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위기의 순간에 영적예배를 통하여 더욱 빛이 난다

【편집자주】 아래 글은 바사 총독으로 있던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건짐을 받은 이후에 한국을 방문했다고 가상하고 대담 형식으로 다니엘 1장과 6장을 중심으로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이대희 목사 : 코로나 전염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어려운 시간에 이렇게 한국교회를 방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니엘 ; 이렇게 한국교회에 특별한 은혜를 나누게 되어서 감사드립니다.

 

이대희 목사 : 지금 한국교회는 코로나로 예배당에 모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빨리 코로나가 끝나기를 소망하지만 이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때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지혜가 있다면 어떻게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다니엘 ;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한다면 신앙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저도 17세의 젊은 나이에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왔습니다. 성전에서 예배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죠.

 

이대희 목사: 그런 상황에서 어떤 마음이었나요?

다니엘: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비록 몸으로 예루살렘 성전에는 갈 수 없지만 영으로 마음과 몸이 함께 할 수 있고 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으로서 뜻을 하나님께 정하고 바벨론에서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신앙입니다. 물론 어려운 문제가 있겠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대희 목사: 어떻게 해서 젊은 나이에 그렇게 뜻을 정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 아... 예. 그것은 어릴 때부터 예루살렘에서 말씀으로 교육 받은 그것이 힘을 발휘했습니다. 위기를 위해 미리 말씀으로 준비 한 것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힘이었습니다.

한국교회도 어릴 때 교육이 중요합니다. 위기를 이기는 길은 말씀과 기도를 몸에 거룩한 습관으로 자리 잡는 일입니다. 외부의 위기는 오히려 내부를 강하게 만드는 시기입니다. 제가 살았던 이스라엘 상황은 아주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저로 하여금 말씀으로 미래를 준비하게 하신 것입니다. 주변의 영적으로 깨어 있는 분들의 훈련과 지도가 저를 만들었습니다.

 

이대희 목사: 그렇다면 지금 한국교회와 각 그리스도인들은 위기일수록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 된다는 말씀이군요. 각 가정이 자녀들을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고 체득하며 무장하는 사명을 부모들이 감당하고 교회 지도자들은 코로나 이후에 이끌어가야 할 미래의 제자를 양육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히 듭니다. 건물보다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훈련하는 한국교회가 되면 좋겠네요. 결국 위기 때는 예배당 건물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훈련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간다는 의미이군요.

다니엘: 그렇습니다. 지금 저의 경우도 예루살렘 성전은 가보지도 못하고 이방 속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도 예배는 계속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변함없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께 뜻을 정하는 올곧은 신앙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수동적으로 관람하듯이 예배하는 성도는 위기가 닥치면 스스로 예배하지 못하고 어려운 환경에 타협합니다. 제가 바벨론에 포로로 왔을 때처럼 금신상에 절하는 우상숭배 속에서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만 예배하고 섬기는 신앙을 유지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예배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우선을 두는 신앙을 지키고 그것에 나의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에 목숨을 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대희 목사: 그렇다면 몇 가지가 궁금합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바벨론이 멸망하고 바사가 지배하는 시대 속에서도 총독을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어떻게 왕의 명령을 어기고 단호하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핵심원리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오늘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말씀해주시면 합니다. 그래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텐데요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왕의 조서에 찍힌 왕의 도장을 보고서도 평상시처럼 집에 돌아가 예전에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 감사 기도를 하신 모습은 한국교회 성도들도 모두 감동을 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행동이 가능했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 저도 인간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안생길수 없죠. 그런데 그것이 가능한 것은 크게는 주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3가지 절대적인 인생의 동선을 붙잡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본질입니다. 제가 이방 나라에서 총독에 임명 받기까지 하나님 앞에서 정한 절대적인 뜻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루에 세 번 예배하는 일입니다. 말씀과 기도의 시간을 정하여 매일 어김없이 지속해온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변하지 않는 본질입니다. 이것이 저의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생각 만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은 있지만 이것이 내 몸에 체득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가 필요합니다.

 

이대희 목사: 맞아요. 말씀과 기도하고 예배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오늘 한국교회도 모두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생활로 연결하는 것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것을 생활로 연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두 번째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죠?

다니엘: 그렇습니다. 두 번째 동선은 시간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70-100년의 인생입니다. 인생은 눈 깜짝 할 순간에 지나가는 짧은 시간을 삽니다. 그 시간 중에서 하루에 세 번 시간을 나누어 하나님께 드리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은 시간을 정복하는 일입니다. 시간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루를 정복해야 합니다. 하루를 정복할려면 시간을 정해서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 힘으로 나머지 시간들도 거룩하게 만들면 됩니다. 사단은 시간을 빼앗아 갑니다. 그리고 다른 일로 바쁘게 만듭니다. 하루를 승리하는 길은 절대적인 말씀과 기도 시간을 갖는 일입니다. 이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며 나 자신을 죽이는 훈련을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이것을 하나님의 시간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나의 안식일을 갖는 것이지요.

