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259)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71)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119:116).

이제는 코로나19, 오미크론 스텔스, 변종 전염병과 함께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독감을 앓은 것처럼 되었고 가래가 후유증으로 남아서 괴롭히고 있는 현실이다. 이미 경제적인 큰 타격이 있고 중국의 공업과 무역지대인 상하이와 광조우가 봉쇄가 되면서 상인들의 어려움이 있고, 철강 재료가 올라가면서 건축 현장이 멈추어섰다. 이러한 때에 사회적 거리두기는 해제가 되어서 자영업이 살아날 것 같은 분위기이다. 이제 우리는 변화된 사회에서 새로운 메타버스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토라(말씀)의 세계를 연구하고 묵상함으로 이 시대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하였다.

시편 119편의 결론부는 마지막 알파벳 쉰과 타우(161-176)의 첫 자로 시작되는 단어들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쉰 단어는 고관들, 즐거워한다. 거짓, 일곱 번씩, 큰 평안, 바라며, 지키다, 지키다는 말로 시를 구성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알파벳 타우는 이르게 하다, 오게 하다, 찬양하다, 노래하다, 되게 하다, 사모하다, 살게 하다, 방황하다라는 말로 시작하며 토라시편을 완성한다. 토라(말씀)을 통해 큰 평안을 가지게 되고 찬양하고 노래하는 인생을 살며, 구원을 받아 살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오늘의 세상, 이 어려운 팬데믹의 시대에 오직 평안히 살며 구원받은 인생이 될 수 있는 것은 이 토라, 말씀인 것을 살펴보았다. 고관들이 핍박하고 탈취물과 거짓으로 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율법을 사랑하고 하루 일곱 번씩 찬양하고 노래하니 장애물이 없이 큰 평안을 얻게 된다.

인생의 생존 비결은 말씀에 있다는 사실을 결론적으로 말한다. “나의 간구(테히나티)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타보)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하칠레니)”(170).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테히)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우테하레레카) 주의 규례들(미쉬파테이카)이 나를 돕게 하소서(햐아제루니)”(175). 주를 찬양하고 노래하며 즐거워하며 살 수 있는 비결은 율례와 계명, 율법(토라)을 사모하고 선택하고 가르침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결국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않고(로 샤카흐티) 묵상하며 살아가는 것(176)이 지혜로운 인생임을 말하며 토라의 세계를 끝맺는다. 시편 150편의 중심은 토라(말씀)이며 결국 인체의 척추와 같이 시편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 말씀의 세계임을 토라 시편이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는 알파벳 시편이 토라와 지혜시편으로 꼭 암송할 중요한 시편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알파벳 시편을 더 살펴보며 인생의 지혜를 얻고자 한다.

선교사들은 타문화권에 가서 살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였고, 그들은 뛰어난 지성과 영성으로 평생 남을 위해, 타민족을 사랑하며 자신의 인생을 밀알처럼 희생하며 살았던 인물이다. 존 헤런(John W. Heron, 1856-1890)은 선교사이자 의사였다. 그는 한국 이름이 혜론(蕙論)이다. 그는 영국 더비셔주에서 태어나 18705월 가족들과 함께 미국 테네시주의 녹스벌로 이주하였다. 그는 테네시주의 메리빌 대학 의학과를 졸업하고 그 이후 테네시 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었다. 계속 의학을 공부하여 1883년 뉴욕 대학교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블랙웰 아일랜드 병원에서 실습하면서 정식 의사자격 시험에 합격하였다. 그 후에 1885년 아칸소 존즈버러에서 해리엇 앨리자베스 깁슨과 결혼하였고, 그 해에 51일 미국에서 조선으로 출발하게 된다. 그는 선교사로서 정식 임명되어 미국 장로교 최초 선교사가 되었다.

헤론 선교사와 양화진에 있는 헤론 선교사 묘역
헤론 선교사와 양화진에 있는 헤론 선교사 묘역

 

존 헤론은 일본에 들어가 이수정을 만나서 조선말을 배우고 문화와 풍속을 익히고 같은 해 620일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조선 제물포에 도착한다. 621일 한성부에 들어갔고, 다음날 호러스 뉴턴 앨런 집을 방문하였다. 그와 동역을 하며 나중 고종의 주치의까지 되어서 18879월 호러스 뉴턴 앨런이 외교관으로 전업 직업을 바꿔 미국에 들어갔다. 그래서 혜론은 후임으로 제중원 원장에 취임하였다 그는 1890726일 제중원 원장으로 의료 활동을 하다가 전염병 이질로 고생하다가 35세 젊은 나이로 소천하게 된다. 729일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서 양화진 묘역에 첫 뼈를 묻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라고 묘비에 쓰며 끝까지 예수의 사랑과 십자가 구원의 희생을 표하며 구원의 역사를 고백하는 혜론의 모습을 본다. 우리는 이 전염병의 시대에 희생된 존 헤론을 기리며 우리의 인생도 아름답게 생을 마감한 젊은 의료 선교사의 뒤를 이어가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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