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저자의 의도

마가복음 10장의 상황은 예수님이 여리고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예수님에게는 마지막 길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죽으러 가시는 길이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기 몸을 던지러 마지막 길을 가는 것이다.

여리고 도착했을 때, 길가에 거지맹인 바디매오가 앉아 있었다. 바디매오는 바르’(누구의 아들’)란 의미와 디매오’(‘혼돈또는 불결한’)이라는 의미의 합성어이다. 혼돈의 자식또는 불결한 자식이라는 저주스러운 뜻을 가진 이름이었다.

길 위에 앉아 있는 바디매오에게는 희망이 전혀 없다, 혼돈과 불결의 자식이다. 이름처럼 그의 삶도 저주스러운 인생이었다. 길 위에서 머뭇거리며 시간만 보낼 뿐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서 저주의 인생을 마감하고 길 위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길 위에서 머뭇거리며 살던 인생에 반전이 찾아왔다.

 


1)영적 눈이 열린 바디매오


 

(1)바디매오는 눈이 멀었지만 거지였지만 비참한 인생이었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자기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고 즉시 소리 질렀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불쌍히 여기소서. 많은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꾸짖었다. 그럴수록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다.

바디매오의 외침에 절절함이 느껴진다. 비록 길 위에서 삶을 보내고 있지만 그는 귀 동양으로 나사렛 예수님에 대해 들었다. 그분만 만나면 나도 눈을 뜨고 거지생활을 청산할 것이란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바디매오는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영적인 눈은 떠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복이다.

(2)육신의 눈은 떠서 온갖 죄악과 부패와 썩은 것만 보고 다니다가 지옥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육신의 눈은 비록 보이지 않지만 영적인 눈이 떠서 하나님의 세계를 더 깊이 넓게 보는 부유함이 있는 것이 축복이다.

(3)예수님께서 죄를 짓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지체장애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씀하셨다(5:28-30).

지옥의 심판이 이렇게 무섭고 고통스러운 장소이다. 예수님은 지옥에 가는 것보다 오른 눈을 빼버리는 고통이 있다할지라도 그렇게 해서 죄를 짓지 않고 천국에 가는 것이 더 낫다고 가르쳤다. 오른 손이 죄를 짓고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오른손을 잘라내는 고통을 받는다 할지라고 지옥 가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하셨다.

(4)육신의 눈은 뜨고 살지만 온갖 죄악에 물들어 산다면 그 눈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영적으로 깨어나야 한다. 그러면 육신이 눈이 더욱 보배롭게 사용되어진다. 영적인 눈은 캄캄한 밤인데 눈만 떠 있으면 그 눈가지고 무엇을 하겠는가? 옳은 일을 할 수 있을까? 비전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육신의 눈은 항상 하늘을 보지 않고 땅의 것에만 관심을 둔다. 땅의 것에만 집중하면 인생이 거룩하고 탁월해지지 않는다.

 


2)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의 특징


 

(1)타이밍을 놓치지 않는다.

예수님이 바디매오를 부른다는 말을 듣자마자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달려갔다(10:49,50). 바디매오는 주님이 부르신다는 말을 듣자마자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다. 한 번의 타이밍을 잡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인내하며 자신을 훈련한다.

바디매오는 일생일대의 한번 찾아올까 말까한 그 기회를 잡았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 그는 겉옷을 버리고 뛰어 주님께 갔다.

주님이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51)라고 물었다. 즉시 그는 정확하게 선생님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나에게 지금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즉시 대답을 할 수 있는가? 너의 기도제목이 무엇이냐? 분명한 사실 한 가지가 있다. 준비된 자만이 대답할 수 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만이 주님의 부름의 순간에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다.우물쭈물 한다면 준비가 안된 것이다.

 

(2)생각이 항상 긍정적이다.

생각이 병들면 인생은 한 발자국도 앞으로 전진 하지 못한다.

(3)포기하지 않는다. 포기를 두려워한다.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자신의 전부를 걸었다. 주변사람들의 핀잔이나 저지에도 불구하고 부르짖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목 놓아 부르짖었다.

(4)지금보다 미래를 바라본다.

길 위에서 길을 열어가는 분들의 특징이다. 지금보다 미래에 초점을 둔다. 지금보다 미래에 방점을 찍기에 항상 변화를 위해 오늘이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은 과거의 시간에 사로잡혀 살지 않는다. 오늘이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항상 성실과 정직과 탁월한 지적 능력을 개발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저는 자녀들에게 현재보다 미래를 보라고 권면한다. 자녀들에게 유학을 권한다. 인생의 유학이 전부가 아니지만 도전하라.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길을 열어가라. 먹고 자고 입는 것에 목숨 걸지 말라. 미래를 열어가는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직과 성실과 전문적 탁월함과 상식과 지식을 채우는데 시간을 받치라고 한다.

(5)블루오션을 찾아낸다.

길 위에서 길을 만드는 사람들의 특징은 블루오션을 찾으려고 애쓴다. 항상 세상은 빈틈, 빈공간이 있다.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성공도 가능하다.

자명은 블루애플자산운영사 대표이다. 기업을 해외 상장시키는 비즈니스를 하는 분이다. 그는 수필가이다. 그의 수필에 빠져들어 간다. 상황묘사를 주옥같이 표현한다.

