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희 목사의 “예수님과 함께 걷는 사순절 순례”

갈찌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10:3)

 

말씀 묵상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갈찌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찌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군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줄을 알라 하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화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 있을찐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종용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10:1-24)

 

누가는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매우 독특한 “70인 전도 파송일화를 소개한다. 다른 복음서들은 열두 제자를 파송하는 것뿐인데, 누가복음에는 열두 제자를 파송한데 이어 “70을 따로 파송하게 된다. (다른 고대 사본에는 “72으로 되어 공동역과 표준역 성경에도 일흔둘로 나옴.)

이후에”, “이 일이 있은 뒤에”(표준)라는 접속구로 다음(10)장을 시작한다. (이일 후에 즉 검증을 마친 후에) 2일에서 다룬(9:57-62) 제자 후보생들의 결단과 헌신commitment을 예수님께서 재점검하셨다.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10:1)

 

달리 칠십인을 세우사라는 것은, 열두 제자(사도) 외에 (제자도의 검증을 마친) “칠십인을 더(달리) 선발하여 복음전파를 위해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대신 먼저 보내셨다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이방 출신) 누가의 특성이 엿보인다. “달리 70각동 각처로파송하신 것은 이방 선교를 암시한다. 구약성서의 세계관은 노아의 후손이 “70민족을 이루어 온 세상에 퍼졌다(10:1-32)고 믿었다. (숫자 70온 세상을 상징한다. 모세가 70장로를 세운 것<11:16-25>과 새로운 모세인 예수님께서 70인을 세워 복음사역을 맡기신 것으로도 이해한다.)

누가의 기록으로 알려진 사도행전에서 땅 끝까지 이르러예수님의 증인이 될(1:8) 선교사역을 여기 ‘70인 파송에서 벌써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마태는 (12 제자를 파송할 때) 유대 지역에 국한시킨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10:5b-6).

하지만 누가복음서에는 그런 제한이 전혀 없다. 열두 제자를 파송할 때나(9:1-6), 70인을 파송할 때도(10:1-) 그런 제한 없이 땅 끝까지 이르러”(1:8) “모든 족속에게복음이 전파될 것을(24:47) 암시한다.

또한, 누가는 열두 사도만이 아닌, “달리 70을 파송하신 사건을 통하여 평신도 사역을 시사하고 있다. (후일 16세기 종교개혁의 주역 Martin Luther가 회복시킨 만 성도 사제직Priesthood of All Believers”의 발상으로 볼 수 있다.) 복음 사역은 성직자들 만의 독점이 아니고 누구나 예수님을 따르는 자”(평신도)는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70인을 파송하면서 세 가지 사명을 부여하신다.

 

70인 파송은

예수님을 따르는 

평신도 사역의 예표

 

1) 평안(샬롬Shalom 평화 Peace)을 빌라.

2)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를 선포하라.

3) 병자들을 고치라Heal the sick.

여기 3가지 사명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바로 그곳에 각종 질병이 치유되며, 참된 평안이 깃들게 된다. 언뜻 보기에는 열두 제자를 파송하실 때(9:1-6)와 거의 같은 내용인 것 같지만 누가복음서의 (신학적) 특성을 감안하면 상이점들이 보인다.

누가의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와 마태의 하늘 나라Kingdom of Heaven”는 현저한 (신학적) 차이가 있다.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기록된 마태복음에는 유대교에서 야훼(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부를 수가 없어 아도나이”(주님)로 불렀기에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하늘나라를 선호한 점도 있다. 그러나 마태의 하늘나라’(천국)에는 다분히 지역적이고 내세론·종말론eschatological적인 사상이 짙게 함축되어 있다. 하늘에 있는 나라, 천국, 그곳은 우리가 죽어서 가야할 곳(영원한 본향. 11:16)으로 사후 세상, 종말론적 표현이다.

