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도 교수의 에세이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 제목이 주는 호기심이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웅크리는 시간은 견뎌내기 힘든 고독과 인내의 세월이다. 이 시간이 언제 끝날런지 결승점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절망한다. 그 절망이란 단어를 이겨내는 한 줄의 문장이나 단어 하나가 희망의 끈을 이어간다. 그래서 김난도 교수의 책이 청년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출애굽기 3장은 모세를 이스라엘 역사의 무대로 부르시는 소명의 장면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모세는 왕궁에서 40년, 광야에서 40년의 긴 시간이 흘러  80이 되었다. 그러나 인생의 40년을 존재감없이 광야에서 양치기로 산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독한 시간이다. 이 정도 웅크리고 있었다면 희망의 끈이 다 떨어진 평범하고 존재감없는 양치기에 불과하다. 존재감없이 살던 모세를 호렙산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셨다.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의 삶이다. 웅크리고 있던 고난의 시간도, 잘나갔던 화려했던 시간도,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살라 던졌던 시간도, 그의 이름속에 담겨진 삶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앞에 모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응답했다. 하나님이 부르실때 우리는 바로 즉시 응답해야 한다. 깨어있는 자만이 응답할 수 있다. 영적으로 잠을 자는 절대로 그 소리를 그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세속의 소리와 영적인 소리를 구분하는 것이 그리 쉬운일은 아니다. 그러나 깨어 있다면 세미한 주님의 섭리를 느낄 수 있다. 깨어있을때 민감하게 대처할 수 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신을 벗으라"(출3:5)고 하셨다. 이 문장에서 던져주는 영적 메세지를 찾는 다면, 복잡한 세상에서 다원화된 세상에서 새로운 길을 다시 찾아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가까이 오지 말라

(1)떨기나무에 불꽃이 붙었는데 타지를 않았다. 모세가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갔다. 그때 하나님이 가까이 오지 말라는 음성이 들렸다. 죄인은 하나님앞에 가까이 갈 수 없다. 거룩하고 초월적인 하나님의 위엄을 보여주신 것이다.

(2)죄인이 하나님앞에 다가갈 수 없다. 하나님이 오셔야지만 가능하다. 율법에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앞에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만드셨는데 그것이 피의 제사였다. 죄를 지은 인간이 동물을 죽여서 피를 제단에 뿌리고 죄사함을 받는 것이다.

(3)하나님께서 궁극적인 피흘림 제사를 준비하신 것은 그의 아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 제단에서 희생시켰다. 예수님이 자신의 육체가 십자가에서 찢겨지시고 모든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지시고 죽으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시며 운명하실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27:51-53). 휘장은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한다.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누구나 지성소로 들어갈수 있는 새로운 살길을 열어 주셨다. 제사장이 필요없다.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누구나 성소에 들어가면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공급받는다.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가?

(4)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은 신 새로운 (살 길)이며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다

(1)조금 전 까지는 평범한 땅인데 왜 갑자기 거룩한 땅이 되었는가?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했기 때문에 그 땅이 거룩한 땅이 된 것이다. 무엇이든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순간 그 곳은 거룩한 것이 된다.

건물의 용도에 따라 다르게 부른다건물에 십자가를 달고 예배를 드리면 그곳을 우리는 성전이라 부른다. 거룩한 전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은 모두 거룩한 땅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성령님의 임재가 없는 곳은 죽은 땅이다

(2)교회는 인간의 세속주의적 눈으로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와 위엄과 능력과 찬양이  존재하는 거룩한 땅이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1)고대 근동 세계에서 신 또는 발은 인간 삶의 전체적인 영역으로 인식했다. 신과 발은 내적인 성품과 외적인 행동 전체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고대근동지방은 사막이기에 발과 신에 모래와 먼지가 묻게 된다. 종교적으로 신발은 죄악에 오염된 온갖 더러운 성품과 행위들을 말한다.

(2)하나님이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명령했다. 타락된 인간의 모습 가지고는 내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악과 단절을 해야 한다. 이것이 신발을 벗는 것이다.

(3)죄악의 가면을 벗으라_가면의 역할은 숨기는 것이다. 하나님앞에 나의 속사람을 감추지 말고 드러내라. 하나님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가면을 벗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은 죄의 가면이다.

교만한 마음의 신발을 벗으라

하나님앞에 나아갈 때 늘 걸림돌이 되는 것이 교만한 마음이다. 우리의 신앙성장을 가로막는 것이 교만과 아집과 편견이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이유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교만이었다(3:3-6). 사탄의 꾀임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먹었다. 인간이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선을 넘는 순간 아담과 하와에게 닥친 삶은 처절했다. 모든 관계가 다 깨어져버렸다. 교만은 깨어짐이다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사고의 신발을 벗으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했다. 몸은 애굽에서 나왔지만 생각은 애굽의 노예로 머물러 있었다. 그 결과 40년을 광야에서 머물러 있게 된 것이다. 생각이 1cm 자라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어렵다

긍정적이고 창조적이고 밝은 생각과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치를 가지고 바라보고 살아갈 때 인생의 문이 열리고 환경이 문이 열린다. 먼저 생각이 열려야 한다.

상처난 마음의 신발을 벗으라

상처가 깊으면 신앙이 자라기가 참 힘이 든다. 모든 상처를 치료하는 비법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최고의 명약이다. 상처난 마음이나 정신적 장애는 약으로 잘 낫지 않는다. 신구약이 약이다. 예수님을 깊이 만나면 이겨낼 뿐 아니라 과거의 상처에 붙잡혀 살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기도 바뿐데 과거에 붙들려 살면 그만큼 인생에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

행동으로 지은 많은 죄악의 신발을 벗으라

습관이란 것이 참으로 무섭다. 습관 병들면 인생에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좋은 습관은 영적생활과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무기가 된다.

(4)모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지도자로 부르시기 전에 먼저 네 신발을 벗으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 가면을 쓰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다. 우리의 모든 종교적인 행위가 '마당만 밟을 뿐이다'(1:11,12).

(5)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마음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어떤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이다. 마음에 진실함이 없는 종교적인 행위는 마당만 밟을 뿐이다.

(6)가면을 벗고 십자가와 마주하게 되면 그때부터 자신의 죄와 허물로 얼룩진 모습을 보게 되며 울부짓게 된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임신시키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였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죄악을 책망했다. 하나님의 심판을 들은 다윗왕은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습니다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했다. 자신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다윗은 통곡한다. 이것이 신발을 벗는 것이다. 하나님이 왜 다윗을 좋아하셨을까? 자신의 죄를 지적할 때 가면을 벗어던지고 하나님앞에 마음을 다해 납작 업드렸다

시편 51편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지른 다윗이 통곡하는 시이다. 시편 51편을 자주 묵상하면 좋겠다. 우리는 너무도 타락하여 맑은 눈과 진실한 마음과 총명을 잃어버리고 있다. 오늘날 종교장사치가 많다고 한다. 왜 그런 소리를 들을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줄고, 세속적인 생각과 계산적이고 산술적인 욕망의 덩어리로 똘똘 뭉쳐 있다면 판단은 흐려진다성경과 거리가 먼 나의 가면속에 감추어진 죄악들을 끄집어 내며 뼈저리게 통곡할때 우리는 맑은 영혼을 회복하리라

'숨을 쉬는 한 희망은 있다' 다른 신앙적인 언어로 표현하면 감추어진 가면을 벗고 십자가 앞에 서 있다면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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