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의 약해진 영안과 몰락하는 가문
엘리의 시력이 점점 약해진 것은 빛을 멀리하고 어두움을 가까이 했기 때문이다. 성소의 거주자가 자기 처소에서의 안식을 더욱 사랑했다. 왜 그가 사무엘처럼 성소에 있지 못하고 자기 처소에 누웠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그 상황이 일시적이었는지 지속적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는 영광의 순간, 사무엘은 있어야 할 곳에 있었고 엘리는 그러지를 못했다. 빛이 사라지지 않던 성소에 거하기를 기뻐하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어두운 성소 밖에 처소를 정하면서부터 영적인 안목은 힘을 잃었다. 빛에서 멀어지자 그의 영혼에 반짝이던 내면의 빛이 종적을 감추었다. 대신 짙은 흑암만이 그의 내면을 채워왔다. 빛에서 등을 돌리자 그에게 찾아든 것은 어둠의 권세였다. 단 한 조각의 빛도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자 앞을 내다보고 뒤를 돌아보고 내면을 들여다보기에 능했던 빛의 아들이 어둠의 자식으로 화했다. 그의 어두워짐은 단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성전 사역이 희미해지고 이스라엘을 둘렀던 광채가 빛을 잃었다.
그 영혼이 어둠에 물들자 자식들이 보여준 어둠의 실체를 방관할 수밖에 없었고 어둠에 속한 행위들을 바로 잡지 못했다. 육신적인 부성애에 가려 자식들의 어둠을 방치했다. 그의 묵인과 방임은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어둠을 가속화시켰고 급기야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았다. 비뚤어진 애정을 바로잡지 못하면 망하는 것은 자식들의 장래만이 아니다. 그들의 영혼이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흑암에 잠겨버린다. 회초리를 아끼는 자는 자식을 파멸케 하는 우부(愚父)다. 값비싼 지혜는 회초리의 따끔함에서 비롯된다. 솔로몬의 지혜는 이 점에서 정확히 우리를 일깨워준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잠 23:13-14) 말씀의 빛이 사라진 상태에서 재빨리 벗어나지 못한 흑암 상태로 엘리는 이상을 잃었고 그 결과 자식 사랑의 바른 길을 버리고 굽은 길을 택함으로 가정 몰락의 불운을 겪었다.
균형 잃은 시력과 비극적 종말
이상은 일종의 암시이다. 시대를 예시하는 징조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불현듯 눈이 열려 전개되는 초시간적 파노라마가 이상이다. 한 사람이 이상을 보게 되면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무작정 맞이하지만은 않는다. 불확실한 운명의 노예로 전락하지는 않는다. 거룩한 꿈이 그에게 작은 빛을 비춰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이 점점 어두워진 엘리는 이상이 흔치 않은 시대를 온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내면의 암실에 갇혀 지내느라 미래가 암시하는 바를 전연 알지 못했다.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시각이 사라지고 미래에의 약속이 없어지니까 현실의 기반조차 제대로 지탱하기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전쟁에 패한 이스라엘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었던 법궤마저 적들에게 빼앗겼다. 승리와 영광의 주춧돌이었던 법궤를 잃어버림으로 그 상실의 고통과 저주는 배가되었다.
급격히 균형을 잃어버린 엘리의 시력은 그를 부끄러운 죽음의 길로 이끌었다. 그의 마지막을 묘사한 성구를 오늘 읽어야 하는 것은 부끄러움이요 고통이다. 그의 마지막은 엘리가 그렇게 맞이해서 안 될 그런 파멸이었다. 시대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안목만 갖추었어도 엘리의 종말은 덜 비극적이었을 것이다. 그가 가까운 장래에 벌어진 사태를 내다보지 못한 것은 눈을 감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깨어 불을 밝혔더라면 희미하게라도 보았을 텐데 엘리는 눈을 뜨지 않고 감긴 상태로 지냈다. 불의에 눈을 감고 거짓에 눈을 감고 핍박과 회유에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크게 떴던 자가 스스로 눈을 감았다. 거대한 환상의 무게에 짓눌리기가 싫었던 것이다. 가정과 사역의 혼란스런 상황으로 인한 감당할 수 없는 영적 압력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소경의 길을 자처한 것이다.
