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의 끝물과 마지막 섬광
하나님이 세상에서 말씀을 거두시면 구원을 위한 말씀의 효용은 끝나고 말씀을 더럽히거나 거부하던 이들에 대한 심판의 효용성만이 증대할 것이다. 기쁘고 복된 소식은 더 이상 존재치 않는다. 물론 활자화된 성경이 모두 사라진다는 말은 아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능력인 말씀의 영이 철수해버림으로 성경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말이다. 그리심산 없이 에발산의 말씀만이 저주와 경고의 기능을 다하게 될 때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질 것이고 말씀의 전령들조차 잠시 후엔 할 일을 잃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이 사라지는 순간부터 교회의 모든 강단에서는 메시지 없는 빈 말만 무성하게 될 것이다. 자칭 메신저는 있어도 충실한 메시지 전달에 애썼던 이들이 떠나버린 교회는 고적한 광야처럼 될 것이다. 강단과 회중석 사이에 감도는 것은 성령 부재의 차가운 기운일 것이다.
마지막 심판에 앞서서 하나님은 영광의 말씀을 거두어 가신다. 지금 상황을 표현한다면 말씀이 후퇴를 거듭하는 중이다. 여전히 말씀의 씨 뿌리는 선교 사역은 한창이다. 그 어느 때보다 회개와 부흥의 역사도 뚜렷하다. 한쪽에서는 죄악이 넘실대는 파도처럼 세상을 뒤덮을 듯 한데 다른 쪽에서는 영혼 추수하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전반적으로는 부흥의 끝물에 이르러 하늘 문이 닫혀가는 중이다. 곳곳에서 번득이는 광채를 부흥의 불꽃으로 여긴다면 크나큰 오해다. 더 이상 부흥은 오지 않는다. 위대한 구원의 역사도 한 물 갔다. 교회가 지난 역사의 어느 시점처럼 침체기에서 반등할 기회는 영영 사라졌다. 전반적으로 교회시대도 저물어가고 사람들은 명멸하는 빛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것이 점등의 신호인지 소등의 예표인지 가늠할 길이 없다. 바짝 정신 차려야 한다. 국지적인 부흥 현상에 속지 말고 머지않아 다가올 캄캄한 흑암에 대비해야 한다. 빛이 소멸하기 직전의 눈부심처럼 지금의 때가 그런 징조를 보인다. 간헐적인 불길을 오해하지 말라! 이는 절정의 회개나 부흥을 위한 불타오름이 아니다. 종말에 앞선 마지막 반짝임이다. 불모지에서는 부흥을 이루고 옥답에서는 기근이 일어난다. 천국의 밑그림과 지옥의 그림자가 세계 곳곳에서 보인다.
교회 안에서조차 들리지 않는 하나님 말씀
기독교 국가라 할 만한 나라일수록 참 말씀은 진주보다 더 귀하다. 영적인 측면에서 중국은 부흥하고 한국은 쇠락의 길을 걷는다. 아프리카는 일어서고 유럽은 절름거린다. 소위 기독교 국가보다 회교를 비롯한 이교 국가에서 영적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기독교인에게 나타나신 주님보다 이슬람교도들에게 나타나신 주님 이야기가 더 많이 들린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조차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도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실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들었던 하나님 말씀의 질감을 기억하면서 그와 같은 말씀을 듣기 위해 동서남북을 찾아 헤맨다. 내 나라에서 들을 수 없는 그 말씀을 듣기 위해 다른 나라를 찾는다. 성령의 역사가 질풍처럼 지나가는 선교지 방문은 말씀을 전하러 감이 아니다. 예전에 이 땅을 찾아와 한참을 울렸던 그 말씀이 그리워 그 말씀을 듣고자 찾아가는 경청의 여행이다.
아모스 선지자의 결론은 절망의 선언이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말씀을 듣고자 찾아 헤매는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래서 그토록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들이 말씀의 기갈로 인해 쓰러지고 만다. 그들이 누구인가? 말씀을 멸시하는 무리가 아니다. 시대의 흐름에 자신을 맡겨 운신하는 가벼운 영혼들이 아니다. 참 말씀을 찾고자, 그 말씀의 소리를 듣기 위해 시대의 광기를 역행하면서 외로운 길을 더듬던 의의 추구자들이다. 말씀을 그리워하면서 말씀을 향한 목마름과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하나님 앞에서 죽어간 그들을 누가 있어 위로할 것인가? 골짜기에 버려진 마른 뼈들로 화해버린 그들에게 바람과 대언의 말씀이 이르러야 살아 일어나서 여호와의 큰 군대를 이룰 터인데 대체 이 일을 어떡해야 한단 말입니까?
