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희망(티크와티)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욥17:15).
펜데믹 시대에 우리의 희망은 무엇이냐? 이 전염병 시대에 우리의 소망이 어디에 있느냐? 세계는 2년에 걸쳐서 이 코로나 19 전염병으로 우리의 일상이 달라졌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이전에 생각하던 사고체계로는 이해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졌다. 대학의 환경도 바뀌어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있는 곳이 강의실이 되었고 교수의 연구실이 되었다. 미네르바 대학교가 세계의 최고의 대학이 된 것은 바로 디지털 원격 교육이 이뤄지며 세계 6개 나라에 기숙사를 옮겨 다니며 문화를 익히게 하는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지게 한 데 있다. 또 학생 등록금을 낮추었던 것이 교육의 즉효(卽效)가 되었다. 오늘날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생존 체제를 만들어 소비자의 요구에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욥기 17장에서 욥은 고통의 한계에 부딪히며 어려운 상황을 입으로 쏟아내고 있다. “무덤(라샤하트, 구덩이)에게 너는 내 아버지라, 구더기(라리마, 벌레)에게 너는 내 어머니, 내 자매라 할지라도”(욥17:14). 나의 희망이 어디 있느냐? 너무 어렵고 고통스런 환경이 죽음의 무덤, 수렁에 빠진 상황처럼 비유되며 그 힘든 경우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무덤(구덩이, 함정)과 구더기(벌레)가 우굴 거리는 쉼터의 상황이 바로 가까운 아버지와 어머니, 자매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상태임을 보여준다. 오늘 우리의 상황도 이와 같지 않은가? 욥은 엘리바스의 두 번 째 충고(15장)에 총 네 번째 대답하는 장면(16-17장)에서 이 괴로운 상황을 말한다.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 나를 조롱하는 자들이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눈이 그들의 충동함을 항상 보는구나”(17:1-2). 오늘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너무도 힘든 상태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아주 힘든 상황에서 상대를 서로 비난하고 헐뜯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보상을 얻으려고(레헤레크) 친구를 비난하는 자는 그의 자손들의 눈이 멀게 되리라(티크레나)”(욥17:5). 세계는 고통의 깊이가 더하고 재난과 재앙이 일어나서 혼돈과 무질서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다. “내 눈은 근심 때문에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쿨람)는 그림자 같구나”(욥17:7). 이런 때에 욥은 근심으로 인해(미카아스) 온 몸과 모든 것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백성의 속담거리와 침 뱉음으로 인해 의인은 어려움을 당하고, 경건하지 못한 자의 분노로 인해 힘든 상태가 되지만 결국 주의 도움으로 강건해진다. 또한 고난 받은 의인이 지혜자가 되어 회복과 희망의 끈을 가진다(욥:17:6-8, 10).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웨요헤즈)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요시프 오메츠)”(17:9).
주를 신실하게 의지하고 경건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자가 복음 전하는 자이며, 선교사이다. 벙커(D. A. Bunker, 1853-1932, 방거)는 통역사 인재 양성을 위해 육영공원 교사를 원했던 고종황제의 요청으로 원어민 교사로 길모어와 헐버트와 함께 한국에 오게 된다. 방거(房巨)는 8년 동안 교사로 봉직하며 정3품 당상관 벼슬을 얻을 정도로 교육 공로를 인정받았다. 1886년 내한하여 다음해에 명성왕후 주치의인 애니 엘러스와 결혼하여 외국 최초의 결혼식을 하였다.
벙커는 육영공원이 문 닫자 배재학당에서 아펜젤러는 도우며 삼문출판사를 운영하고 음악을 가르쳤다. 그는 3대 배재학당장 직(1906-1911년)을 맡아 근대 교육을 실시한다. 나중 제자였던 신흥우에게 학당장직을 인계하고 서울과 인천, 강화지역 선교를 하며 동대문, 삼청동, 중곡, 용두리, 왕십리 등 13곳에 교회를 설립한다. 또한 교회 연합 사업과 고종 황제를 호위하며 YMCA 설립을 주도하고 한성 감옥에 갇혔던 이승만, 이상재, 신흥우, 남궁억 등을 돌보며 인도하였다. 한국성교서회 창립위원이었고 동대문 교회를 세웠고 초교파적인 기구인 한국복음주의 선교 단체 연합공의회를 조직하며 연합운동과 찬송가 편찬 위원으로 활동하며 1908년 미국 성서공회 책임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73세에 선교사직을 은퇴하고 80세에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에서 소천한다. 그 때에 유언하여 1933년 4월 8일 정동제일감리교회 고별예배 후에 양화진에 안장된다. 벙커의 선교는 선교사가 어떻게 선교해야 하는지 보여준 하나님 나라의 대사의 모델이었다. 오늘도 어려운 시대에 이러한 선교사를 부르고 있다. 그들은 고난의 강을 건넌 자들이다.
고난이 위대한 창조의 초석이 되기 때문에 고난의 강을 건널 때 비로소 우리의 인격과 신앙은 한결 성숙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