내적 둔중함, 무뎌진 통찰력, 흐릿해진 안광
주님이 십자가에서 엘리를 불렀듯이 사람들은 이 시대의 사사인 엘리를 찾고 있다. 분별력이 약한 양떼들은 자신들을 푸른 초장에 누이고 잔잔한 물가로 이끌 목자를 부르고 있다. 이 사사이고 목자여야 할 이가 누구일까? 소위 영적인 지도자들이다. 사람들이 이 시대에 갑절로 절망하는 것은 이 시대를 밝힐 빛의 아들들이, 이상을 보고 꿈을 꾸어야 할 엘리들이 눈을 감아버렸다는 현실로 말미암는다.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빛을 거절하고 세상의 휘황찬란한 거짓 빛에 현혹되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는 축복과 부흥이 주는 안락함에 길들여져 몸이 비둔해진 엘리들로 가득하다. 십자가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거짓 평안의 아들딸들이 진리와 은혜의 빛을 거절하고 허영과 탐욕의 거짓 빛에 눈이 멀어버렸다. 볼 것을 보지 못하고 보아서는 안 될 것들을 즐겨 보면서 그렇게 눈이 멀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땅에 즐비해진 엘리들은 이 시대의 절망이요 하나님의 아픔이다. 그들이 사무엘만 할 때, 아직도 그 영혼이 미소년의 모습을 잃지 않았을 때, 젊은 엘리의 영적 통찰력은 예리했고 심안의 능력은 초 절정이었다. 이상이 묻어난 말씀에는 광채가 났고 이상에 휩싸인 정신과 생각은 진주보다 더 영롱했다. 엘리의 눈이 어두워진 배경이 결코 98세란 세월의 흔적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면적 둔중함에 있었다. 무디어진 통찰력이며 흐릿해진 내적 안광(眼光)의 문제였다. 연로한 엘리는 보다 밝은 빛을 추구하는 십자가의 길을 벗어나 역사와 전통에 안주함으로 세속의 시녀가 되었다. 탐욕과 영화와 오만의 삼겹살로 비둔해진 엘리는 스스로를 세우기에도 벅찬 모습으로 변했다. 기민함을 잃어버린 늙은 호랑이처럼 야산을 뜀박질하던 야수에서 우리 속에 갇혀버린 짐승이 되고 말았다.
연로한 엘리는
보다 밝은 빛을 추구하는
십자가의 길을 벗어나
역사와 전통에 안주함으로
세속의 시녀가 되었다.
영안이 밝은 자가 어두운 시대의 등불
눈을 뒤덮은 비늘 같은 이물질이 그를 실제의 소경보다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미래는커녕 현실의 한 순간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자식들의 비참한 종말도 예견하지 못했다. 그 자신마저 앉았던 의자에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죽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될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눈이 밝았던 소년 엘리는 보았다. 빈털터리가 되어 베들레헴을 찾은 나오미의 걸음에서 시궁창 속에 겨우 몸을 추스르던 탕자의 귀향을 보았다. 부서지는 무화과 잎사귀 대신 엮었던 가죽옷에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값비싼 희생을 보았다. 옛 하늘과 옛 땅이 종이 축처럼 말려가는 우주의 대 격변 앞에서 신천신지의 도래를 보았다. 눈이 밝은 엘리처럼 우리도 눈만 밝으면 세상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된다. 시간 너머의 시간을, 역사 뒤에 새겨진 역사를, 죽음의 죽음을,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생명의 기운을.
에스겔도 보았고 다니엘도 보았으며 바울도 보았고 요한도 보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땅과 하늘의 이상을 보았다. 한 꺼풀 벗겨진 세상의 실체를, 그 안에 있는 인간들과 역사의 알맹이를 보았다. 악의 진멸과 의의 궁극적 승리를 보았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가 웃으며 거둘 수확의 시기를 보았다. 칠만 길의 심연 아래서 허우적대는 영혼의 기괴스러움과 삼층천의 말할 수 없는 영적 희열을 보았다. 씨 속에 숨겨진 열매를 보았으며 죽은 가지에 박혀 있는 새 생명의 움을 보았다. 흙 속에 갇힌 아담의 형상을 보았으며 질그릇 속에 감추어진 보화를 보았다. 밭 속에 묻힌 진주를 보았으며 살쾡이 같은 열혈 청년 사울에게서 순교자 바울의 최후를 보았다. 갈보리의 언덕에서 빈 무덤의 아침을 보았다. 닫힌 세상에서 열린 천국 문을 보았다. 하늘 문을 여는 교회에서 닫힌 지옥의 자물쇠를 보았다. 가고 다시 못 올 무저갱의 사자와 오셔서 영원히 함께 거할 보혜사의 불꽃같은 강림을 보았다.
그들은 볼 것을 보았기에 육신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당당히 세상의 헛된 영화를 거절하면서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어둔 세상을 밝히는 한 줄기 빛이 되어 소리 없이 사라졌다. 당신의 눈은 어떤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인해 밝음을 유지하고 있는가? 진리의 빛을 여전히 비추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 속에 감추어진 생명의 실체를 확인할만한 조명의 능력을 지녔는가? 영적 소경이 되어 자신의 나아갈 길도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길목마저 막고 있지는 않는가? 당신의 약한 시력을 위해 안약을 발랐는가? 눈에서 까칠한 비늘이 제거되었는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형편에 처해 있지는 않는가? 당신이 진정 빛의 자녀라면 당신의 영안을 밝혀야 한다. 달빛이나 햇빛보다 더 밝은 성령의 빛으로 당신의 영혼을 밝혀야 한다. 그 밝음으로 형제자매의 길을 밝히며 어두워진 세상에 등불로 드러나야 한다. 당신이 정녕 시대를 밝히는 작은 등불인 주님의 메신저라 자처한다면 반드시 그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삶과 사역을 엮어가는 이 시대부터 당신의 면전에서 비통한 울음을 토해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