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는 바벨론 포로2세로서 성공한 유대인이다. 바벨론 왕의 술을 관리하는 공무원이다. 고대사회에 왕의 음식과 술을 관리하는 공무원은 고위직이며 왕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가신이다. 느헤미야가 하는 일은 술을 관리하고 술의 맛과 독 여부를 점검하는 일이다. 왕과 아주 밀접한 친밀감이 있다. 고대사회에서 정적이 왕을 살해하는 방법이 음식과 술이기 때문이다. 음식과 술을 관리하는 분들은 왕의 절대적인 신뢰를 하는 분들을 세운다.

느헤미야는 조국 예루살렘의 슬픈 소식을 듣고, 울며 금식했다. 왕의 허락을 받아서 예루살렘 성전을 52일 만에 재건했다. 성벽과 성문을 재건한 후 느헤미야는 영적부흥을 주도했다.

1.영적부흥의 시작_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1)모든 백성이 한 곳에 모여서 성경을 읽었다(8:1)

(1)느헤미야는 모든 백성들을 수문 앞 광장에 모이라고 했다. 그리고 학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 오라고 했다. 에스라가 율법 책을 읽었다.

(2)성경을 읽는 장소를 수문광장으로 정하고 모든 백성들을 모이라고 했다. 영적인 사건은 장소가 중요하다. 장소마다 장소에서 전해주는 분위기가 다르다. 나오는 에너지가 다르다.

(3)영적 생활에 찾아오는 현상 중에 점점 편리함에 익숙해지면서 현장예배보다는 유투브나 tv등으로 어디서나 편하게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손안에 모든 예배가 들어있다. 이제는 예배도 쇼핑하는 시대가 되었다. 장소의 개념이 무너져가고 있다. 장소의 개념이 무너지면서 손안에 든 핸드폰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영적성장을 더 이루기보다는 영적에너지는 점점 더 고갈되어가고 있다.

(4)마귀는 성도들이 신앙생활하는데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꼭 교회로 가지 않아도 돼, 집에서 쇼파에 앉아서, 침대에 누워서 예배를 드리면 되지, 예배중에서 다 빼고 찬양만 들어, 아니면 설교만 일부 들으면 되지 늘 거래를 한다.

(5)시대가 달라져도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장소가 주는 에너지가 다 다르다. 정갈하게 정돈된 곳에서 함께 모여 성경을 읽으면 영적에너지가 다르다. 장소가 주는 힘이 매우 크다.

수문앞 광장에 모여서 성경을 읽었다. 영적인 부흥은 성도들이 한 곳에 모여서 말씀을 사모할 때 부흥은 일어난다.

(6)사도바울은 모이기를 힘쓰라고 했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2:46,47) 썼다. 그 결과 놀라운 영적 부흥이 일어났다.

 

2)성경읽기는 시간의 양이 채워져야 한다.

(1) “수문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8:3),“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8:18). 새벽부터 정오까지 최소한 6시간 집중적으로 읽었다. 7일 동안 수문앞 광장에서 성경을 낭독했다. 영적부흥은 절대적인 시간과 양이 채워져야 가능하다. 투자한 만큼 얻는다. 이것은 영적인 것이든 세상적인 것이든 동일하다..

(2)누가 공부를 잘하는가? 절대적인 시간과 양이 좌우한다. 지름길이 없다. 얼마나 오랫동안 책상에서 씨름하고 앉아 있는가? 그 시간에 반비례한다. 토기보다 거북이가 승리했듯이, 인생도 공부도 꾸준히 깊이, 오랫동안 흔들림 없이 하면 언젠가는 넘치는 역사가 인생가운데 일어난다. 평범한 사람이 선택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시간을 측정했더니 1만 시간이 소요된다. 하루 10시간씩 3년 하면 1만 시간이다. 이것을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한다. 인생의 성장은 시간과 양의 싸움이다. 이 법칙은 절대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3)60대에 은퇴하면 100세까지 산다. 은퇴 후 평균 40년을 더 생존한다. 24시간중 14시간을, 휴식과 일상생활을 하고, 남는 시간 10시간을 계산하면 40*10시간 =146,000시간이다. 이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이 있고, 이 시간에 도전해서 인생의 부흥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전반전에 신앙생활 잘하다가 인생후반전에 영적인 기준이 무너져서 의미없이 사라져가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믿음은 포기나 후퇴가 없다. 믿음은 항상 전진이다.

