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범 목사, 사진전문기자
김주범 목사, 사진전문기자

빈들에서 자라고 있는 이름없는 들풀도 그 고유의 생명체인 DNA를 지니고 있듯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에게도 저마다 다른 자질이 있다. 지하자원의 맥을 찾듯 타고난 자질을 일찍 찾아 내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아주 중요한 일이라 여겨 진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현재 내가 걸어 오고 있는 길과는 전혀 다른 젊은 날의 나는 천금같은 시간들을 정말 헛된 일에 미쳐 지냈다. 나는 법조인이 되겠다고 그 아까운 젊은 날 들을 다 소진해 버렸었다. 그 당시 사시 최종합격자는,요즘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러나 단 한명을 뽑아도 '그게 바로 나' 라는 그 오만때문이었다. 1960년대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혼탁했지만, 꿈을 잉태하는 시대이기도 했다. 나는 간헐적으로 오는 하나님의 싸인을 무시하고 내 고집대로 가다가 피할 길이 다 막힌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두손 들고 창조주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 어차피 주의 종이 될바에야 일찍 이길을 택했더라면 천금같은 젊은 날의 허송 세월은 없었을텐데 말이다.

온 세상을 율법의 눈으로만 보았던 사울! 그 율법의 눈으로 아니 세상의 잣대로 예수를 비하하고 오만했던 사울! 죽은 통일교 교주 문선명이 생전에 말하길,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는 실패한 예수"라고 주님을 비하 했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인류의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잠칭, 구순까지 살면서 그는 인류에게 무슨 족적을 남겼는가?

김주범 목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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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기만즉 일 인만즉 상(器滿卽  溢 人滿卽 喪)"이라했다. 즉 "그릇이 차면 넘치듯, 사람이 도에 넘치면 죽는다"

법의식이 무의식 세계에까지 배어들게 되면, 모든 사물을 법의 잣대로 보게 된다. 그러면 가을의 찬 이슬에 나뭇 잎이 낙엽이 되어 떨어질 때, '아! 벌써 가을인가!'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시상(詩想)이 떠오를 수 없다. 대신에 '아! 부동산이 동산이 되는구나!'라고 하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법의식으로 함몰되어 버리는 것이다. 비단 법의식 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격물치지(格物致知)에의 사고가 다 이렇게 함몰되고 만다.

옛말에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처럼, 인격의 형성과정은 이처럼 엄중하다. 율법주의자 사울이 성령으로 충만한 스데반의 메시지에 대하여 율법으로 세상을 보는 율법주의자 들이 시기하여,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일 때에, 그는 스데반이 참혹한 죽음 앞에서 겁에 질리거나 전혀 쫄지 않는 모습을보았다. 스데반은 자기를 향하여 날라오는 무수한 돌들을 보지 않고, 하늘 문을 여시고 두 팔을 벌리시고, 이제 나에게로 오라는 주님의 얼굴을 뵙고 있었다. 그는 오히려 자기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주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렇게 천사의 얼굴로 순교한 스데반의 지고지순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면서, 율법주의자 사울은 무엇을 느꼈을까? 오로지 냉혹한 법의식으로 꽉차 있는 사울에게도 눈물은 있었으리라!

아마 삼국지의 '죽은 공명(孔明)이 산  중달(仲達)을 물리쳤다는 고사처럼 죽은 스데반이 산 사울의 마음을 사로 잡았음에 틀림없다. 

"돌에맞아 죽어가면서도 어떻게 천사의 얼굴을 할수 있을까??"

이 일이 있은 후에 사울은, 다메섹 길 위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나게 된다. 그는 주님의 발 앞에 쓰러지면서, "주여! 당신이 뉘시오니이까?"

