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사관으로 본 韓日近代史” , 박호용 교수의 한일근대사 강의 (15)

1. 세계사에서 지난 500년 동안의 역사를 서세동점(西勢東漸, 서양의 세력이 동양에 퍼져감)의 역사라고 한다. 그 분기점은 콜럼버스(1451-1506)가 대서양을 횡단해 신대륙을 발견한 1492년을 기점으로 삼는다. 이는 조선 건국(1392) 100년 후이고, 임진왜란(1592) 100년 전이다. ‘지리혁명’(地理革命)으로 일컬어지는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대륙세력에 대한 해양세력으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했다. 그 이후의 역사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비롯하여 영국과 네덜란드와 같은 해양 세력에 의해 주도되었다.

임진왜란은 해양세력인 일본이 대륙세력인 조선을 침략한 것을 의미한다. 포르투갈 상인으로부터 조총을 구입한(1542) 일본은 50년 동안 자체 개발한 조총이라는 신무기를 가지고 조선을 침공했다. 그런데 신무기인 조총으로 육전에서는 대승을 가두었으나 해전에서 명장 이순신의 활약과 더불어 성능이 우수한 함포를 장착한 조선 해군에 패함으로써 물러가야 했다. 조선을 식민지하려는 카이로스적 때가 아직 차지 않은 것이다. 이 전쟁을 통해 뼈아픈 교훈을 얻은 일본은 이후 해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했고, 그것은 서구 세력의 동양 진출과 맞물린 1840년 이후 더욱 절실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나 태평양전쟁에서의 미국의 승리는 모두 해군력에 의해 결정되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은 해양세력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동양이 서양을 앞섰으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부터 전세가 역전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때 동양을 대표하는 중국은 몽골이 세운 원나라를 물리친 명나라(1368~1644) 시대였다. 명나라는 축성(築城)의 시대라고 할 만큼 대륙 세력을 대표하는 몽골의 남하를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고, 북경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 자금성을 비롯한 많은 건축물을 지었다. 서양이 밖을 향해 해외로 나갔을 때, 명조는 정치적 안정을 꾀한다는 명분 아래 울타리를 쌓고 안으로 향해 나아갔다. 명조를 이은 청조(1644~1910)도 중화 세계의 폐쇄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350년이 지난 1842, 아편전쟁에서 대국인 중국은 조그마한 섬나라 영국에게 패하는 결과를 빚었다. 아편전쟁은 중국인뿐 아니라 일본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2. 한편, 지리혁명과 더불어 과학혁명’(科學革命)이 일어났는데, 이는 중세 신앙의 시대’(신 중심)에서 근세 이성의 시대’(인간 중심)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했다. 근대 이성의 시대는 데카르트(1596-1650)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과 파스칼(1623-62)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말에서 잘 나타난다. 이제 진리의 표준이 신앙이 아닌 이성이 된 것이다. 이성의 발달은 자연과학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오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것이 식민지 개척시대에 기술혁명과 맞물리면서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산업혁명이란 1760년대 이후 영국에서 공업생산에 기계가 도입되고 그에 따라 일어난 경제 및 사회적 대변동을 말한다. 영국이 산업혁명의 선두에 서게 된 것은 대서양 무역과 식민지 개척을 통해 유입된 엄청난 양의 석탄과 철, 면포 등을 소유하면서 막대한 자본을 축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식민지를 통해 얻은 엄청난 양의 원료들을 제품으로 만들어 수출하기 위해서는 기계가 필요했다. 이때 방적기가 발명되어(기술혁명) 대량생산이 이루어졌고, 또한 대량생산된 제품을 수송할 증기기관, 증기선이 발명되어(동력혁명) 신속한 유통이 이루어지게 되었다(교통혁명). 특히 1830년에 맨체스터와 리버풀 사이에 철도가 개통되었는데, 철도는 세계로 퍼져가는 19세기 말에는 세계 규모의 철도망이 출현했다.

 

3. 400(1500-1900) 동안 서구는 근대를 추구했는데, ‘근대의 가장 현저한 징표는 자연()이었다. ‘자연학은 지적 세계에서 근대전근대를 구분하는 가장 큰 지표가 되었다. ‘자연학18세기 뉴턴(1642-1727), 19세기 다윈(1809-82)으로 상징되는 물리적 · 생물적 자연에 대한 획기적 이론으로 근대를 열었다. 자연학에 의해 발달한 과학기술문명은 두 계급, 즉 엄청난 부를 거머쥔 자본가(부르주아)와 노동에 시달리는 빈민(프롤레타리아)을 낳게 되었다. 칼 마르크스(1818-83)새로운 경제학’, 즉 공산주의의 출현은 이에 연유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서구에서 400년 동안 엄청난 세계관의 변화와 더불어 열강으로 변모해 가고 있을 때 조선과 일본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한일근대사는 한마디로 말하면 일본은 강대국으로 굴기(崛起)하는 역사였고, 한국은 약소국으로 전락(轉落)하는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임진왜란 이전까지 국력에서 조선과 일본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7년 전쟁인 임진왜란이 끝났을 때(1598)부터 대한민국 정부수립 때(1948)까지 350년 동안 일본은 강대국(강하고 큰 나라)으로 변한 데 반해, 한국은 약소국(약하고 작은 나라)으로 변해 있었다. 이 같은 쌍곡선의 역사는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리고 거기에 숨겨진 하나님의 비밀스런 경륜적 섭리는 무엇일까?(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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