오, 하나님이여! 이 시대를 향한 당신의 뜻은 무엇입니까? 진정 파국 직전의 상황입니까? 말씀을 공식적으로 거두셨습니까? 잠시 어디 맡긴 게 아니라 영원히 감추셨습니까? 중국 일각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황사처럼 이 땅에 실려 올 수는 없는 것입니까? 주님, 용서하십시오! 저의 이 욕심을.......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까지는 아니어야 합니다. 이 땅의 아름다운 딸들은 말씀으로 그 아름다움을 더 빛내야 합니다. 이 땅의 젊은 남자들 역시 말씀으로 그 청춘의 힘을 과시해야만 합니다. 세미한 음성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흔적만이라도 남겨주십시오! 천둥번개라도 좋습니다. 그 소리와 빛에 귀가 먹고 눈이 멀면 또 어떻습니까?
오, 주님! 제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십시오! 한두 마디면 족합니다. 알맹이를 거두시고 껍질만 남겨진 말씀으론 사역은 고사하고 스스로 견디기도 어렵습니다. 긍휼과 자비의 소리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분노와 책망의 말씀이라 해도 귀 기울여 듣겠습니다. 큰 비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이슬비면 어떻고 가랑비면 어떻습니까? 땅은 이슬에 젖고 옷은 가랑비에도 젖습니다. 제게 뿌려주십시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흠뻑 비에 젖고 싶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손목을 비틀어가며 짤 때 마지막 떨어지는 물방울의 찌끼가 되어서라도 목말라 애타 하는 영혼들의 입술을 적시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타는 목마름을 잠시라도 진정시키고 싶습니다.
섬광(閃光)같은 교회의 현실 앞에 화광(火光)같은 말씀사역자
이스라엘의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이방 땅에서 비참한 노예의 삶을 이어가던 남은 자들을 위해 하나님은 다니엘을 비롯한 희망의 불씨를 바벨론 왕국 깊은 곳에 숨겨두셨다. 제국의 위세가 천하를 호령하며 주변국들을 짓밟아가던 서슬 퍼런 시기였지만 성령의 감동으로 동시대상과 멀고먼 종말의 시대 상황까지 감별했던 다니엘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임재했다. 풀무불과 사자굴의 사지를 뚫은 그의 거룩한 기상은 70년이 끝난 시점에 고국으로 돌아갈 꿈을 안고 전능자의 현존 앞에 무릎 꿇고 오열했다. 매일 그의 기도를 암송/묵상하며 사그라지지 않는 깊은 감동에 젖곤 한다. <주여 3창 기도>의 원조답게(“지체치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를 포함하면 4창 기도의 원조임) 다니엘은 절세의 중보를 드렸다. 팬데믹의 기막힌 상황을 마주 대한 우리로선 그 어떤 기도보다 우선적으로 드려야할 비탄의 읍소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단 9:18-19)
Give ear, O God, and hear; open your eyes and see the desolation of the city that bears your Name. We do not make requests of you because we are righteous, but because of your great mercy.
O Lord, listen!
O Lord, forgive!
O Lord, hear and act!
For your sake, O my God, do not delay, because your city and your people bear your Name.
눈시울에 젖고 콧등이 시큰하는 것은 아직도 주님이 베푸실 긍휼과 풍성한 인자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수년 전 임했던 강력한 암송의 영이 지금도 이 가련한 영혼을 뒤덮길 갈망한다. 그때 인같이 박혔던 이 말씀을 시도 때도 없이 묵상하는 것은 다니엘이 목도하며 눈물지었던 상황과 지금의 시대상이 다를 바 없음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에 필적할 만한 중보자가 없다는 암울한 현실 까닭이다. 멸망할 조국의 수도 예루살렘을 내다보시며 우셨던 주님의 심정이 또한 그렇지 않았을까? 엎드려 간구하는 정성 못지않게 뜨거운 말씀이 내 심령을 달구게 해야 한다. 제단 숯불에 덴 입술이 되어 말씀의 열기에 후끈 달아오른 혀와 입천장 사이로 ‘불의 빛’(火光)이 쏟아지게 해야 한다. 주님! 사라져가는 말씀의 영광, 그 빛 한 자락만이라도 남겨주옵소서! 그리하여 사그라지는 빛의 세상에 한 줄기 섬광이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