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BCAD의 분기점인 예수

(1)교회의 시간표로 보면, 예수님의 탄생 전 4주간을 대림절(기다릴 대, 임할 임)로 지킨다. “오실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절기를 뜻한다. 예수님의 오심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이다

(2)인류역사를 BC(before Christ)AD(Anno Domini, 그리스어 그리스도의 해’)로 구분 한다_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점으로 하고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 인류 역사는 다시 시작되었다.

(3)예수님이 누구이기에 인류역사의 분기점이 되었을까? 예수님이 이 땅에 남긴 흔적들이 신약성경 사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이 33년의 인생을 사신 후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셨다. 짧은 생애를 사셨지만 인류역사에 미친 영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2. 예수님은 삶의 방식이 달랐다

(1)정치가들이나 인류역사의 위대한 지도자들은 자신의 가치를 부각했다. 자신의 존재가 대단함을 알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하늘에서 온 위대한 능력의 소유자라고 자신을 자랑하지도 않았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내세우지 않았다. 가난한 요셉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장한곳도 모든 교육과 상업과 교통과 정치의 일번지인 예루살렘에서 성장한 것도 아니다. 갈릴리 나사렛이란 변두리에서 자랐다. 교육과 정치와 문화와는 거리가 먼 지역이다.

(2)빌립이 예수님을 만났다. 큰 감동을 받고, 친구 나다나엘에게 율법에 기록되었고 선지자들이 말했던 그 사람을 만났다고 전했다. 나다나엘은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서는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1:46)라고 되물었다, 시골에서는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3)예수님이 죽으면서 그의 정신적, 영적가치도, 교훈도 다 사라진 것 같았다. 예수님의 천국운동은 실패로 끝난 것 같았다. 그런데 생전보다는 사후 100년이 지나면서 예수님의 명성은 더 위대해졌고, 강력해졌고, 천년 후에는 예수님의 유산은 유럽의 기초를 놓았고, 2천년 후에는 세상 전역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로 지구촌을 덮었다.

(4)예수님으로 인해서 인류는 엄청난 영적 도전을 받았다. 예수님으로부터 영향력을 받고 의학, 과학, 교육, 정치, 문화, 예술, 경제, 우주, 예술, 농업, 환경 등 각 분야에서 감동을 만들어낸 분들이 참으로 많다.

(5)예수님은 30년간 목수로 일했다. 그리고 36개월간 공생애를 사셨다. 공생애 기간 대중들로부터 아주 잠깐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예수님의 영향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우리가 공식적인 문서를 쓸 때 반드시 하는 것이 있다. 년도와 날짜를 기입한다. 그 시작점이 예수님이 태어난 해이다.

(6)예술가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모른다. 초상화도 없고, 조각상도 없다. 생김새를 묘사한 글이 이사야에 약간 제시했을뿐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초상화는 예술을 하는 제자들의 주제가 되었다.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가이며 화가이다. 천지창조, 최후의 만찬을 그렸다.

김기원 권사_성화
김기원 권사_성화

(7)김기원 권사는 성화를 그리는 대표적인 화가이다._한 작품이 완성되면 하나님께 그림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받친다.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그렸습니다. 받아주옵소서." 그림의 주인은 오직 예수님이고 나는 그분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제자가 된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주제는 예수님에 초점을 두고 있다.

(8)우리는 예수님 덕분에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역사가 O.M.바키는 [인간이 된 아이들 : 초기 기독교에 태동한 아동기]라는 연구서를 썼다. 고대세계에서는 자녀가 생후 8일이 될 때까지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영아를 살해하거나 유기할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특히 아이가 기형이거나 바라던 성이 아닐 때 아이를 살해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 때문에 영아살해 유기 풍습이 바뀌었다(18:16).

옥스퍼드대학교
옥스퍼드대학교

(9)예수님은 책을 쓰신 적이 없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다. “마음을 다하고 뜻(지성, 지식)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이 말씀을 기억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학문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공동체를 낳았다. 그 결과 교육이라는 시스템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로부터 옥스퍼드, 캠브리지, 하버드, 예일 등 서구 학문과 교육체계가 태동된 것이다.

(10)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세운 것이 무엇인가? 바로 학교와 병원과 고아원이다.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오산학교는 남강 이승훈 장로가 설립했다. 191931일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이다.

남강 이승훈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마저 박탈당하자 좌절과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중, 19077월 우연히 도산 안창호의 교육진흥론이란 강연을 듣게 된다. 교육으로 백성을 일깨우지 않으면 독립도 있을 수 없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자신만을 위해 살던 삶을 회개하고 민족을 위한 삶을 살기로 결단하고 곧바로 세 가지를 이행했다. 첫째, 상투를 자르고 술, 담배를 끊었다. 둘째로, 기독교 신앙을 받아 들여 고향에 오산교회를 세웠으며, 셋째로 오산학교를 설립하였다.