 

이대희 목사: 공감되는 말씀이지만 실제는 거의 시간에서 실패하는 것 같습니다. 하루 24시간 중에 아침, 점심, 저녁에 30분을 하나님께 드린다면 1시간 30분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렵습니다. 모두 여기서 실패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총독의 바쁜 정사(政事)속에서 그것이 가능했는지 궁금합니다.

다니엘: 이런 시간을 내는 것은 오랜 습관으로 몸에 배야 합니다. 저도 이것이 지속된 삶의 연장의 방식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저뿐 아니라 같은 유대인들은 대부분 이런 생활을 합니다. 그럼으로 자기를 죽이게 되는 것이지요.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한 것 밖에 남지 않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바람처럼 사라지는 시간입니다. 어릴 때부터 훈련해온 것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고 그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마치 밥을 매일 세끼 먹듯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세 번 먹는다고 보면 됩니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에게 배운 체득된 것처럼 영적인 시간을 드리는 것도 이와 같다고 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다 보니 왕의 어인도장을 보았지만 그것은 나를 바꿀만한 힘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매일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버리고 멈추게 할수는 없었죠. 인생 속에서 지속해온 영적동선을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죠.

 

이대희 목사: 아. 그런 비밀이 있었네요. 그러면 다음 세번째 동선은 무엇입니까?

다니엘 : 그것은 장소입니다. 공간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도 코로나 위기로 예배당 장소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예배도 장소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로 우리 안에서도 예루살렘 멸망 전에 많은 논의와 갈등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성전을 버리고 바벨론에게 항복하라고 했는데 왕과 많은 사람들은 성전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패망하여 지금은 건물의 성전은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직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서입니다. 하나님의 공간은 건물이 아닌 모임입니다. 사람이 있는 자리가 공간입니다. 건물도 사람이 없다면 죽은 공간입니다. 사람을 위해서 건물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간 개념은 사람중심으로 움직여야 하고 그 사람이 있는 장소를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되면 그곳이 성전입니다.

지금 저는 함께 모일 수 없는 상황이기에 혼자서라도 저의 골방을 만들어 구별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장소와 구별된다는 의미로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어 놓고 기도하는 공간이 저의 성소입니다. 하나님이 성전의 동쪽 문으로 오시는 것을 상징하는 의미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시온성인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한 것이라 보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혼자 예배하는 것이 아닌 어디서 있든지 흩어져 있는 포로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일지라도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 함께 모이는 신앙 공동체 장소가 되고 그곳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모두가 한 마음으로 거룩한 공간에 함께 하며 공간이 성전으로 창조되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시는 그 하나님을 이곳에서도 영광을 올릴 수 있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예배입니다. 공간을 창조하여 어디서나 계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면 이것이 하나님을 세상에 선포하는 영적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면 예배는 멈추지 않고 항상 기도하듯이 예배할 수 있습니다.

 

이대희 목사: 결국 그렇게 하나님께 예배하다가 나중에는 사자굴에 던져져 위험을 당했는데 그때 어떤 심정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다니엘: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로 죽음을 맞이했는데 사실 그것이 저에게는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이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심을 더욱 믿는 순간이 되었기에 이후에 닥치는 위기는 오히려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심을 실제로 보여주시는 증거의 현장이 된 것이라 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항상 일어나야지 시시로 바뀌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하나님이 이방 속에서. 다리오 왕에게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사자굴이라는 위기가 더욱 빛나게 해준 것이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도 이런 위기가 오히려 대적들에게 하나님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순간이며 세상을 향해 빛을 비추이는 기회가 되었다고 봅니다. 위기속에 있는 한국교회에게 나를 사자굴에서 건지신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이 동일하게 임하시길 기원하고 축복합니다.

 

이대희 목사 : 아. 귀한 말씀입니다. 본질인 말씀과 시간과 공간이 서로 연결하면 그곳이 성전이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교회가 되며 그런 믿음을 통하여 한국교회가 새롭게 되는 시간이 된다는 말씀으로 마음에 깊게 새겨 봅니다. 지금 코로나 속에서 한국교회가 풀어야 할 문제들을 잘 말씀해주셨다고 봅니다. 오늘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코로나 위기 속에서 더욱 신앙의 빛이 나는 한국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니엘 : 감사합니다.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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