누가는 다르다. 저 멀리 하늘에 있는 나라가 아니고, ‘지금 여기here and now’에 실현되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나라개념도 제왕적 통치를 뜻하는 영어의 Kingdom 보다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의 다스림reign이 실현되는 상태를 뜻한다. 주기도문에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Thy kingdom come.”(11:2, 6:10)라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원한다.

누가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어떻게 임하느냐에 대한 예수님의 답을 통해 강조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0b-21).

“70이 나가서 (귀신을 쫓아내며, 10:17) 병자들을 고치는 것은 단순한 치유사역만을 의미하는 것보다 더 심오한 뜻이 있다. 이 역시 예수님의 대답이다.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힙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1:18-20).

병자들이 고침을 받으며 샬롬(평안)이 깃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has come near to you” 왔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또 하나, 누가의 획기적 암시가 오늘의 묵상 요절이다. 70인을 파송하면서 하신 말씀이다.

 

갈찌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10:3)

 

얼핏 문자적으로는 선교지로 나가는 것이란 마치 사지死地로 들어가듯 죽음을 각오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어린 양을 사나운 이리떼 가운데로 보낸다니 이거야말로 너무 대책 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초대교회 당시 모진 핍박, 박해 심지어 순교를 각오하고 전도 선교를 나가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마태는 그것(핍박·박해)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사용하는 듯하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10:16a). (물론 마태는 열두 제자를 전도파송하며 주신 말씀으로 기록했다.) 마태는 이리떼 가운데로 들어가는 양들이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한다. “그러므로therefore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10:16b).

그러므로로 시작되는 말씀이 누가복음서에는 없다. 왜 그럴까? 누가와 마태의 인용구를 자세히 비교해 보면 미묘하지만 현저한 신학적 상이점이 보인다. 마태는 양을 이리 가운데로as sheep in the midst of wolves”, 그러나 누가는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as lambs among wolves” 라는 표현을 한다. sheep과 어린 양lambs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큰 신학적 상이점이 두드러진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고 전파할 것을 거듭 강조하신다(9, 11).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는 그곳 성산에서의 실황을 (주전 740년 경에)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였다. 그 때에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내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65:25, 11:6).

약육강식이 없는 세상, 어린 양(약자)들과 이리(강자) 떼가 어우러져 함께 잘 지내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그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평화로운(샬롬) 세상이 아닌가? 누가복음서의 예수님은 그런 샬롬이 실현되는 하나님의 나라선포를 어린 양같은 “70에게 위임하신 것이다.

어떻게 그 일, 하나님의 나라 실현이 가능한가? “70(귀신을 쫓아내며) 병자들을 고치는 등 이적을 행함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의 임재하심Presence으로서만 가능하다. 하나님의 임재臨在는 곧 하나님의 은사·선물Present이다. 예수님의 제자들“70이 예수님의 대리인들representatives이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샬롬의 실현은

하나님의 임재로 가능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오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오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16)

 

예수님께서 70인 제자들에게 분부하신다.

어느 동네에 들어 가든지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10:8-9).

제자들 70인이 특수 전도사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왔다. 누가는 어디로, 얼마 동안 전도 여행을 다녀왔는지 밝히지 않는다. 이스라엘 각동 각처는 물론, 아마도 이방 땅 (갈릴리 호수 건너 동편) 데가볼리 (그리고 요단강 건너 페리아)까지도 다녀왔을 것이다. 70인 모두 같은 날 떠났다가, 같은 날 돌아왔는지도 밝히지 않는다. 가고 오는 거리를 감안하면 최소한 4주는 걸렸을 것이다. 제자들이 기뻐하며의기양양했다는 성경 기록은 보기 드믄 일인데, 70인 제자들은 물론 예수님께서도 기뻐했다고 기록되었다.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10:17).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이리 떼가운데로 어린 양들을 보내셨지만, 이리 떼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도리어 (원수 마귀) “귀신들”(이리 떼?)까지 제자들에게 항복하는 놀라운 이변이 생겼다. 70인이 나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할 때,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성산이 이루어져,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거하는 이사야의 기이한 예언이(11:6, 65:25) 성취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전조foretaste를 체험한 것이다. 기상천외의 경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자들이 나음을 얻고, 귀신들이 항복하는능력을 행사하는 대박이 나면, 이 얼마나 기쁠까!

