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야 모세야

(1)모세의 인생을 구분한다면 40년은 왕궁에서 공주의 양아들로 살았다. 40년간 모세는 학교 교육을 받았다. 나라를 경영하는 최고의 전문 경영 훈련을 받았다. 훈련받지 않고, 교육받지 않고 나라를 경영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모세는 철저하게 버려진다. 최고의 지성인과 미래가 보장된 그룹에서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 기간이 무려 40년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공부는 기본이고 기본위에 하나님과 더 깊이 동행하는 훈련을 시켰다. 철저히 낮아지는 시간이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무시당하고 희망을 찾아 떠나기에는 무기력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고난 속에 심령이 강건해지는 훈련을 받았을 것이고, 인내하며 참는 훈련을 받았던 기간이다. 하나님이 지도자를 훈련시키는 과정이 참으로 놀랍다.

(2)하나님의 시간이 다가왔다. 출애굽기 3장은 모세를 이스라엘 역사의 무대로 부르시는 소명의 장면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이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그의 이름을 두 번이나 불렀다.

모세가 이스라엘 역사의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을 때 그의 나이는 80이다. 인생의 꿈도 희망도 다 꺾여버린 80의 나이에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인생의 40년을 존재감 없이 광야에서 양치기로 산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독한 시간이다. 희망의 끈이 다 떨어진 평범하고 존재감 없는 양치기에 불과하다. 존재감 없이 살던 모세를 호렙산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셨다.

(3)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의 삶이다. 웅크리고 있던 고난의 시간도, 잘나갔던 화려했던 시간도,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살라 던졌던 시간도, 그의 이름 속에 담겨진 삶이다.

김난도 교수의 에세이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라고 했다. 웅크리는 시간은 견뎌내기 힘든 고독과 인내의 세월이다. 시작점은 있지만 그 시간이 언제 끝날런지 결승점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절망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세의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은 40년 광야의 인생에 종지부를 찍는 시간이다.  웅크리는 시간이 이제 끝났음을 천지에 알리는 종소리였다. 모세의 이름이 불리어지는 순간은 하나님의 구속사의 가장 중요한 출발을 알리는 서막이다. 하나님의 꿈_인류를 향한 거룩한 구원의 드라마를 쓰는 시간이며, 이스라엘 나라가 시작되는 울림이었다.

(4)평범한 남편이며 자녀들의 가장으로 광야에서 양을 치며 살아가던 모세에게 하나님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두 번이나 이름을 불러주셨다. 얼마나 가슴 설레이는 장면인가? 자신의 이름조차도 잊어버리고 살았을 것이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부를때에 존경심과 애정을 가지고 불러준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이름에는 인생이 담겨져 있고, 사명이 담겨져 있고, 직분이 담겨져 있다. 이름에는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과 삶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아브라함_믿음의 조상, 하나님의 벗(친구)라는 칭호를 얻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거룩한 칭호를 받았다. 이삭은 성품이 온전한 자,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야곱은 속이는 자, 빼앗는자에서 이스라엘이란 기업을 얻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에 판 배신자란 불명예스러운 닉네임을 얻었다. 자신의 이름의 가치를 회복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아주 명예로운 일이다. 이것이 곧 영향력이다.

(5)조나단 에드워드 가문 과 맥스 주크스 가문_19세기 미국에서 살았던 술에 취해 살고 경건치 못한 맥스 주크스 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후손을 추적하여 조사하여 보았더니 310명이 거지로 죽었고, 150명이 범죄자가 되었으며, 그 가운데 살인자가 7, 100명이 술주정뱅이었고, 그 가계에 속한 여자들의 절반 이사이 몸을 파는 창녀들이었다고 한다. 이들이 미국사회에 끼친 손해를 19세기 당시 달러로 계산해보니 약125만달러(현재 한화 18)가 되었다.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드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며, 동시에 경건한 부부였습니다이 가정의 4, 1394명의 후손들을 조사하였더니, 경건한 부모의 긍정적인 영향력이 4대에 걸쳐서 미국 사회에 유익을 주는 가문이 되었습니다후손들을 보면- 목사, 선교사, 신학교수 300, 대학교수-120, 변호사-110판사-30, 대학 총장-14, 국회의원-3, 부통령-한명, 작가-60명. 조나단 에드워드 자손 가운데 한 사람도 정부나 미국 사회에 해를 끼치거나 짐이 된 사람이 없었고 가문이 사회에 끼친 공헌을 돈을 환산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6)베드로의 이름의 가치_예수님이 시몬을 해변가에서 제자로 불렀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부르심 앞에 시몬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시몬에게 너는 반석이라고 이름을 개명해주셨다. 그리고 네 이름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말씀하셨다. 이것이 베드로의 이름의 가치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꽃길을 가시지 않고 죽음의 길을 가실 때 그는 예수님을 3번이나 배신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서 어부가 되었다. 낙심과 절망과 후회하며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3번이나 불러주셨다. 예수님이 조반을 먹인 후에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21:15).주님 그러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 3번이나 베드로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그에게 사명을 다시 주셨다. 너는 고기 잡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야. 다시 일어나라 말씀하셨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부르심 앞에_응답하는

