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사관으로 본 韓日近代史” , 박호용 교수의 한일근대사 강의 (13)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그리스도의 복음은 로마 제국 하에서 온 세상에 퍼져나갔다. 하나님은 복음의 세계화를 위해 세 가지를 예정 가운데 준비시키셨다. 첫째, 로마 제국 전역에 길을 잘 닦아놓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은 바로 이에서 연유한다. 로마 제국이 길을 잘 닦아놓은 것은 변방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속히 달려가 진압할 수 있기 위함에서였다. 그런데 그것이 복음의 루트가 되었다. 둘째, 언어의 통일이다. 알렉산더(재위 주전 336-323)가 이룩한 헬라 제국은 전 지역에 헬레니즘, 특히 헬라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리하여 히브리 구약성경(맛소라 본문)도 헬라어 구약성경(70인역)으로 번역되었고, 신약성경도 헬라어로 쓰였다. 제국 전체가 공용어로 헬라어를 사용함으로써 복음의 급속한 확장을 가져왔다. 셋째, 로마 가이사 황제를 숭배하도록 강요하였다. 이를 위해 다른 모든 신들(종교)을 탄압하였는데, 그 틈새를 그리스도의 복음이 파고 들어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중국복음화를 위해 중국공산당 마오쩌뚱(毛澤東, 1893-1976)을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그 자신도 모르는 세 가지를 준비시키셨다. 첫째, 길을 잘 닦아놓았다. 이 또한 이미 언급한 대로 변방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반란을 조속히 진압하기 위해 행한 것이다. 둘째, 언어의 통일이다. 중국 인민을 잘 통치하기 위해 어려운 한자(번체자)를 쉬운 한자(간체자)로 바꾸었고, 베이징 말을 표준어(보통어)로 삼았다. 셋째, 문화대혁명(1966-76)을 통해 모든 종교를 탄압하였다. 이러한 세 가지 준비는 중국복음화를 위한 좋은 토양이 되었고, 그 위에서 한국 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가 중국복음화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19세기 중엽까지 조선은 나라의 봉쇄’, ‘한글의 봉쇄’, ‘신분의 봉쇄라는 세 가지 족쇄에 철저히 묶여 있는 나라였다. 이러한 세 가지 족쇄는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양반 사대부들의 집단이기주의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민족복음화를 넘어 세계선교에 이바지할 선교 한국을 위해 하나님은 세 가지 비밀스런 전략을 진행하셨다. 첫째, 한글사용 전략, 둘째, 강제추방 전략, 종교교체 전략이 그것이다. 때가 찰 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시던 하나님께서 드디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를 차례로 살펴보자.

일찍이 400여 년 전 세종대왕(1397-1450, 재위 1418-50)은 집현전 학자들과 한글(훈민정음, 1443)을 창제하셨다. 이제는 누구나 인정하듯이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이다. 그런데 한자가 그들의 기득권인 양반 사대부들은 배우기 쉽고 편리한 한글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수백 년 묶어두었다. 이는 선교 한국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은 동학의 창시자 수운(水雲) 선생(1824-64)을 통해 한글사용의 물꼬를 트셨다. 1860년 수운 선생은 동학을 창도하면서 한문 텍스트인 동경대전(東經大全)보다 민중에게 직접 자신의 체험을 전달하기 위해 먼저 한글로 된 포교가사집 용담유사(龍潭諭詞)를 썼다. 한글사용을 통해 각성 된 민중들은 역사의 주체가 되어 그의 사후 40년이 되던 1894년에 반외세, 반봉건을 외치며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켰다.

또한 문명개화를 위해 한글의 중요성을 깨달은 갑신정변의 주역 서재필(1864-1951)은 주시경(1876-1914)을 발탁하여 독립신문을 국문 전용으로 발행하였다. 구한말 국문 전용 독립신문은 문명개화와 민족 계몽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다.

독립신문(제1권 제1호, 광고에 독립신문의 가격과 신문에 광고하는 방법 등이 소개됐다)
독립신문(제1권 제1호, 광고에 독립신문의 가격과 신문에 광고하는 방법 등이 소개됐다)

더욱이 한글 사용과 관련하여 서양 선교사들의 노력과 수고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 선교를 위해 만주에서 활동한 로스(1841-1915)와 매킨타이어(1837-1905)는 한글의 우수성을 발견하고는 서상륜, 백홍준, 이응찬의 도움으로 민중의 언어인 한글로 성경을 번역하였다. <누가복음><요한복음>(1882)을 간행한 존 로스는 한글은 현존하는 문자 가운데서 가장 완전한 문자라고 경탄해 맞지 않았다.

한국 최초의 공식 선교사로 일컬어지는 언더우드(1859-1916)와 아펜젤러(1858-1902)도 한글의 우수성에 공감하였고, 한글 성경 출판에 큰 공헌을 했다. 이분들이 1885년 부활절에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을 들고 조선에 들어왔는데, 이는 세계선교 유례상 전례 없는 일로써 한국복음화에 한글이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언더우드는 하나님이라는 순한글 용어를 수용했는데, 이는 이후 한국교회의 신앙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알렉산더 피터스(A. Pieters, 1871-1958, 본명 이삭 프룸킨) 선교사의 공헌은 지대했다. 이분은 러시아(오늘날 우크라이나) 태생으로, 정통파 유대인 가정 출신인 그는 우리 민족에게 한글 구약성경을 선물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다. 이분은 구약성경 한글 번역의 효시인 시편촬요(1898)를 썼을 뿐 아니라 구약젼셔(1911)와 이를 수정 보완한 개역 구약전서(1938)를 완성한 분이다. 일제 말기, 민족말살정책에 따라 한글 사용이 금지된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한글 신구약성경은 사라질지도 모르는 우리 민족을 살리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천우신조(天佑神助)가 아닐 수 없다.

피터스 선교사 가족과 최초의 구약성경인 '시편촬요'
피터스 선교사 가족과 최초의 구약성경인 '시편촬요'
시편촬요에서 촬요(撮要)는 요점만 집어낸 선집의 의미로 시편 150편 중에서 62편만 골라 엮었다.
시편촬요에서 촬요(撮要)는 요점만 집어낸 선집의 의미로 시편 150편 중에서 62편만 골라 엮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이 한류 열풍이라는 문화대국이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한글 때문이다. 또한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었던 것도 한글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한글 성경을 전해준 선교사들과 한글을 지켜내기 위해 수고하고 싸웠던 모든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한민족복음화와 세계복음화를 위해 세계 최고의 문자인 한글을 비밀병기로 은밀하게 준비해 놓으신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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