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사역자에게 고하는 말씀 (44)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다.

회심 후 바울이 처음 찾은 교회는 광야

히브리적 정신세계와 헬라적 사유의 그늘에서 성장한 사울 곧 바울은 두 세계의 사람이었다. 그는 연약한 육신에 능력의 성령을 모셨기에 외관상 약해보였으나 형형한 눈빛으로 인해 늘 좌중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곧 한 인격 안에 약골과 강령인 두 세계가 있었다. 하늘 아래에서는 로마 시민권과 하늘 위에서는 천국 시민권의 두 세계가 있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을 향해 몸을 돌려세우던 바로 그날 교회 박멸을 기대한 사탄은 희희낙락했지만 천지개벽보다 더한 영계의 대반전을 내다보았던 하늘의 천군천사들은 희열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다메섹은 빛이 어둠과 충돌하여 깊은 잠에 빠져있던 한 영혼을 깨우는 대각성의 공간이었다. 한낮의 빛은 미몽(迷夢) 속에서 하나님께 등졌던 바울을 온전히 돌려세우는 거룩한 시간이었다. 바울은 의인의 종교인 유대교를 버리고 죄인의 종교인 기독교로 돌아섰다. 몽학 선생에게 하직을 고하고 그리스도께 귀순했다. 유대교의 정예 투사가 그리스도에게 항복의 백기를 들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회심 후 바울이 처음 찾은 곳은 교회의 중심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인적이 드문 아라비아 광야였다.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에서 그의 영적 여정을 시작했다. 바울이 찾은 아라비아 광야가 시내 산이 위치한 아라비아인지 아니면 사해와 다메섹 동남부에 형성되었던 나바테안 왕국이었는지에 따라 3년의 삶이 기도와 묵상과 말씀 연구에 몰입했는지 페트라를 중심한 인근 도시민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인지 결정된다. 어느 곳이 되었든지 바울이 기도 중심의 삶과 사역에 전념했을 것이라는 사실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엎드려 기도함으로 영혼의 순화를 다그쳤고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며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복음의 정수(精髓)를 알알이 새겨갔다. (그가 머문 곳이 나바테안 왕국이었다면) 누구든 마주치는 상대에게 가슴에 일렁거리는 불길을 따라 진리의 말씀을 열정적으로 토해냈다.

광야에 찾아오신 하나님, 말씀으로 바울을 덮다

무인 광야에서 바울은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영적 걸음마를 익혔다. 율법의 법리대로라면 그는 이미 선생의 반열에 들었지만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여전히 갓난아이에 불과했다. 두터운 학자의 외투를 벗어버린 바울은 마치 갓 태어난 핏덩이처럼 복음의 강보에 싸였다. 주님의 성령이 손수 보살폈다. 바울은 단독자의 영혼으로 홀로 거하시는 하나님과 독대하는 자리에 처해진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바울은 대중의 버림을 당하고 가까운 동료들이 등을 돌리는 절대 고독의 순간에도 하나님 앞에 서는 법을 배워갔다. 혼자 버려진 상태에서 고독의 영성을 익혔다. 우주의 고아가 되어서야 자연의 영성에 눈이 뜨였다. 사막의 바람을 맞으면서 견인(堅忍)의 영성을 일궜다. 사막의 태양은 열정의 영성에 불을 댕겼다. 바울은 생애를 통틀어 자주 사막으로 은둔했을 것이다. 영성 생활의 고고성(呱呱聲)을 울린 그곳에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자신만의 사막을 찾아가 다짐하고 재충전했을 것이다. 그곳이 때로는 빌립보의 감옥이었다. 풍랑 속에서 난파 직전에 놓였던 선상이었다. 온 세상의 반대에 직면할 때였다. “작은 자” 바울은 그때마다 왜소했다. 약했다. 미미했다.

크신 하나님은 “큰 자” 사울이 작은 자 바울이 되어 저 깊은 광야에 내쳐질 때마다 그의 곁에 찾아오셨다. 말씀으로 찾아오셨다. 계시의 말씀으로 찾아오셨다. 능력의 말씀으로 그를 감쌌다. 위로의 말씀으로 그를 둘렀다. 경고의 말씀으로 그를 날 서게 했다. 예언의 말씀으로 그를 채웠다. 지혜와 지식의 말씀으로 바울의 전존재를 뒤덮으셨다. 다니엘에게 임했던 명철(INSIGHT)과 총명(INTELLIGENCE)과 비상한 지혜(OUTSTANDING WISDOM)가 그에게 풍성히 임했다. 말씀이 그의 영성과 지성을 함몰시켰다. 그의 신앙과 이성의 간극(間隙)을 허무셨다. 그는 말씀의 대 사도가 되었다. 가장 위대한 신약의 집필자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그는 숨었지만 때가 되자 하나님이 그를 드러내셨다. 그가 드러나야 그에게 주어졌던 복음이 드러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난에 고난당하지(suffer) 않고 고난을 넘는 서퍼(surfer), 바울