자명은 숨겨진 부의 설계도란 경제지침서를 저술했는데 아주 유익한 책이다. 자명의 주장은 한국 기업이 너무도 작은 한국시장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안타까워 한국기업이 세계시장에 진출하도록 길을 열어가는 분이다. 길 위에서 길을 열어 가시는 분이다. 그분의 논지는 아주 단순하다. 기업가들이 비싼 은행이자와 사채로 회사를 운영해서 어떻게 이익을 남기고 국제경쟁력이 있겠는가? 해외에는 이자 없는 풍부한 자금을 조달해서 회사를 운영하도록 길을 만들었냈다. 한국의 기업을 해외에 상장시키면 풍부한 자금 확보가 되고, 상장회사가 되면 고급인재를 채용할 수 있고, 무엇보다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이점이 있음을 알고 그 길을 열었다. 자명은 블루오션을 찾아낸 것이다.

교회도 자기 교회만이 할 수 있는 블루오션을 찾아내야지만 험한 풍파를 헤쳐나갈 수 있다.

(6)사명에 생명을 던진다

영적인 눈이 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생명보다 사명에 헌신한다.

<윌리암 화이팅 보덴(William Whiting Borden, 1887-1913)>은 그는 미국 대부호의 31녀중 세째로 태어났다. 그는 그의 어머니의 인도로 고등학교때 예수님을 주로 영접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세계 여행을 했는데, 여행 중 예수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의 비참한 삶의 실상을 목격하고서 그때부터 그의 삶을 <세계선교>에 헌신할 것을 결심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예일 대학(Yale University)><프린스톤 신학대학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을 졸업한 후, 중국 북부의 <무슬림 지역> 선교를 위해 이집트 <카이로>에서 <무슬림 선교>를 위한 <아랍어>를 공부하던 중 <척추 뇌막염>에 걸려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국 땅 이집트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유일한 유품인 성경책이 그의 어머니에게 전달되었는데, 그의 성경책 안에서 No Reserve(남김 없이)’라는 짧은 메모와 함께 그 메모를 기입한 날짜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메모를 기록한 날짜는 바로 자신에게 상속된 모든 <재산><선교단체>에 기부한 직후였다.

그리고 또 ‘No Retreat(후퇴없이)’라는 메모와 함께 이 메모를 기입한 날짜 역시 기입되어 있었는데, 이 날짜는 그가 그의 아버지에게 다시는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고 말한 직후였다.

그리고 그는 이집트에서 죽기직전 마지막으로 그의 성경 안에 ‘No Regrets(후회 없이)’ 라고 기입했다.

대부호의 자제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편안한 삶을 얼마든지 살 수 있었던 <윌리엄 화이팅 보덴>은 자신의 모든 기회와 권리와 소유, 바로 자기 자신을 철저히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남긴 말처럼 남김없이, 후퇴없이, 후회없이하나님께서 주신 짧은 인생의 시간을 온전히 하나님만을 사용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다.

이집트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고 한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 그는 일어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고, 형제 사랑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품었으며, 주님을 섬기는 마음에 열정이 불타올랐고, 소망으로 기뻐하며, 고난을 인내하며, 기도에 힘쓰며, 성도와 교통하며, 다른 이들을 섬긴 그의 삶은, 주님안에서의 믿음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랜디 알콘(Randy Alcorn)>믿음으로써만 설명되는 삶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떠나서는 그의 삶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예화_김정효목사님 글에서)

(7)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적극적으로 순종한다.

사도바울이 아시아에서 전도를 하려고 하는데 성령님이 가로막았다. 바울이 밤에 환상을 보았다.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16:9). 바울은 환상을 보고 전도계획을 수정한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발길을 옮겼다..

성경을 보면, 바을이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다고 한다. 하나님이 유럽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셨다고 생각을 했다. 성령님의 소리에 민감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옮겼다.

사람의 소리에는 둔감해도 좀 괜찮다. 그러나 성령님의 소리에는 민감해야 한다. 성령님의 소리에 민감하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에 깨어있어야 한다. 다른 길이 없다. 우리는 항상 영의 사람으로 살 것인가? 육의 사람의 살 것인가? 결단해야 한다. 육의 사람은 하늘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육의 사람은 생각이 육신적이다. 땅의 차원만 생각한다. 보이는 것에 목숨을 건다. 그러나 영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 믿음의 세계에 자신의 전부를 던진다.

영의 사람들은 성경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그 말씀 붙들고 뜨겁게 간절하게 기도할 때 영의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다. 영의 사람은 환란과 시험 앞에 좌절하지 않는다.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찾는다. 그리고 철저하게 순종한다. 나를 낮추고 주님의 이름을 높인다. 영의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의 길을 선택한다. 이것이 길 위에서 길을 열어가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3)바디메오_예수님을 길에서 따르는 제자_마가복음 저자의 의도


 

비참하게 길 위에서 살던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나 길에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10:52).

거지 맹인 바디매오는 고침을 받았다.  그의 인생에 대 변화가 찾아왔다. 길 위에 앉아 서성거리던 가련한 인생이 예수님을 통해서 치료받고 길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

우리는 길 위에 서성거리는 가련한 나그네 인생들이었다. 가련한 인생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허락해주셔서 천국백성이 되었다. 천국백성 된 것에 머물러 있지 말고 바디매오 처럼 고침 받은 길 위에서 즉시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마가복음을 쓴 저자의 의도이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 본헤럴드대표, 서울신대신학박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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