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욱 목사의 세상읽기 ③

 

이상욱 목사│목민교회(인천) 담임, 호서대학교( Ph.D), 성산효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이상욱 목사│목민교회(인천) 담임, 호서대학교( Ph.D), 성산효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오토(Rudolf Otto)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흐름에 하나의 충격파를 던진 신학자로 유명하다. 1917년 출판된 거룩한 것(Das Heilige)이라는 책에서 저 유명한 누미노제’(Numinose)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누미노제란 신비스럽고,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인 것’(Mysterium tremendum et fascinanas)과의 만남이다.” 다시 말하면 이 누미노제란 인간이 신비한 경험이나 거룩한 존재 앞에 섰을 때 느끼는 거룩의 경험을 뜻하는 말이다.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어떤 신비하고 거룩한 존재를 경험할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놀라움을 경험하게 되는데, 바로 그런 경험을 누미노제라 부른 것이다. 시인 고은의 짧지만 울림이 깊은 시가 있습니다. ‘그 꽃이란 시이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그 꽃'

시인은 산에 오를 때 그 꽃을 보았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그 꽃을 유심히 보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 꽃 중의 하나로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을 것이다. 그래서 그 꽃이 거기 그렇게 있는 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내려올 때 그 꽃이 거기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모습이 자기 마음 깊은 곳에 비수처럼 꽂힌다. 천둥처럼 놀랐다.

죽는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시인 윤동주도 서시에서 이런 놀람을 이야기한다. 하늘을 우러러보다가 별 하나를 보고 놀란다. 잎새에 이는 바람을 느끼며 놀란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가야겠다라고 고백한다.

이사야서 6장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바로 이 누미노제를 체험한 이야기를 기록해 놓았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5절에 그 두렵고 놀란 체험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때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그때 그 음성 듣고 있던 이사야는 대답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자기가 가야 할 길을 발견하게 된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베드로가 이런 누미노제를 경험한 이야기를 기록해 놓았다. 베드로가 언제나처럼 고기잡이를 마치고 그물을 씻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다가오셨다. 자기 배에 오르셔서 말씀을 전하셨다. 그리고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라고 말씀하셨다. 밤새 고기잡이를 했으나 허탕을 친 상황이다. 그리고 지금은 물때가 아니라 고기잡이를 할 때가 아니다. 그런데도 말씀하셨기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았다.

베드로는 고기를 많이 잡아 기쁜 것은 두 번째이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바로 보면서 천둥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예수님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예수님 무릎 아래 엎드려서 이렇게 말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The Miraculous Draught of fishes”, Jacopo Bassano,  1545,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The Miraculous Draught of fishes”, Jacopo Bassano, 1545,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모세는 마흔의 나이에 자기 동족을 위하여 일어나 민족 해방의 영도자가 되려고 했을 때 결국 실패로 끝났다. 그 후 40년 뒤 미디안 광야에서의 누미노제 곧 불붙은 떨기나무가 타지 않은 것을 보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 사건에서 모세는 내가 누구인가? 를 되묻게 되었고, 이어서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서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소환당한다.

바울에게도 누미노제 체험이 있다.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으려고 달려가다가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체험을 갖은 사람이다. 그 사건 이후 자기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로 여기게 되었고, 대신 그리스도 예수는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하신 분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을 향한 부르심에 순종한다.

누미노제 체험은 두렵고 매력적인 경험이 바로 경외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 경외감은 모든 종교의 출발이 된다. 두려움만이 아니라 매력적이어야 한다. 두려움은 엎드려지고 눈을 감게 만들고 도망치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매력은 일어나게 하고 눈을 뜨게 하고 더 가까이 가게 한다. 종교체험은 이 누미노제의 경험이다. 두려움과 매력. 이런 종교체험과 유사한 체험이 바로 예술적 체험이다.

두렵고 매력적인

누미노제 체험

하나의 작품 앞에서 자신과 세계가 몰락하고 멸망하고 해체되는 두려움, 그렇지만 그 속에서 또다시 재구성되고 재창조되고 재해석되는 것의 매력이 이어진다. 모든 작품이 다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이 누미노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것들이 특별한 힘을 발산하곤 한다. 그것이 바다나 강이 될 수도 있고 천산(天山)과 같은 거대한 산이 될 수도 있고 주변의 나무의 세계를 보고도 누미노제를 체험할 수 있다.

자연은 그러한 좋은 예가 된다. 자연은 두렵고 무섭지만 무한한 매력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한결같고 깊고 크고 강하다. 그러면서도 지극히 섬세하고 변함없다. 기쁠 때는 기쁘게 나를 맞아주고 슬플 때는 슬프게 나를 맞아준다. 사심이 없이 나를 대해준다.

대상이 모세나 바울이 체험했던 하나님이나 예수님과 같은 존재가 되었던 시인 고은이나 윤동주가 체험한 자연이 되었던 누미노제 체험을 한 사람들의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그 거룩함 앞에 설 때 비로소 자기가 발가벗겨진 느낌이 들게 된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된다. 죄인 것을 알게 되고 부르심을 받은 자인 것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보게 된다

헤세은 경외감이 종교의 출발이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종교에 귀의한 이유는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두려움이나 불안 때문에 종교를 찾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찾기도 한다. 하지만 참된 종교는 인생과 신비를 대면하여 경외심을 느끼고 그 신비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호손의 큰 바위의 얼굴에서처럼 이 책의 주인공 어니스트는 계곡이라는 자연에서 항상 자신을 지켜보며 내려보고 있는 듯한 큰바위얼굴, 바위로부터 보면서 자신이 스스로 큰 바위가 되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동기로 종교를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결국 인생과 우주의 신비에 눈뜨지 못하고 경외심을 느끼지 못하면 그 종교는 우상 숭배로 전락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신비에 눈뜨는 것이 종교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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