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인과 발달장애인의 음악이야기 (2)

 

고대인 음악감독 (뮤직그룹 파라솔 대표)
고대인 음악감독 (뮤직그룹 파라솔 대표)

후배의 제안에 고민이 되었다. 소통의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이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고, 나를 때렸던 친구가 무서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당시 졸업 후 외국 유학에 대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로 생각하고 일주일에 두 번, 복지재단에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그렇게 발달장애 아이들과의 만남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냉소적이고 무관심한 선생님이었다.

악기를 가르쳐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거나 동문서답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몰랐고, 장애인이기 때문에 악기 연주를 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키우시는 부모님도 아이들이 연주를 잘할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으셨다. 나는 아무렇게나 소리 내고 연주해도 잘한다고 손뼉 쳐 주었다.

악보를 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서 악보의 음표를 놓치지 않도록 짚어주는 정도가 내 역할이었다. 합주 시간이 두 시간이었는데, ‘언제 끝나나’ 시계만 보는 선생님이었다.

그렇게 1년 반 정도가 지났다. 나는 한결같이 아이들에게 냉랭한 선생님이었다. 나의 무관심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나를 대하는 모습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기 시작했다.

대화가 잘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내가 연습실에 오면 좋아하고 올 때 갈 때 두 번씩 꼬박꼬박 인사하고 웃어주며 한결같고 순수한 태도를 보게 되었다. 나는 발달장애인과 소통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무관심했지만, 아이들은 나를 있는 그대도 좋아해 주는 모습에 감동이 되었다. 이후 아이들을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지게 되었다.

그즈음 한 어머님께서 많은 선생님들이 아이를 가르치다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도 표현을 안 할 뿐이지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느끼는 것 같은데, 소통이 어렵다고 대충 대하고, 귀찮아하고, 엉터리로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던 그동안의 내 행동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많이 미안했다.

유학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가기 전까지 만이라도 잘 가르쳐 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다짐을 하고 시작한 것이 기초 연습이다. 한번 도 해본 적 없는 지루하고 힘든 롱톤 연습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도~~~를 여덟 박자로 길게 불게 했다.

평소 재미있고 쉬운 소곡을 불고 싶은 대로 불었던 아이들에게 롱톤 연습을 시키니 난리가 났다. 엄마 찾으며 밖으로 나가는 아이, 보면대를 던지고, 벽에 머리를 박고, 본인 손을 깨물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고, 악기 연습은 집중을 해야 하는데 매시간마다 엉망진창이었다.

잘해보려다가 아이들 스트레스받게 왜 그렇게 까지 하냐는 소리만 들었다. 마음에 낙심이 되었다. 아이들 스트레스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렇게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악기 연주자가 될 것도 아니고, 전공도 아닌데, 그냥 아무렇게나 불고 싶은 대로 불면 어때?라고 예전처럼 대충 하면 되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유학 가기 전까지만 이라도 한 번은 제대로 가르치겠다는 다짐을 어기기 싫었다. 아이들의 돌발행동(도전 행동)이 나올 때마다 당황스럽고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기본 연습을 이어갔다. 아이들이 기본 연습을 통해 점차 소리가 잘나게 되면서 변화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는 귀가 조금씩 열리게 되면서 소음이었던 소리가 화음으로 바뀌고 있었다. 남의 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어려운 아이들이 변화되고,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고 가끔 연습에 오지 않는 다른 친구의 안부를 묻는 등 작은 변화의 모습을 보게 되면서 발달장애가 있지만 ‘이 아이들이 앙상블 연주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속 작은 희망이 싹트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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