(4)부모들이여 자녀들에게 너무 땅만 쳐다보고 살도록 가르치면 안된다. 자녀들이 무한히 성장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로 성장하는 것이 믿음의 세계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자녀들의 마음에 예수님이 심겨지면 그는 큰 나무로 성장하게 된다.

(5)영적인 성장에는 지름길이 없다. 절대시간과 절대양이 채워지지 않으면 그 이상은 넘어가지 못한다. 육의 눈과 영의 눈의 차이점이 있다. 그 경계선을 넘기 위해서는 절대시간과 절대양이 채워져야 열린다.

(6)우리가 너무도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 성경에 관한 것으로 성경 읽기를 대체하려고 한다. 성경을 내가 직접 읽고 느끼기 보다는 누군가 해석한 것만 듣고 그 이야기로만 내 영적 목마름을 채우려고 한다. 그래서 늘 허기진 배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더 좋은 음식은 없을까? 찾아다니며 영적방황을 한다. 더 매력적인 쇼킹한 것만 찾는다. 현대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쇼핑은 그 만큼 내면이 허하다는 증거입이다.

혹시 어디가면 더 은혜로운 예배는 없을까? 어디가면 더 좋은 찬양은 없을까? 어디가면 더 편안하게 신앙생활하며 얌체처럼 누리기만 하며 헌신 없는 순종 없는 신앙생활은 없을까? 이런 분들에게는 영적인 충만감은 평생 누리기 어렵다. 신앙생활의 깊은 영적 능력을 채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 장 읽고, 주일에 한번 성경책 펴보고, 아니면 성경도 한 번도 쳐다보지도 않고 신앙생활을 아주 편하게 하는 분들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편안한 신앙생활을 추구하면 영적인 세계는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교회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설교를 듣고 유튜브로 명설교를 찾아들었다면 강력한 영적 군사로 변화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현실을 그렇치 않다. 설교를 들었는데 예배당 밖에 나오면 아무생각이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뇌는 편하게 듣고 보는 것은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사람의 뇌는 힘든 것을 하지 않으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사람들은 편하게 듣고 편하게 신앙생활 하려고 한다.

왜 그럴까? 이대희 목사는 이것은 우리 인간이 가진 죄 인된 특징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해주는 것을 좋아 한다. 교회에서 예배하는 모습을 보면 금방 이해 할 수 있다. 갈수록 모든 것을 다 해결하고 그저 편안하게 눈만 뜨고 손조차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설교를 듣는다. 이제는 찬송가도 없고 성경책도 없다. 심지어 찬송도 다른 사람과 찬양대가 다 해준다. 모든 것을 화면에 보여주고 성경의 내용도 모두 해설해주고 정답까지 다 반복하여 알려준다. 그렇게 되면 듣는 사람은 편하고 좋다. 그리고 다 이해를 한다고 착각하며 만족해 한다. 그러나 막상 생활에서 실천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종교전문가 집단이 다 해주었기에 자신이 스스로 하는 것은 힘들어 한다. 문제가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다시 설교를 찾는다. 이런 일을 수십 년 반복한다. 그러면 나중에는 교회에 성인 아이 신앙인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러다가 고난과 환란이 닥치면 예수님 제자들처럼 모두 흩어질 것이다. 설교의 목적은 삶의 변화에 있다. 변화는 스스로 노력하는 수고를 할 때 일어난다. 자신을 버리는 수고와 고난을 감당 할 때 변화는 잘 일어난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삶이다그럴 때 성령의 역사도 일어난다.

(7)내가 고된 시간을 드려야 하며 내 몸을 쳐서 복종해야 하며 시간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

 

3)성경읽을 때 자세_ 모든 백성이 일어났다.

(1)에스라가 모든 백성들 앞에서 서서 성경을 읽을 때, 모든 백성들도 일어났다.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데 어떻게 편안하게 앉아서 읽고 들을 수 있을까? 에스라가 성경을 펴서 읽을 때 모든 백성들이 일어났다. 성경을 읽은데 침대에 누워서 읽어서는 안된다. 자세가 흐트러져 있으면 마음도 흐트러져 있다는 것이다. 흐트러진 마음에는 영적인 깊은 은혜가 스며들지 않는다.

