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에 다녀온 이집트 성지 여행기이다. 컴퓨터 파일을 정리하다가 여행기를 써 놓은 것이 있어,10년이 넘은 시점에서 본헤럴드에 올려본다. 성지순례가 시간과 돈만 있으면 누구나 일상이던 시절이 코로나로 인해서 일상이 무너진지 참 오래되었다. 자유롭지 않은 하늘길과 사람과 밀접 접촉에 예민해진 지구촌에 자유로운 여행은 당분간 사치일듯싶다. 사업과 학업과 급한 업무로 이동해야할 분들을 위해서 잠시 기다리는 것도 배려일듯 싶다. 


2000년에 이집트를 여행한 기억을 떠올리며, 2011년 10년만에 다시 밟은 이집트, 기대와 설레임으로 카이로에 도착했다. 카이로에서부터 시작한 910일간의 쉽지않은 여정이었다. 이집트 전역에 퍼져있는 도시를 다니며 옛과거의 명성을 추적하는 과정은 퍼즐을 맞추어가는 게임같이 느껴졌다. 때로는 지치고 힘들었지만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쁨을 느끼는 즐거움도 많았다.

예정에 없던 모카탐 지역을 방문했다. 모카탐 지역에 성 시몬 수도원을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생시몬 수도원에 가기 위해서는 긴 골목길을 20분이상 올라가야 한다. 골목길 양편에는 5층 높이의 건물들이 빼곡이 들어섰지만 주변환경이 너무 지져분하여 코를 수건으로 막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 지역은 쓰레기장에서 비늘과 병과 플라스틱 등을 수거하여 가공하는 일을 하기에, 좁은 골목길에는 쉴새없이 분리된 폐품을 실어 나르는 차들이 즐비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손님들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다. 이집트 어느 지역에서도 볼수없던 편안함이었다. 이 지역은 유일하게 70%이상 기독교를 믿는 지역이다. 집집마다 십자가를 걸어놓고 있고, 일터에도 성화나 십자가를 걸어놓고 있다.

성경에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저희 것임이요라고 예수님은 선포하셨다. 가난한 사람만이 복이 있고, 부자는 복이 없는 저주의 대상인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이 말씀한 의도는 가난하게 살아도 예수님을 소유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이고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이라고 했을 것이다.

모카탐 지역의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지만 예수님을 마음에 소유했기에 그들은 쓰레기를 뒤지며 가공하며 생활하지만 모두다 편안함과 기쁨을 가지고 사는 모습이 환히 비춰졌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는 말씀을 경험하는 행복한 길거리였다.

그리고 성 시몬 수도원에 들어가면 편안함과 놀라움과 기적의 장소를 경험하게 한다. 누구나 경건할 수밖에 없는 수도원의 모습에 감사를 드렸다. 폴란드 조각가 마리오가 재산과 자신의 삶을 드려 일생동안 수도원 절벽에 새겨놓은 성경의 말씀과 그림들은 우리 모두를 압도했고, 그분의 헌신과 주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되새겨보는 믿음의 시간이었다. 그분은 밧줄에 의지하여 성전 전면 절벽에 조각을 하였다.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벽면을 바라보니 경외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한 사람의 헌신과 희생과 주님을 향한 사랑의 위대성을 보았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조각가는 먹고, 마시고, 입는, 인간의 말초적인 기쁨을 버리고, 더 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재능과 헌신을 드렸다. 그 결과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믿음을 되새겨 보게 했다. 그리고 그의 조각은 계속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져가고 있다. 모든 것이 완성될 그날 그는 이땅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주님앞으로 갈것이다.

수도원을 올라가던 발걸움이 쓰레기와 냄새로 무거웠는데 내려올때 마음은 무척 기뻤다. 쓰레기가 지져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냄새로 인해 코를 막을 필요가 없었다. 어린아이처럼 그냥 행복했다. 가장 편안 익숙한 옷을 입고 있는 모습처럼 모카탐 지역이 편안했다. 그들의 모습속에 예수님이 있기 때문에 하나 되는 느낌이었다. 그 길을 내려오면서 교회에 예배드리러 온 모든 주의 백성들이 예수님을 만날수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꿈꾸었다.

백마탄 왕자의 모습이 아니라 초라하지만 작은 예수의 향기와 모습을 사람들은 목말라 한다. 성탄절은 하늘의 위엄과 영광과 능력을 버리고 이땅에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내려오신 사건이다. 하나님이 가장 작은자가 되었다. 대접받는 자리에서 내려올때, 섬김의 자리로 내려올때, 우리속에 우리 공동체속에 작은 예수가 능력을 발휘할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힘인것을, 이것이 교회의 부유함인것을 다시  되새겨 본다.

동굴내부코
동굴내부코
콥틱신자들은 자신 몸에 상징적인
콥틱신자들은 자신 몸에 상징적인 표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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