1907년 평북 정주에 세워진 오산학교(현 서울 오산중고교)7명의 학생으로 시작하였지만, 설립자 이승훈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지금 나라가 날로 기우는데 그저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 칼을 드는 사람도 있어야 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백성들이 깨어나는 일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7명의 학생밖에 없지만 차츰 자라나 70, 700명에 이르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일심협력하여 나라를 남에게 빼앗기지 않는 백성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오산학교는 평민정신, 민족사랑,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새로운 학문과 애국사상을 일깨웠다.

오산학교는 시인 김억, 김소월, 백석, 화가 이중섭, 목사 주기철, 한경직, 언론인 홍종인, 사상가 함석헌 등 민족의 일꾼을 무수히 길러냈다. 이승훈은 자신이 설립한 오산교회에서 장로가 된 후 평신도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11)전국 개신교 사학은 496(학교별 수는 초등학교 19, 중학교 135, 고등학교 195, 대학교 105), 불교_초등학교 21, 중학교 16, 고등학교 15, 대학교 8, 가톨릭_초등학교 7, 중학교 28, 고등학교 37, 대학교 14. 3대 종교만 놓고 보면 개신교 사학이 70% 이상이다. 기독교 사학은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영적 영향을 받고 자신들의 사비를 털어 다음세대를 가르치는 교육선교에 전념한 것이다.

(12)안산동산고등학교 정문에 들어가면 돌비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자라는 교훈이 쓰여져 있다. 행동강령으로 정직, 근면, 친절을 제시하고 있다.

(13)예수님 살았던 시대는 로마제국이 세계를 다스렸다. 로마제국은 화려했지만 기형아와 환자와 노예에게는 인간의 기본적인 대접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보는 시각이 달랐다.“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15:40). 예수님의 말씀에 영향을 받은 제자들은 사람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힘없는 모든 사람들은 도와야 한다는 개념이 생긴 것이다._온갖 병원과 양로원, 고아원 등 구제기관이 설립되었다.

(14)고대 세계에서 십자가는 조롱거리와 저주의 대상이었다. 범죄자와 로마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반역자에게 나무 십자가로 처형했다. 나무에 매달려 죽임당한 자는 저주받은 자로 간주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형은 저주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대신 저주를 받으셨으며, 십자가의 극한 고통과 수치를 참으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기희생의 가장 강렬한 표현이며, 대속과 구원의 상징물이다(6:6; 2:20; 5:24). 조롱거리의 대상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가장 숭고한 길이며 덕목이 되었다(16:24).

(15)원수는 복수와 미움의 대상이다. 그런데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도전을 받은 제자들은 복수가 아니라 용서와 사랑을 선택했다(5:44).

(16)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_ 두 아들 동인이와 동신이가 여순 반란 사건의 와중에 공산당을 따르는 학생들에 의해서 순교했다. 아들의 장례식날 손양원 목사님은 9가지 감사를 전했다. 일곱째 감사는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원수를 용서와 사랑으로 품었다.

(17)예수님의 영향력은 마지막 묘지에도 나타나 있다. 묘지앞에 비석에 부활의 소망이 담긴 십자가를 넣는다.

(18)예수님의 가르침에는 동일한 반응이 있다. 놀람이다(7:28,29;2:46-47)

(19)예수님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단체들이 이 땅에는 너무도 많다.

(20)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누구나 변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시스의 프란시스코는 재물을 버렸다.

-어거스틴(AD354-430)은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 모니카의 사랑안에서 자랐지만, 하나님을 외면하고 철학과 이단 마니교에 빠졌다.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32살 밀라노 정원에서 성경을 펴서 읽으라는 메시지를 받았고, 1311-14절을 읽는 순간 새로운 영적 세계가 열렸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존 뉴턴은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붙들어다가 백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는 <노예상인>으로, 참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었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남을 체험한 후 노예무역을 버렸고 훌륭한 목사가 되었다_<놀라운 은혜(AMZING GRACE)>1779년도에 지은 찬송이다.

-바울은 예수의 제자들을 잡아 옥에 가두려는 일에 살기등등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사울이 바울이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다(9:15-16).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후 그의 인생 경로가 완전히 바뀌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정했다. 자신을 '예수그리스도의 종', '복음에 빚진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불렀다.'

(21)역사의 분기점이 있듯이 우리 인생에 분기점이 필요하다. 그 분기점은 물질도 학문도, 일터도, 가정도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으라. 예수님의 이름안에는 엄청난 폭발적인 영향력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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