(1)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앞에 모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응답했다. 하나님이 부르실때 우리는 바로 즉시 응답해야 한다. 주저하며, 망설이며, 우물쭈물 하면 인생의 많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

누가 부르심 앞에서 고민하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고 자신 있게 응답하는가? 깨어있는 자만이 응답할 수 있다. 영적으로 잠을 자는 절대로 그 소리를 그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깨어 있어야지만 들을 수 있다. 깨어있을 때 민감하게 대처할 수 있다.

(2)깨어 있는 자만이 말세에 살아남는다. 주님은 반드시 재림의 왕으로 오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때와 그 날은 아무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 아신다고 하셨다(13:31-33). 아무도 주님의 재림을 모르기에 항상 깨어있으라고 하셨다.

(3)깨어 있는 자는 정신 차리고 살고, 잠자는 자는 방탕하게 산다. 깨어 있는 시간이 길면 인생을 건강하게 성공적으로 산다. 그러나 잠자는 자는 영혼의 집도 무너지고 가정도 인생도 허물어진다. 깨어있는 자만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형통한 축복을 얻을 수 있다.

(4)사도바울의 권면을 잊지말라.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라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1-14)

(5)깨어있는 사람은 오직 주님께 모든 초점을 맞춘다. 발레리나가 춤을 춘다. 몇 바뀌씩 돌다보면 중심을 잃게 된다.. 그런데 절대로 발레리나는 중심을 잃지 않는다. 발레리나는 공연할 때 무대에서 자신 한 곳을 정하고 한번 빙 돌 때 자신이 정한 곳에 초점을 본다고 한다. 초점을 잃어버리는 순간 어지럽고 몸의 자세가 무너지기 때문에 오직 자신이 정한 그 한 곳에 초점을 맞추고 돈다고 한다.

(6)혼란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진리와 비진리가 구분이 안된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아 보인다. 영원한 천국보다 이 땅의 삶이 영원할 것 같은 유혹을 받는다. 이 땅에서 천수를 누릴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 땅의 삶이 잠깐 스쳐지나가는 나그네의 삶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그네 인생길을 헛된 것에 시간을 다 허비했다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엄청난 후회만 남기게 된다. 주님을 깊이 만난 사람은 나그네의 인생임을 알고 시간과 생명과 재능과 일터와 모든 것이 주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임을 깨닫고, 그것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드린다.

(7)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길을 끝까지 경주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무너진다. 경계선을 이탈한다. 주님을 보고 가다가 땅을 쳐다보기 때문이다. 초점을 잃어버리면 무너진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면 경계선을 넘지 않는다.

(8)어린 사무엘에게 배울 점이 있다. 그 시대는 영적으로 혼란한 시대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없던 영적 암흑기였다. 잠을 곤하게 자고 있던 사무엘이 벌떡 일어나 엘리 제사장에게로 달려갔다.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소리인줄 알고 3번이나 달려갔다. 사무엘이 비록 어린이지만 그는 잠을 자면서도 깨어 있었다. 그는 항상 엘리제사장에게 초점을 맞추고 살았다. 어린 사무엘이 깨어 있었기에  엘리 제사장도 듣지 못했던  하나님의 예언을 들을 수 있었다.

영적 주파수를 하나님께 맞추고 살라. 주님이 언제 나를 부르실지 모른다. 깨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평상시 준비가 되어 있어야 부르심을 받을 때 응답할 수 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말씀하옵소서, 듣겠습니다.

인생의 길은 아주 우연한 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다. 언제 어디서나 준비된 모습을 가지고 살면 인생은 아름답게 세워지게 된다. 영적으로 죽으면 인생은 어둠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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