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이른 아침 교회 마당에 나가니 산들바람이 불어 시원함과 상쾌함이 나의 피부를 자극했다. 2주간 비와 습도와 높은 온도가 반복되는 날씨의 변화가 마음에도 영향을 주었다. 불쾌지수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안정감을 잃어버리게 한다. 비단이것뿐이겠는가? 사람들의 감정과 마음의 변화에 영향을 주는 것은 세상 돌아가는 것이 심상치 않은 탓이 더 클듯하다. 고유가, 고물가, 고환율, 주가 폭락, 안정자산이었던 부동산의 폭락조짐이 불안을 자극한다. 또한 저성장의 늪이 우리사회에 짙은 안개처럼 짓누르고 있다. 날씨와 세상 돌아가는 것이 같이 맞물려서 삶이 고단하고 팍팍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오늘 아침은 이런 세상사와 날씨가 주는 불쾌지수를 한방에 씻어낸다. 교회 마당에 작은 텃밭을 운영하고 있다. 텃밭의 기능보다는 정원의 역할이 더 맞을 듯싶다. 고추를 보니 아주 싱싱하게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2주전만 해도 성장 속도나 열매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 옆에 있는 가지도 줄기와 잎이 힘이 있어 보인다. 벤치에 의지하여 자라고 있는 오이도 싱싱하다.
교회 도로 옆에는 머루나무가 바깥세상을 차단해주고 있다. 파란 잎사귀와 열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치유와 회복이 일어난다. 머루나무는 대개 가느다란 몸통과 줄기가 특색이다. 그런데 20년을 가꾸다보니 기둥과 줄기가 단단하고 굵어 믿음직스럽다. 20년이 되어서 그런지 나의 삶의 동반자처럼 여겨진다.
교회 주변에 심겨진 나무 중에서 큰 형 역할을 하는 나무가 두개 있다. 은행나무와 모과나무이다. 은행나무는 교회 잔디밭에 터줏대감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우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아무리 태양빛이 강렬하더라도 은행나무는 시원한 그늘 막을 선물하고 있다. 모과나무는 교회에 있는 나무 중에서 제일 좋아한다. 이른 봄에는 연분홍색저고리처럼 수줍은 여인의 모습과 같은 연한 홍조를 띤 꽃잎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봄부터 가을까지 잎사귀는 태양의 열과 직사광선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다가, 늦가을에는 노란 향기로운 모과를 선물한다. 잎사귀가 다 떨어진 모과나무에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모습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힐링이요 기쁨이다.
7월 중순, 후덥지근한 아침일 것이라 생각하고 정원에 나왔는데, 산들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서 한 순간에 상쾌함이란 감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교회주변에 심겨진 모든 나무들을 보니 잎사귀가 싱싱하다. 나도 행복합니다. 상쾌합니다. 건강합니다라는 말을 하는듯하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느끼는 것은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늘에서 때를 따라 비를 내려주시니 자연도 행복해한다. 그리고 행복한 에너지가 모습에서 그대로 전달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로 주신 가나안 땅에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면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신11:14).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곳에, 때를 따라 적당한 비를 내려주신다는 것은 가장 큰 은혜이다. 농작물을 재배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물이다. 가나안 땅은 천수답이다. 하늘에서 적당한 때에 비를 내려주지 아니하면 농작물 재배가 불가능하다. 오직 하늘만 바라보고 살아야한다. 가나안 땅은 하늘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곳이다. 하늘에서 하나님이 때를 따라 적당하게 비를 주셔야지만 살아가는 환경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와 수돗물은 식물의 성장에 확연한 차이가 난다. 수돗물을 작물에 뿌리면, 자라는 속도나 열매가 시원치 않다. 그런데 하늘에서 적당한 때에 내려주는 비를 맞으면 작물의 자람과 속도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하늘의 비를 맞고 나면 나 건강합니다. 나 행복합니다라고 식물은 온 모습으로 표현한다.
하늘의 비도 아무 때나 내려서는 안 된다. 적당한 때에 알맞게 내려줘야 한다. 그것이 은혜이다.
‘때’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에트’로서, ‘대답하다’를 의미하는 ‘아나’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곧 ‘에트’는 필요에 부합하는 최적의 때라는 뜻이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결정적 기회의 시간’을 의미하는 ‘카이로스’이다.
오늘 아침 “오직 예수뿐이네” 찬양이 저절로 잎가에서 맴돈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 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히브리기자는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자연도 비를 맞으면서 행복해한다. 인생도 때를 따라 돕는 주님의 은혜 아래 거할 때, 행복이란 선물을 얻는다. 이것이 자람의 비결인데, 왜 이리 현실에 억매여서 문제를 풀려고 하는지 참 어리석은 모습이 내 안에 늘 도사리고 있다. 은혜를 부어주시는 장소는 보좌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보좌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날마다 나아갈 때 삶의 모든 영역에 주님이 돌보신다고 약속하셨다.
참 시원한 아침이다. 산들바람이 주는 상쾌함이 나를 깨운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