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221)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33)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KC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KC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그는 꿈 같이 지나가니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요 밤에 보이는 환상처럼 사라지리라”(20:8).

펜데믹은 인류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언제 이 코로나 19바이러스가 사라질까? 재난 지원금이 경제적 재앙의 고난을 당하는 사람을 최소한의 경제적 재난을 돕고 있지만 정신적인 고통에서는 해방시키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물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니 하나님의 역사(役事)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 욥기 20장은 소발(세 번째 친구)의 두 번째 변론(충고)이 있는 본문이다. 여기서 소발은 흑백논리의 관점에서 감정적인 말로 욥이 당하는 고통을 말한다. 이 고통은 바로 네가 지은 죄로 인한 것이라 말한다. 죄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들은 바로 악인의 결국이라는 것이다. “그는 독사의 독을 빨며 뱀의 혀에 죽을 것이라 그는 강 곧 꿀과 엉긴 젖(버터)이 흐르는 강을 보지 못할 것이요 수고하여 얻은 것을 삼키지 못하고 돌려주며 매매하여 얻은 재물로 즐거움을 삼지 못하리니 이는 그가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버렸음이요 자기가 세우지 않은 집을 빼앗음이니라”(20:16-19).

욥이 살아온 삶은 악인의 삶이 아니라 의인의 삶이요 바로 하나님의 신실한 삶을 산 경건한 자이었기에 소발의 말은 맞지 않다. 우리가 평면적으로 살필 것은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불로 소득 하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지 않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 환난의 날에 악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의롭게 살아야 함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된다. “그는 마음에 평안을 알지 못하니 그가 기뻐하는 것을 하나도 보존하지 못하겠고 남기는 것이 없이 모두 먹으니 그런즉 그 행복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풍족할 때에도 괴로움이 이르리니 모든 재난을 주는 자의 손이 그에게 임하리라”(20:20-22). 오늘 일어나는 재난과 재앙의 원인과 결과는 이 욥기에서 그 까닭을 찾게 된다. 이 재난을 통해 당하는 고통이 바로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오는 결과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 원인의 화살을 타인에게서 찾고 오히려 믿는 자들로 인함이라고 하며 그들을 손가락질한다.

그가 배를 불리려 할 때에 하나님이 맹렬한 진노를 내리시리니 음식을 먹을 때에 그의 위에 비 같이 쏟으시리라 그가 철 병기를 피할 때에는 놋 화살을 쏘아 꿰뚫을 것이요 몸에서 그의 화살을 빼낸즉 번쩍번쩍하는 촉이 그의 쓸개에서 나오고 큰 두려움이 그에게 닥치느니라... 그의 가산이 떠나가며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끌려가리라”(20:23-25, 28). 오늘 일어나는 현상과 모습을 볼 때 욥기 본문은 그 재난을 잘 보여준다. 이 재앙을 믿음으로 이긴 신앙의 사람들이 있다. 그중 바로 우리 근대사를 열었던 최초의 선교사, 한국의 영화(靈化)의 문을 연 빛의 선교사,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맥클레이(1824-1907).

맥클레이(Robert S. Maclay1824-1907) 선교사
맥클레이(Robert S. Maclay1824-1907) 선교사

맥클레이(Robert S. Maclay1824-1907)1845년 디킨슨 대학을 졸업하고 1846년 목사 안수를 받고 10월 중국 선교사로 파송받았다. 푸저우 지역을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6년간 하며 푸저우 방언으로 성경, 찬송, 교리답서를 번역했고, 1856년 진신당과 천안당에 두 예배당을 건축한다. 한 영혼을 구원하여 첫 세례교인을 만들고 1863년 신약전서 전체를 번역 출판한다. 18507월 결혼한 스페리와 같이 남녀 매일 학교도 개설하고 여러 학교(영화서원, 푸저우 여학교, 여러 초중고등학교, 푸지안 사범대학)를 설립한다. 그 후에 1873년 일본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일본 선교를 한다. 가우처의 재정적 후원으로 감리교 신학원, 동경 영어학원 청산학원 등을 설립한다. 기독교 서적과 일어 성경번역 등 문서 선교에도 힘을 쓴다.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서 그는 가우처의 편지를 받고 18846월 일본을 출발해서 2주간 서울에 머물며 고종황제에게 선교 청원서를 올려 허락을 받고 정동 일대를 매입하여 한국 선교의 문을 연다. 김옥균과 윤치호는 맥클레이를 1882년 일본에서 만남으로써 그가 한국 선교의 물꼬를 트게 한다. 1884331일 초대 감리사 임명을 받고 1889년 은퇴할 때까지 한국 선교의 총괄적인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그는 한국의 문화를 개방하여 지식의 문, 사교의 문, 문화의 문, 도덕의 문, 영화의 문을 연 것이다(양주삼).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이여”(52:7). 이처럼 맥클레이는 동양의 아브라함으로서의 선교사가 된 선교사의 아버지이다. 우리도 이 발걸음과 같은 발걸음을 내딛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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