 의해 임시적인 신탁통치를 받게 된다. 연합국들은 독일의 정당을 기독민주당(Christliche Demokraten), 자유당(Liberale), 사민당(SPD) 그리고 독일공산당(KPD)의 4가지 정당 형태만을 인정하였다. 물론 동독지역에서는 소련의 사주로 1946년 사민당과 독일 공산당이 합당하여 사회주의통일당(SED)의 일당 독재체제를 확립하게 된다.

그러나 연합국들의 신탁통치가 사라진 1949년 아데나우어의 기독교민주연합은 기사련, 자민당 그리고 북독일 지역정당인 독일당과의 연립정부를 구성하였다. 아네나우어의 연립정부는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부흥을 위해서는 과거 나치 시대와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였고 나치 독일의 죄악을 온 천하에 사과하였다. 그들은 극우 성향인 사민당과 극좌 성향의 독일 공산당을 불법화하고 온건한 의회정치의 구현을 이룩하였고, 선거제도의 약점을 보완하여 5% 제한 조항을 도입하였다.

기민련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를 독일에 뿌리내렸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서독경제는 완전히 재건되어 '경제 기적'이라고 일컬어졌다. 또한 그의 연립정부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과의 관계 정상화를 이룩했다. 그들은 소련과 수교를 하여 서독이 국제사회에 복귀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1950년 10월 기민련은 초대 전국 전당대회에서 기민련의 “사명”은 문화적이고 유럽적이며 사회적인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기민련은 정강 정책에서 자신들의 사명은 독일의 분단 극복과 사회적 궁핍 해소와 정치경제적 세력으로서 유럽의 이상 실현이라고 못 박았다.

아네나우어는 총리 14년 재임 기간을 통해 독일 통일의 기초를 튼실히 다졌고 결국 콜총리 시대에 이르러 동서독을 기적같이 통일시켰던 것이다.

여기까지 살펴본 독일 기독교민주연합과 네델란드 기독교민주당 등의 업적을 살펴본다면 그들은 기독교 정신에 근거하여 경제적 부흥과 사회적 안정 및 약자들에 대한 보편적 복지를 이루었고 독일의 경우 기적같은 통일을 이룸으로써 세계인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것이다.

그러면 왜 우리 한국에는 그동안 기독교 정당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까? 필자는 첫째 5천년 이상 우리 민족에게는 무교, 불교, 도교, 유교, 민족종교 등이 혼합된 정신 문화 속에서 살아오면서 가톨릭이 조선에 들어온 지 이제 겨우 241년, 개신교가 들어온 지는 141년 밖에 되지 않아서 아직도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 주류적 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이념으로 자리 잡기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둘째로는 그동안 기독교정당을 표방한 주체들이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사회적 명망으로나 도무지 전국적인 위인이 없이 어중이떠중이가 기독정당을 표방해서 일반국민들의 기독정당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셋째로는 기독교인들 자신이 정치는 기성정당에 맡기고 교회는 그저 영혼 구원에나 나서야 한다고 보고 기독교가 정당을 만들어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전국 기독교인 중 79.5% 이상이 기독교정당의 출현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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