오늘 외롭고 답답한 환경에서 환경에 짓눌려 그 뒤의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면 그 고독은 아무 쓸모없다. 신앙 의지의 날개를 퍼덕여야 한다. 욥은 거친 풍파를 계속 뒤집어쓰면서도 홍수 위에 좌정하신 주님을 뵈었기에, 풍랑 너머 자신을 지그시 내려다보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았기에 고난 자체에 고난당하지(suffer) 않고 오히려 고난의 풍파를 타고 넘는 서퍼(surfer)가 되었다. 태산이 가로막으면 삽과 곡괭이로 산허리를 잘라내야 한다. 커다란 바위덩이들이 경작지를 쓸모없게 만들면 부수고 캐내어 부드러운 흙으로 뒤집어엎어야 한다. 벽돌이 머리를 때리면 그것을 기초석 삼아 집을 짓는다. 버려진 땅에도 하나님의 온기는 숨어 있고 혼돈과 공허도 빛에 무너지고 마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고독하면 가장 홀로이신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 군중의 함성에 파묻혀도 고독한 영혼이 있는가 하면 외딴 섬, 땅의 끄트머리에 버려져도 외롭지 않은 영혼이 있다. 광야에 거하신 주님 곁에 아무도 없었지만 들짐승이 함께 있었고 천사들이 수종들었다. 함께 할 사람이 없으면 만물이 영혼의 고독을 달래주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찾아든다. 주위 사방이 무너지면 위로 솟구친다. 동서남북으로 욱여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는 것은 그 속에 하나님의 생명을 간직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친밀함이 장막처럼 삶의 지경을 덮어주기 까닭이다. 목자 되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아무 부족함이 없다. 자족과 임재의 충만은 바울 영성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거친 황야(荒野)에서의 배움이 통달자(通達者)로 세우다

슬프면 울고 아프면 소리 지른다. 하나님 앞에서 울고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는다. 고상함을 유지하려 안간 힘을 쓸 필요도 없고 ‘그런 척’ 혹은 ‘그렇지 않은 척’ 할 이유도 없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코람 데오’의 자세로 사는 자가 누리는 진정한 자유함이다. 모든 상황과 처지에서 오로지 하나님 한 분이면 족하다. 그의 이런 영적 경험의 배경이 나중 놀랄 만한 고백의 증거를 남기도록 만들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 거친 황야에서의 배움이 그를 전천후의 사역자, 삶과 사역의 통달자로 세우게 했으니 이것이 광야를 제대로 헤쳐 나온 자의 긍지가 아니겠는가!

누구 하나 응답하는 이 없어도 개의치 않는다. 언제나 “예”이신 주님이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먹구름 때문에 태양의 열기를 잊어버린다면 태양 앞에 서기조차 부끄러운 일이다. 바울은 외로운 광야에서 주님의 임재하시는 기운으로 사막의 추위를 견디고 내주하시는 성령의 생수로 사막의 열기를 이겼다. 이리 채이고 저리 휘둘리면서도 하나의 끈만 놓지 않으면 된다. 하나님 중심의 끈이요, 끊어지지 않는 언약의 끈이다.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건져 올린 말씀의 헝겊이요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던 야곱의 사닥다리다. 시지포스나 오뚝이처럼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서기만 하면 거룩한 임재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다! 전능의 하나님이 강한 손으로 붙들어 주신다.

두 개의 세계 속에서 영적 정체성을 공고히 한 바울

회심 후의 바울 행적은 이렇다. 다메섹에서의 복음 증거, 아라비아 광야에서의 체재 후 다시 다메섹으로 그리고 3년 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다. 거기서 예루살렘 교회의 두 기둥인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났으나 헬라파 유대인들의 적대로 오래 머물지 못하고 고향인 길리기아의 다소로 돌아가 다시 10년의 칩거생활에 들어갔다. 적어도 바울의 생애에는 두 개의 광야 체험이 있다. 하나는 회심 직후의 아라비아 광야 3년 체재요 다른 하나는 본격적인 선교 사역 직전의 다소 체재 10년이다. 당연히 기도와 말씀이 중심을 이룬 영성 진작의 기간이라 여겨진다. 커다란 사역을 앞두고 펼쳐진 거친 광야에서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바울을 은혜 세계에 머물게 했을 것이다.

생애 전체로 보자면 바울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란 정체성 역시 광야의 환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뒤섞일 수밖에 없는 혼합적인 상황에서 바울은 순전한 누룩으로 하나님의 사람다운 신실함을 지켰다. 우리는 자주, 쉽게 변질되어 하나님의 사람이라 불리기 어려운데 그는 영적인 자기정체성을 항상 고수했다. 깨어져도 본연의 색을 잃지 않는 구슬처럼 바울은 삶과 사역이 궁지에 몰려도 성령이 새겨주신 그다운 본질만은 변치 않았다. 두 개의 시민권(로마 시민권과 천국 시민권), 두 개의 배경(헬라 문화와 유대종교), 두 개의 세계(율법과 은혜), 두 개의 경험(이성과 신앙)을 삶에서 두루 섭렵하여 자신의 인격 속에 녹아들게 한 바울은 하나님이 고르고 뽑은 대언자였다.

그는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위치된 삶을 보였다. 영구한 도성을 향하는 순례자의 길을 걸으면서 역시 세상을 향한 사명자의 걸음을 일 보도 뒤로 물리지 않았다.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종의 삶을 추구하면서도 세상을 위한 대언자의 소명을 잊지 않았다. 다메섹 도상에서 하늘로부터 강한 빛을 쪼인 이후로 안질은 그를 괴롭히는 육체의 가시가 되었으나 그것을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은총의 수단으로 여겼다. 바울은 단순히 아라비아 광야와 다소에서의 칩거(광야 생활) 뿐 아니라 자신의 육체 속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라는 광야를 안고 살았다. 깊은 기도에서 쌓인 내공은 그의 형형한 눈빛만이 아니라 그의 서신들을 통해 지혜의 번득임으로 후세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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