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神靈)과 진정(眞情)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 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지니라! (요한복음 4:23-24)“


<성도>는 <예배의 삶>을 위해 하나님께 선택된 <축복된 존재>들입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에도, 주님의 낙원에 들어가서도 성도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께 예배> 하는 일입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예배가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며, 예배가 없는 신앙생활을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경배하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 예배의 행위는 성도의 마땅한 도리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43:21)“

특별히 <주일(主日)>은 육체와 마음이 쉼을 얻으며,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에만 열중하도록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거룩한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 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 게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0:8-11)“

<1924년 <런던올림픽>에 <에릭 리델(Eric Henry Liddell)>이라는 <스코틀랜드>의 젊은이가 영국의 육상 경기 <국가대표>로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100미터와 2인 계주를 포함한 4개의 육상경기에 출전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당시 100미터 경기는 올림픽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로 여겨졌기 때문에 100미터 달리기 경주에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영국은 100미터 달리기 경주에서 한번도 우승한 적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경기일정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100미터 경기일정이 주일로 잡혀있었습니다. 그러자 <에릭 리델>은 자기는 100미터 경기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는 진실된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에 주일경기 <출전을 포기>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영국의 <언론>과 <올림픽위원회>가 그의 결정을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영국 왕자>는 그에게 친서를 보내 그가 마음을 바꾸어 경기에 출전해줄 것을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에릭 리델>의 결정은 단호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주일성수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마침내 영국 올림픽 위원회는 그에게 주일날 열리는 100미터 경기 대신에, 주일이 아닌 다른 날에 열리는 400미터 경기에 출전하도록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별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400미터 기록은 48.2초로 미국선수 <호레시오 피치>의 기록 47.8초에 뒤지는 것이었기 때문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릭 리델>은 400미터 경기에서 47.6초라는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습니다.<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람의 영광>을 포기한 그를 위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이듬해 대학에서 <신학학위>를 취득한 그는 <장로교선교사>로 <중국>으로 파송되었습니다.

„네가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 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 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이사야 58:13-14)“

1. 예배의 대상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유일신(唯一神) 하나님>이시고, 지존무상 (至尊無上) 하시며, 영원하시며, 모든 피조물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능하신 행 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지어다! (시편 150:1-20)“

2. 예배의 방식


<성도>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이룹니다. 당연히 예배를 위해 정성을 다해야 하며, 온 몸과 마음을 드리는 <헌신의 예배>여야 합니다. 곧 신령(神靈)과 진정(眞情)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라는 이 표현을 헬라어 원문에서는 ‚성령과 진리 안에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멀린 캐더로스> 목사가 예수님을 믿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어느 날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이끌려 반강제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참 딱하고 불쌍하게만 보였습니다.

„불쌍한 사람들! 이 사람들은 바깥 세상의 재미있는 생활을 모르는 사람들이구나!“ „찬송이 시작됐고 나는 찬송가를 부르는 시늉이라도 내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귀에 바짝 대고서 말하는 무거운 소리를 들었습니다. „뭐냐?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 나는 곧바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습니다. "너는 오늘밤 나를 믿기로 결심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늦고 말 것이다!"

나는 머리를 흔들면서도 따라 말했습니다. "뭐라고? 반드시 늦고 말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릴까? 내가 헛소리를 들은 것인가?“ 그러자 그 음성이 다시 들렸습니다. 이번에는 확실히 들렸습니다. „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그분의 음성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알고 계셨구나!“

„나는 섬광처럼 깨달았습니다. 왜 이전에는 그것을 알지 못했을까?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다! 내가 지금까지 갈구 했던 모든 것은 하나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으며, 바로 하나님께서만이 내 모든 문제의 해결 자이시다!“

그런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예, 하나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분이십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예배하는 처소에 찾아오셔서, 사람을 변화시키고 거듭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전적인 인도하심에 복종하여,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고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1)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는 <준비된 예배>입니다.


„성도를 위한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린도전서 16:1-2)“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 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 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9:5-8)“

(가)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나) <예물 준비>해야 합니다.

(다) <깨끗하고 단정한 옷 준비>해야 합니다.

서양에서는 제일 좋은 옷을 <주일날 입는 옷(Sonntagskleider)>이라고 칭합니다.

(라) 늦지 않게 <미리 와서 기다려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는

<성령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2:3)“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 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에베소서 5:15-21)“

<성령의 임재> 가운데 말씀을 깨닫는 <기쁨>이 있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가 있고, 그리스 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에 <감격>하는 <예배>여야 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3)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는

<진리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 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브리서 4:12-13)“

어느 <아프리카의 추장>이 열심히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전에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식인종의 추장>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선교사>에게 <복음>을 듣고 변화를 받아 겸손하고 진실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백인>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그 <추장>이 <성경>을 읽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추장>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읽는 책이 무엇입니까?„성경입니다.“ „그 책은 시대에 뒤떨어진 책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자 <추장>이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만약 제 손에 성경이 없었더라면, 성경이 나에게 <죄와 구원>에 대해서 가르쳐 주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지금쯤 아마도 제 뱃속에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력>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러기에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인 <성경>을 사랑합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 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케 하며, 모든 선 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후서 3:15-17)“

<이단적 예배>의 특징은 <주관적 감상주의(主觀的 感傷主義>입니다.

<예배 자>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예배>에 임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김정효목사. 1983년 2월 스위스 사역시작, 취리히 중앙교회, 바젤한인교회, 인터라켄 쉼터교회 담임. 총신대학교신학 대학원졸업,  스위스한인교회 홈피 www.koreanchurch-swiss.com 

(4)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는

온 몸과 마음으로 드리는 <정성된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 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1-2)“

(5)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는

<삶으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에베소서 5:8-9)“

한번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Sanctus Franciscus Assisiensis, 1181-1226)>가 자기 제자들 을 데리고 마을로 내려가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저 마을로 내려가서 복음을 전하도록 하자!“ 그래서 제자들은 오늘 스승이 어떤 말씀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할 것인가를 궁금히 여기면서 마을로 내 려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마을로 내려온 <프란치스코>가 아무런 말도 없이 입을 꾹 다문 채 그 마을을 한바 퀴 도는 것이었습니다. 별 수없이 제자들도 묵묵히 그를 따라서 마을을 돌뿐이었습니다. 마을을 다 돈 후 <프란치스코>는 그 마을을 떠나서 다시 <수도원>이 있는 산으로 올라왔습니다.

<수도원>에 돌아온 제자들은 <프란치스코>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아까 복음을 전하러 마을로 내려가자고 말씀하셨는데, 왜 아무런 말씀도 저들에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말은 들은 그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아까 그 마을을 행진하고 있었을 때에 사람들은 우리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우리의 시선, 우리의 발걸음 하나하나 등 모든 것이 하나의 설교였다는 것을 그대들은 깨닫지 못했는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 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고린도후서 2:14-16)“

<거룩한 예배>는 <삶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삶을 예배로 보십니다. 성도는 어느 곳에 있든지 그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 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빌립보서 4:8-9)“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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