안수 한 번으로 병자들을 고치고, 말 한마디로 귀신(사탄·마귀)을 굴복시켜 내쫓는 능력을 행사하므로 명성이 높아지고, 인기가 상승하고, 칭찬이 자자하고, 박수갈채가 쏟아지고이 얼마나 신명 나고 어깨가 으쓱해지며 목에 힘이 주어지겠는가! 이런 능력의 종들의 교회에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든다. 목사인 나로서도 이런 SupermanWonder Woman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그런 사람들 앞에만 가면 나는 한없이 낮아지고, 생각만 해도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런데, 성공 가도를 누비며 승승장구하게 되면 자만에 도취하여 오만방자하며 교만의 늪에 빠져들기 쉽다. 순례길, 생명길의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유명 인사들이 각종 스캔들과 비리에 휘말리는 애석한 사건들을 많이 보았다. 옛 현인들은 경고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언16:18).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4:6).

권능을 행사하던 능력의 종들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을 예수님께서도 예고하셨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22-23).

전도여행의 대성공을 자축하며 자랑삼아 기뻐하는” 70인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경고하신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20)

 

병자들이 고쳐지고 마귀들이 항복하는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 도래의 전조foretaste이니 당연히 기뻐해야하지만, 내가 병자를 일으켰고, 내가 귀신들을 굴복시켰다는 자만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신 말씀인 듯하다.

(운동선수들에게도 가장 위험한 것이 자만심complacency이라고 한다). 다만, 나는 하나님 나라 도래의 전령messenger에 불과하며, 그 사건의 선포자이자 참여자participant인 것을 감사하고, 그 사실을 기뻐해야 한다. 하나님께 쓰임 받음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영광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 순례길을 걷고 있음에 감사하고 기뻐해야 한다.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다는 것은 문자적으로는 구원받은성도들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Book of Life”(20:12, 21:27, 4:3)에 녹명됨을 뜻하지만, 그 신비가 오늘 여기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내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 기록된 증거가 오늘 여기서 주님 예수와 함께 순례길을 걷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임재하심Presence으로 실현된다. 신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영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인간이 되어 성육신Incarnation 이 땅에 오신 임마누엘(Immanuel: God with us, 1:23), 곧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제자의 삶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바 되었다. 예수님께서 이 진리를 인하여 기뻐하며 감사 찬양하셨다.

 

순례길을 걷는 자체가

생명책에 내 이름이 있다는 증거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21)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겨 자만에 빠진 (당시) “바리새인들과 율법사(서기관)은 자기를 배척하지만, (심령이) 가난하고(6:20, 5:3) 순박하며simplicity (변두리 인생들로) “어린 양들같고 어린 아이들같은 제자들은 자기를 따라 예루살렘 순례길로 들어, 하나님 나라 도래에 참여하게 된 것을 인하여 기뻐하며 감사하신 것이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1:27).

찬송가 493(합동) 1절이 잘 표현한다.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 맘에 강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서 해 같이 빛난다.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매일 영생을 맛보며살아 가는 인생길, 순례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도래는 영세전부터 감취었던 비밀”(16:25-26)이었으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구현된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돌아 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말씀하셨다. "너희가 지금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사실 많은 예언자들과 제왕들도 너희가 지금 보는 것을 보려고 했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했으나 듣지 못하였다."(23-24. 공동)

이러한 신비의 세상,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뻐하며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1. “하나님의 나라”(누가)하늘나라”(마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열거해보자.

2.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본 의도는 무엇일까?

3.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하신 말씀을 다시 음미해 보자.

 

기도

지금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낼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주시도록 간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부름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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