"나는 네가 그토록 핍박하는 예수니라"  

주님의 이 한마디에 그에게 있어 전부였던 율법은 사라져 버렸다. 이것은 세상 것이 전부였던 삶이, 새로운 비전의 세계를 재설정하는 것과 같다. 마치 땅을 기는 굼뱅이가, 창공을 나는 나비로 탈바꿈하듯, 말씀을 율법으로만 보던 눈이, 생명을 살리는 말씀이신 부활한 예수를 만나게 되었으니, '율사였던 사울'이 변하여 '말씀의 종 바울'이 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코페루니 쿠스적 대 전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공부해서 세상으로 나아가 출세를 하듯 공부해서 주의 종이 되는게 아니다. 주의 종은 배워서 되는게 절대 아니다. 주의 종은, 이처럼 직관으로 주님을 통하여 참 나를 만나야만, 비로소 주의 종이 될수 있다. 나는 주의 종이 되고서야 내가 가야 할 길을 비로소 어렴푸시 알게 되었다. 

성경은 역설의 진리다. 진정한 오너는 섬김에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내가 높아지려하면 낮아 지고 내가 낮아질 때 높아진다. 이 땅위에 오신 주님의 삶은, 사랑과 용서와 헌신과 섬김의 삶이셨고,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제물이 되시고자 오시었다. 이 역설의 진리가 받아들여 지는가?

주님이 아닌 바로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 나를 대신해서 죽어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기에 주의 종은 세상적으로 이미 죽은 자다. 주의 종은 남 앞에 서서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주님이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셨듯이, 주의 종된 길이 바로 '주님이 가신 길을 가는 것'임을 알았기에, 나는 한동안 머뭇 머뭇 했었다. 

김주범 목사, 사진전문기자
김주범 목사, 사진전문기자

요즘 우파 좌파 얘기들이 많다. 교회에서도 좌파목사 우파목사 운운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순수한 공산주의 국가가 어디 있으며, 순수한 자본주의 국가 또한 어디 있는가? 자본주의는 수정자본주의로, 공산주의내지 사회주의는 수정사회주의로, 서로 보완해 가고 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법이나 주의나 이념이나 정치적인 힘의 논리로만 국가나 사회가 형성되는게 아니라는 거다. 즉 법과 이념이 아닌 '살아 있는 법,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고유의 사랑의 법이다. 끝도 없는 법과 이념의 논리로는 평행선만 달릴뿐 정반합의 답이 나올 수 없다.

평생 죽자 살자 일만 했던 어느 형제의 간증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은 늘 돈 되는 일에 매진했다. 그에게 있어서 돈은 가정을 살리는 생명의 젖줄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퇴직을 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모아둔 돈도 있고 시간도 많으니, 여생은 행복하게 가족과 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퇴직 후에 아내는 되려 자기를 속박의 대상으로 보고 있고, 자녀들도 아버지는 이제 젊은 자녀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꼰대로 여겼다. 늘 꿈꿔왔던 가족이 함께 모여 거실에서 과일을 먹으며 화목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혼자만의 망상이었다. 결국, 이 형제는 다시 일 할 곳을 찾았다. 퇴직 직전까지 가족이 화목하지 못했는데 본인만 시간이 많아지면 저절로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겠는가? 

사랑이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이고, 늘 사랑이 먼저임을 아는게 인생의 진수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은 늘 나중이고, ‘사랑이 밥 먹여주느냐?'고 무시했다.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것은 늘 '사랑의 마음'에서다. 주님께서는 “거짓 맹세를 하지말라 하신다. 우리의 거짓 맹세는 밥먹듯 자주 한다. 물론 거짓이라고 하기도 뭐하다. 왜냐하면, 나중에 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도 나중에, 봉사도 나중에, 믿음도 나중에, 희생도 나중에, 늘 언제나 나중이다. 그러나 그 나중이 오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결국, 나의 맹세는 거짓이 되고만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라는 말씀은 지금 당장 실천해야 될 사랑이다. '내일' '나중에’에가 아니라 ‘지금’ 바로 오늘 실천하는 맹세여야 한다. ‘나중에’로 미루는 맹세는 우리를 후회의 길로 이끈다. 그러나 ‘지금’ '오늘' 이루어지는 맹세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끈다. 자신이 하는 사랑의 맹세가 오늘 이행 되도록 하자!

