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미리 교수의 “종교교육”

우미리 교수 / 독일 뮨스터대학 신학박사(교회교육, 교육심리), 하영감리교회 담임목사, 협성대학교 기독교교육 초빙교수, 분더슐레 정신분석심리상담센터 원장(분당), 심리치유센터 해내 원장(서초), 사)한국상담전문가 회장(전), 사)한국음악예술 운영이사(현), 교사대학, 부모, 자녀교육, 감정코칭 강사
우미리 교수 / 독일 뮨스터대학 신학박사(교회교육, 교육심리), 하영감리교회 담임목사, 협성대학교 기독교교육 초빙교수, 분더슐레 정신분석심리상담센터 원장(분당), 심리치유센터 해내 원장(서초), 사)한국상담전문가 회장(전), 사)한국음악예술 운영이사(현), 교사대학, 부모, 자녀교육, 감정코칭 강사

예전에 개그콘서트라는 코미디 프로그램 속에 “누려”라는 코너가 눈에 띈다. 과거 어려운 상황에서 뒤늦게 성공한 시부모님과 며느리가 레스토랑에서 호사를 누려보는 이야기로 꾸며진 코너이다. 가난에 익숙했던 이 세 사람이 부자가 되었음에도 부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들을 웃음으로 그러나 마냥 웃을 수만 없는 슬픈 이야기로 보는 이들을 씁쓸하게 만든다. 코너의 결론에서 며느리가 자신의 누리지 못함을 “어머니 제 몸이 지난날을 기억해요! 제 얼굴이 가난을 기억해요!”라고 외친다. 이를 보고 있자니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과거 한국사회는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으로 분쟁의 역사를 지나, 폐허가 된 이 땅위에 세계가 괄목할만한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 정치문화사회경제의 전반적인 발전과 변화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급속도로 변화되었고 다양화되었다. 그러나 유럽에 비해 극히 짧은 근대화의 과정은 수많은 혼란과 병리적 현상들을 야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경제정치사회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사회는 사실상 그 기준치를 지켜내지 못하며, 자살률, 산재율, 교통사고 발생건수, 국가부채증가율, 잠재성장률, 고령화, 노인빈곤율, 저출산, 저임금 노동자 비율, 노동시간, 출산율 등에서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연일 비정규직 증가, 경제력의 재벌 집중, 아르바이트와 일용직으로 내몰리는 청년들…. 철도민영화, 의료민영화, 서민복지, 하우스 푸어, 민생 안정, 경제 살리기 민주주의로 풀어야 할 문제는 갈수록 많아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문제를 풀어야 할 민주·진보 진영은 ‘대북관’과 ‘사상검증’ 시비에 휘말려있고, 한때 정치권이 강조하던 ‘복지’ 화두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날로 증가하는 성폭력, 사이버폭력, 학교폭력, 왕따, 도박, 중독으로 얼룩진 우리의 사회적 현실 속에 우리는 서로의 안녕을 물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글로벌 시대를 살며 세계화를 주도하는 우리는 누릴 수 있는 삶의 모든 여건 속에서도 여전히 누리지 못하는 슬픈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종교도 현대의 다원주의적 상황에서 그 기능과 위치에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현대의식은 모든 세계관, 종교적 세계관까지도 상대화한다. 이러한 현대의 다원주의 상황이 종교의 사사화(私事化)를 만든다고 버거(Peter L. Berger)는 말한다. 버거의 세속화 이론은 변형이론 또는 사사화이론(privatist theory)으로 종교가 세계를 의미 있고, 중요한 것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기능을 갖으며, 인간을 혼돈과 무질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종교를 설득력구조(plausibility structure)를 마련해 주는 장치로 여겼다. 종교가 이 설득력구조를 잃으면 역사 안에서 제도적이고 공적인 영역으로 세계를 유지하고, 움직이는 힘이 아니라, 하나의 사적인 문제나 영역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과거 한국역사에서 보듯이 언제나 사회경제윤리정신적 좌절과 박탈감을 경험할 때마다 종교는 그에 대한 보상기제로 우리에게 위안(comfort)이 되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며 불안과 긴장을 해소해 주었다. 지금 우리가 갖는 정체성의 혼란, 삶의 의미와 가치에의 상실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그것은 더 이상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종교에 대한 실망과 혐오를 통한 현시대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작 우리는 종교 이외의 것을 누리느라 우리와 우리의 삶을 본질적으로 지탱해주는 종교로부터 스스로 소외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이 기억한다. 과거 한국역사와 세계역사를 통해 우리를 지켜왔던 무한하고 영원한 존재를 말이다.

종교교육은 종교에 대한 이해를 보다 깊게 하고 종교적 정서를 함양하여 종교적인 인격을 형성하고자 하는 교육이다. 물론 우리와 다른 종교적 토양과 전통을 가지고 있는 독일과 유럽의 많은 국가들도 종교교육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미국종교학회(AAR)도 2010년 4월 미국 공립학교에서의 종교교육을 위한 지침서에 종교에 대해 모르면 ‘종교적 문맹’이라 기술하였다. ‘종교적 문맹’이란 “세계의 주요 종교 전통들과, 그 전통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종교적 표현들에 대한 기본적 교의, 그 전통들과 주장들 내에 있는 표현과 신념의 다양성,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인간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삶에서 종교가 감당한 역할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다”라고 규정하였다. 이 지침서는 미국 연방정부가 공립학교에서 종교의 실천이 아닌 교리와 사상을 가르치고, 세계 여러 종교들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서 가르쳐야 한다며, 초등학교에서부터 종교에 대해 가르쳐야 종교적 문맹을 줄일 수 있고, 그래야 편견과 적대감을 줄여 다양성을 인정하고 평화롭게 공존, 협력하며 살 수 있게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종교에 대한 교육이 거의 없다. 종교계 사립학교에서도 2010년 4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종교교육’이 어렵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교육당국도 2011년에 종교계 사립학교는 물론 일반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국가수준의 교과과정을 고시했고, 2014년 3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 교과과정에서는 중학교의 기타 선택과목과 고등학교의 일반 선택과목의 교양과목 중 종전의 ‘생활과 종교’를 ‘종교학’으로 변경, 그 내용도 세계 및 한국의 여러 종교들에 대한 기본 지식과 종교문화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균형 있고 중립적으로 종교에 대한 관점을 지니도록 구성했다. 이 교육과정에 따라 종교교육이 된다면, 학생들에게 여러 종교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가르쳐, 자신이 믿는 종교 이외의 종교들에 보다 넓은 이해와 지식을 갖게 될 것이다. 종교교육은 종교인이 가져야 할 믿음체계, 종교적 의례, 종교적 경험 그리고 공동체를 가르치는 교육이다. 기독교인, 특별히 우리 감리교인들도 교회교육내에서의 종교교육은 우리의 기본적 교리 공부의 일환이자 우리의 종교성을 고취해 신앙적선교적 전략으로 갈수 있는 하나의 방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교육을 받지 못한 기성세대, ‘종교적 문맹자’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 이외의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아예 종교에 대해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신앙인 중에서도 ‘종교적 문맹자’가 없지 않다. 그러한 ‘문맹’으로 인해 우리사회는 다른 종교들을 폄훼하거나 곡해하고, 심지어 왜곡하여 비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아가 현대사회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단들과도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존재에로의 기억만이 우리를 이 물질적이고 이기적인 세상과 사회로부터 지켜낼 수 있다. 타자를 통한 나의 이해를 넓혀 하나님을 바라보는 종교적 경험이 우리를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하나님나라의 민주시민으로 살게 하며, 우리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은혜를 이 땅 위에 누리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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