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269)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81)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마하세)시오 힘(오즈)이시니 환난 중에(베짜로트) 만날 큰(메오드) 도움(에즈라)이시라”(46:1).

장마철이 계속되고 있는 날이다. 야행성 장마가 심한 폭우를 쏟아서 일상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하고 있다. 코로나로 움직이지 않던 사람들이, 또 장마로 움직이지 않으니 소상공인들은 하늘을 보며 울상을 짓는다. 그래도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고대하며 주의 섭리(攝理)을 좇으며 우리는 겸손히 주님께 엎드린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미세가브)시로다(셀라)”(46:7). 우리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시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고백한다. 전염병과 전쟁과 기근이 세상을 뒤덮이는 중에도 믿는 주의 종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묵묵히 기도하게 된다. “그가 땅 끝까지 전쟁(밀하모트)을 쉬게 하심이여 활(케세트)을 꺾고 창(키쩨츠)을 끊으며 수레(아가로트)를 불사르시는도다”(9).

시편 46편은 시8, 19, 29, 33, 46, 47, 48, 76, 104, 135, 136, 145-150편과 더불어 찬양시편이다. 이 찬양은 하나님의 권능과 거룩과 자비하심에 대하여 찬양하며 선택된 백성들이 구원의 놀라움과 경외로 거룩하신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광스러움을 찬양하며 존경과 신뢰, 감사와 기쁨, 열정에 대해 표현한다(모빙켈). 또한 시편기자는 만군의 하나님께 찬양의 노래를 드리며 회중의 모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있다. 모든 피조물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주님을 찬양해야 함을 시편은 말하고 있다. 찬양시편은 두 가지 형태로 찬양을 한다. 첫째는 일반적인 형태로 하나님의 지속적인 구원의 행위, 영광스러운 행적을 매일 축제 때마다 제의에서 표하며 특별하게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묘사하고 구원의 행동을 자기 확신적이고 보호적인 투쟁으로 표현한다. 두 번째 형태는 제의적인 축제의 형태로 나타나며 위대한 구원활동과 구원하신 야웨를 축하하며 기억한다(46, 48, 76, 114편 등).

시편 46(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알라못에 맞춘 노래)은 열방과 세계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규명한다.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맘라코트)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타무그)”(6).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아룸)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바아레츠) 높임을 받으리라(아룸) 하시도다”(10). 인플레이션과 스테그플이션이 오고 경제 대 공황이 온다할지라도 믿음의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만국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고 높이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며 잠잠히 보고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더 어려운 시절에 오셨던 선교사님들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벽안(碧眼, 푸른 눈)의 선교사와 557인 푸른 넋이 잠들고 있는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서 우리는 참된 안식의 주인공들을 만나게 된다. 한국 최초의 여의사였고, 여성사의 한 획을 그은 박에스더를 키운 로제타 셔우드 의사 선교사의 묘비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바로 옆의 그의 아들 셔우드 홀을 기리는 묘비를 보게 된다. 대구 동산동 3.1운동 길을 따라 죽 올라가면 만나는 대구 은혜 정원에 묻힌 선교사들이 오늘 살아가는 사람들이 줄 수 없는 정신적 안식을 제공한다.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김옥균은 나라의 문을 열어 개화 세상을 보여주려다가 3일 천하를 누리다가 실패하고 이곳 양화진에서 능지처참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선교사 묘역에서는 우리들의 삶의 차원과 다른 삶의 궤적들이 있고 범접하지 못하는 인생의 신비를 가지고 살았던 삶이었다. 그들은 마태복음 924절처럼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이 선교사 묘역은 한 때 지하철 2호선 건설 과정에서 없어질 뻔한 위기의 순간도 맞이하였고, 1970년대는 쓰레기장처럼 방치되었고 한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자유와 평등(신분차별, 남녀 차별 철폐, 개화)과 근대적 의료와 교육, 위생과 과학, 문명과 세계견문 등 빛을 전해주었던 민족의 은인들이었다.

이를 기리기 위해 양화진 묘비 탁본을 작업을 2년간에 걸쳐 417점을 만들었다. 선교사의 묘비에 쓰여 있는 글을 통해 감동을 느끼게 한다.

양화진 선교사 묘비 탁본
양화진 선교사 묘비 탁본

 

내게 천개의 삶이 있다면 한국에 모두 바치겠다”(루비 캔드릭). “예수님은 날 사랑했고, 날 위해 자신을 내어드렸다”(헤론). “조선인을 사랑했고 또 그들을 예수께로 인도하기를 원했다. 저의 수고를 그치매 그 행한 일이 또한 따르나이다”(백정 선교의 헌신한 무어 선교사). 조선의 독립를 위해 만국 평화회의 소식을 알리고 주도했던 헐버트 선교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내한했다가 여독으로 194985일 소천하였다. 그는 자신의 유언에 따라 양화진에 묻히게 되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가나안 땅이 또 어디에 있을까? 바로 우리는 양화진 선교사 묘역과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선교의 역사를 쓰고 있는 땅이 아닐까. “한 시내(나하르 페라가이오)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미쉐케네)를 기쁘게 하도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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