김종근 목사
김종근 목사

단상(斷想)

내가 몸담고있는 요양원 앞 길이 바로 화천가는 국도이다. 국도는 다 그렇겠지만 이 길 또한 사통팔달이다. 통일 땜도 갈수 있고, 이 길을 따라 가면 계절마다 바뀌는 강원도 특유의 금수강산 을 다 주유하며 동해안까지 갈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인지 계절에 관계없이 항상 차량들이 줄을 선다. 요즘 봄이 한창이어서 어딜가나 화란춘풍 이요 만화방창이다. 화사하고 향긋한 봄 바람이, 이렇틋 우리의 앞 가슴을 설레도록 일렁이는 데, 그래 봄처녀 오시는 길목에 코로난지 뭔지 하는 놈이 시새워 길을 막는다고,봄 처녀의 유혹 앞에 고개숙이고 돌아설 벌 나비가 어디 있을까?

옛날 서울 불광동에 '나도몰라'란 술집이 있었다. 봄 맞으러 나온 상춘객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앞에 '나도 몰라라'하고 불나비 처럼 몰려 온다.그래서 이 맘때면 어딜가나 오가는 양 방향이 꽉 막힌다. 동해안 유채밭에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것은, 그곳 주민들이 상춘객들을 끌어 들이려고 새해 들어서 부터 열심히 꽃밭을 일구었던 것인데, 화사한 이 봄, 꽃 길따라 온 상춘객들이 벌 나비 보다 먼저 알고 몰려 들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그곳 주민들은, 눈물을 머금고 애써 가꾼 유채 꽃밭을 트랙터로 갈아 엎어 버렸단다. 

이런일들은 제주도 유채 꽃밭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해마다 상춘객들의 맘을 홀리던 '진해 벗꽃축제'도, 코로나 불청객땜에 단 한줄의 기사도 없이 지나가 버렸다. 장사도, 일도, 사업도, 아니 온통 모두 다 이처럼 발이 묶여, 할 일도, 갈 곳조차 잃어 발길이 머물 곳이 없다.

문득 노산 이은상의 '내 고향 남쪽 바다'와 함께, 어릴때 부모슬하에서 살던 아주 먼 옛날  추억이 떠 오른다. 1950년 말에서 60년대초엔 갈 봄 여름 없이 비가 오면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낮 잠 아니면 라디오 듣는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후 우리 마을에선 우리집에 가장 먼저 Tv가 설치됐었다. 그래 어머니계신 안방에 가서 Tv나 볼까 하고 들어가면, 엄마보지 고모보지 누나보지 이웃아줌마들 보지 도통 내가 비집고 들어 갈 틈이 없었다. 그럼 낮잠이나 잘까하고 사랑채에 들어 가면 아빠자지 임동규할아범자지 동네 노인들자지 길가는 행려자들자지, 이래저래 그 곳도  만원이었다. 비오는 날은 쉬는 날이지만 내겐 참 따분한 날이었다. 비야 하루지나면 대부분 그치지만, 요놈의 코로나 바이러스는 언제 쯤 그치려나, 날이 가고, 달이 가고, 그럼 언젠 간 그칠 날이 오긴 올낀가?