(2)장교후보생들의 모습을 보라. 자세부터 다르다. 학교를 다닐 때부터 병사로 훈련받는 것이 아니라 장교로 훈련받기 때문에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철저하게 훈련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지휘관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4)간절한 마음으로 반응해야 한다

(1)“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8:6)

(2)반응이 중요하다. 반응은 마음에서 나온다. 백성들은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때마다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으로 응답했다.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돌렸다.

(3)요한계시록 4장을 보면,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은 어린양이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를 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4:11).

24장로가 예수님께 최고의 찬사를 드리고 있다.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분이다고 고백한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끄시는 예수님께 존경을 받치고 있다.

계시록 612절 말씀에 보면, 4생물과 24장로가 어린양이신 예수님께 새노래를 부르며 엎드려 경배를 드렸습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4)성경을 읽으면서 말씀을 대하는 자세는 아멘으로 화답해야 한다. 아멘은 히브리어이다. ‘그렇게 될찌어다’, ‘나는 동의합니다. 이런 뜻이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면 믿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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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영적부흥의 결과_말씀을 듣고 울더라.

(1)성경이 주는 영적 에너지가 충만하면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첫째는 운다. 수문 앞 광장에서 성경만 읽고 듣고도 온 백성들이 울었다(8:9). 어떤 대단한 프로그램에 들어가 있어야 영적부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천연원재료, 바로 성경과 바로 마주하라. 직접 말씀으로부터 은혜의 광석을 경험하라. 자신의 죄악을 보고 하염없이 꺽꺽 운다,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죄를 다 씻어주신 그 은혜로 인해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말씀을 듣고 백성들이 울었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부흥이 있는 곳에는 항상 눈물이 있다.

(2)둘째는 기쁨이 회복된다.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고 나누며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8:12).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8:18). 바벨론 포로로 갔던 백성들이 본국으로 귀환 하고 말씀을 듣고 초막절을 짓고 그 안에 거하면서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고 있다. 이것이 영적부흥이다. 영적부흥은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 말씀은 누구인가? 말씀은 곧 하나님이다.

(3)말씀을 읽으면, 말씀에 생명이 있기에 우리 속에 있던 모든 어둠들이 빠져 나간다. 말씀은 생명의 빛이다. 말씀은 곧 예수그리스도이다. 말씀을 읽으라. 말씀은 곧 하나님이고, 예수님이다. 예수님으로 내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 영적 부흥의 시작이다.

2.누가 복있는 사람인가?

(1)“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1:3)

(2)말씀을 읽는 자 듣는자 행하는가 복이 있다고 했다. 말씀만 듣고 행동으로 적용하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탈이 난다. 종교인으로 자란다. 종교인들의 특징은 비판에 능숙하다. 자기는 움직이지 않고 말만하고, 판단만하고, 비교만한다.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인들은 아는 것은 너무 많아 배가 터질 지경이다. 한국교회가 병들었다. 교회가 썩었다. 흉만 본다. 교회를 아주 쉽게 평가한다. 그러면 당신은 그런 교회를 위해서 어떤 것을 내려놓으셨는가? 그리스도인들은 행동으로 성경의 말씀을 보여주어야 한다. 말씀과 행동이 일치하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외침은 꽹과리가 되고, 허공에 메아리만 치게 된다.

(3)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것이 복이다. 그 모델이 누구인가? 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삶은 내려놓는 삶이었다. 자기희생정신을 삶의 모델로 보여주셨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이 권세가 있고, 존경받는 이름이 된 것이다.

3.영적부흥이 있는 곳에는 항상 말씀과 기도가 있다.

(1)말씀과 기도는 같이 가야 한다.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둘은 한 몸이다. 희브리인들은 말씀과 기도가 하나였다.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가 필요하다. 말씀이 이 땅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하다.

(2)예수님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기도의 핵심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3)기도는 말씀의 원리이고, 원리를 실천하는 것이 기도이다.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기도의 과정이다. 기도하는 가운데 지혜가 떠오른다. 내 생각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기도하면서 찾고 구하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라. 그러면 영적 부흥은 반드시 일어난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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