몇년 전에 소아시아 터키를 갔더니, 우리 일행들이 한국에서 온걸 금방 알아 보고 인사말이 '빨리빨리'였다. 터키사람들이 인사말로 '빨리빨리'할만큼 우린 참 허둥대며 바쁘게 살았다. 지금까지 이렇게 정신없이 '빨리빨리'로만 살았으니, 이젠 허리펴고 서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좀 느긋하게 살라'는 코로나의 멧세진 아닐까?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자주찾던 짜장면집이 얼마전에 헐렸더라니, 오늘 와 보니, 아니 벌써 2층 새 집 한채가 들어 섰네요. 그리고 작년 Cbs방송국이 들어선 바로 옆에, 3천여평 큰 건물이 다음 달이면 완공이 된다네요. 코로나 덕에 갈 곳이 없어져서, 오랫만에 내가 사는 박사마을 고삿길을 걷다 보니, 예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안으로 들어와 보이네요. 마을 길도 새로 생기고 새 집들이 들어 서고, 새로 들어선 빌딩도 새롭게 보이고, 인근 삼악산에선 지난해 부터 케이불카공사가 한창이다. 내년이면 의암호에 유람선이 떠다니고 케이불카가 의암호 위를 그림처럼 곡예하듯 오 간다 하니 꿈을 꾸는듯 하다.

이렇게 주변을 바라 보면서, 텃 밭에 심을 고추며 들깨며 상추와 호박 토마도, 그리고 오이등을 심기위해 삽과 괭이로  일하다 보면, 전혀 힘들거나 지루하지가 않다.  코로나가 준 망중한! 이 여유로움이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은 '눈' 이었음에도, 오늘 따라 유독히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돼서 넘 좋다. 오늘 하루도 내가 머문자리에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운 봄 풍경, 그리고 분주하게 오고 가는 차량들과 난 하나가 되어, 봄 풍경과 봄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찰라의 순간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흐뭇한가! 

내 건강이 얼마나 따라줄는지 알수없지만, 삽 괭이들고 일하는 이 순간이 마냥 좋다. 그동안 우리는 그 찰라적인 진 풍경들을 다 놓쳐버리고, 너무 바쁘게 앞만 보며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작지만 소중한 행복들을 놓치며 살아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혹여 세상의 가치로 볼 때 중요하다는 것들에 매몰 되어, 정작 행복해질 수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는 나 자신은 아니었는지.
  
지난 해 어느 딸이, 어깨 뼈가 골절 된 노모를 모시고 우리 요양원을 찾아왔었다. 입소 수속을 마친 그 다음 날, 전날 입소한 할머니가 어깨통증을 하소연 했다. 언제부터 아프셨느냐고 했더니 모르겠단다. 병원에가서 수술을 받게 되어서야 알았다. 딸네집에서 다친 것을, 이를 숨긴채 입소하고 그 책임을 우리에게 물은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악하게 영악해진 것이다. 양심을 속이고 어머니 의료비용을 요양원에 떠넘기면 당시는 이득을 볼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이 어찌 돈으로만 사는가? 나라로부터 혜택을 이렇게 누리며 살면서도, 순수함이나 감사는 없고 더 영악스러워 져 가고 있다. 정직으로 살아야 삶의 진수가 여기에  있는 걸 모르니 그게 더 서글프다. 이런 얘길하자면 끝도 한도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런 못된 맘 들을 다 갉아 먹어버렸으면 싶다. 자녀들이 부모를 모시기가 힘드니까 나라에서 요양원제도를 만들어, 가족부담금을 전체 비용의 20%와 식대만을 부담케하니, 이 얼마나 감사 할 일인가! 그런데 그런 맘이 전혀 없다. 요양원에 입소한 분들 대부분은 대개 기저환자분들이다. 또 인지능력이 떨어지거나 치매환자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요양보호사들이 눈을 잠시도 뗄수가 없다. 옛말에 열이지켜도 도둑하나를 지키지 못한다는 말처럼 넘어져서 다리골절등 사고가 난 경우가 종종있다. 이런 경우 불과 몇년전만해도 찾아온 자녀들 중엔 "저희가 집에서 모셨어도 그랬을겁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상해보험을 물고 늘어진다. 참 야박한 세상이다. '고마운 마음'이게 없다.

아! 문명이 잠을 자고 인의예지가 인간을 주장하던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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