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브(AJAB) 신학과 요한 르네상스(8)

1. “Again Jesus, Again Bible”를 모토로 하는 아자브(AJAB) 신학은 기본적으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나는 평소에 마르틴 루터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중 박사학위 논문 자료 수집을 위해 19961월 미국 프린스턴에 갔다가 한 서점에서 발터 폰 레베니히(W. von Loewenich)의 책(Martin Luther)을 발견하고 그 책을 샀다(1996.1.13.). 이 책을 박사학위를 마친 19999월부터 번역하여 6개월 만에 끝났다. 그 후 이 책을 대전신대 교수 시절인 2002년 가을에 출판하였다(2002.9.25.).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나는 책 앞에 역자서문(“21세기 서구 기독교: 패러다임의 전환”)을 쓰고, 책 뒤에 역자해설(“종교개혁[Reformation]: 베드로의 종교[가톨릭]에서 바울의 종교[개신교]”)을 붙였다.

루터는 라이프찌히 논쟁 제1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그리스도를 사랑한다. 나는 그를 바울에게서 다시 발견했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사랑(Amore Christi)하되, 개신교는 아모레 파울리(Amore Pauli), 바울 사랑에 기초한 반면, 가톨릭은 아모레 페트리(Amore Petri), 베드로 사랑에 기초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가톨릭은 베드로의 종교(기독교)’이고, 개신교는 바울의 종교(기독교)’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베드로의 종교인 가톨릭에서 바울의 종교인 개신교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모레 페트리에서

아모레 파울리로

2. 종교개혁 당시는 구원론’(인간은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의 문제가 중심문제였다. 루터의 탑 체험’(“내가 어떻게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수도원 탑 속에서 기도하다가 얻은 신앙 체험)도 바로 이 문제였다. 우리는 구원론의 문제를 믿음이냐 행위냐의 문제, 즉 인간론의 문제로 생각한다. 그런데 구원론의 문제는 인간론보다는 기독론즉 구원은 그리스도(복음)에 있느냐 모세(율법)’에 있느냐 하는 기독론의 문제이다.

여기서 개신교는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복음)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며, 모세의 율법(가령 안식일이나 정결예법 준수)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이방 크리스천인 바울의 기독교의 모습이다. 이에 반해 가톨릭은 구원은 그리스도(복음)에 대한 믿음만이 아닌 모세의 율법과 같은 행위(가령 면죄부 구입이나 선행과 공로)를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유대인으로 크리스천이 된 베드로의 기독교의 모습이다. 이러한 구원론의 사상적 계보를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사상구조 측면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를 말한다면 가톨릭은 플러스적 사고구조’, 개신교는 동심원적 사고구조로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가톨릭은 중세 스콜라철학이 갖고 있는 이중구조, 즉 헤브라이즘(히브리 신앙)과 헬레니즘(헬라적 이성)이 결합된 플러스적 사고구조를 갖고 있는 반면에, 개신교는 단일구조, 즉 헤브라이즘(히브리 신앙)이 중심이며 헬레니즘(헬라적 이성)은 이차적 의미를 갖는 동심원적 사고구조를 갖고 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가톨릭은 둘 다(both ~ and)적 사고구조(혼합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반면, 개신교는 둘 중의 하나(either ~ or)적 사고구조(다른 하나는 2차적, 개체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쉽게 말해 두 개를 더해놓은 것(신앙 + 이성, 구약 + 외경, 종교 + 정치, 예수 + 성인들 등)이 가톨릭이고, 여기에서 앞에 것을 1차적(중심)으로, 다른 하나(이성, 외경, 정치, 성인들 등)2차적(주변)으로 두는 것이 개신교라고 말할 수 있다. 초점이 두 개(플러스적 사고)인 가톨릭과는 달리, 초점이 하나(동심원적 사고)인 개신교(루터)의 신학원리를 도표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2. 이 도표의 의미(Ad Fontes!5개의 sola)를 설명하면 이렇다. 종교개혁의 중심문제는 <구원론>으로, ‘성서 안에 계시된(sola scriptura), 하나님의 은혜를(sola gratia), 사람이 믿음으로(sola fide) 구원을 얻는다는 것’, 이것이 종교개혁의 3대원리이다.

신앙(신학)을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로 표현할 때 하나님은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이시며, 사람은 그것을 신앙(신학)으로 표현할 때 루터(개신교)3대 신학은 십자가 신학’(가톨릭의 영광의 신학과 대조), 칭의론(가톨릭의 잉여공로설과 대조), 노예의지론(가톨릭의 자유의지론과 대조)으로 정리할 수 있다. 루터의 3대 신학은 결국 인간이 구원을 얻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로워진(구원을 얻은) (수동적 의)이지 우리의 자유의지로 된(능동적 의) 것이 아는, 우리의 주인(주어) 되시는 하나님의 의지로 된 것을 말하고 있다.

루터의 3대 신학

1. 십자가 신학

2. 칭의론

3. 노예의지론

여기서 주목할 점은 두 삼각형(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한 초점이다. 성서로만’(sola scriptura)그리스도로만’(solus Christus)이 그것이다(‘다시 예수, 다시 성경을 모토로 하는 아자브 신학은 이에 기초한다). 이것은 성서의 중심은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는 곧 성서의 중심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자 사람이 말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성경으로 돌아가자!”(성경 사랑)예수께로 돌아가자!”(예수 사랑)는 모토가 프로테스탄트 신학원리의 핵심이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 시대의 구호였던 “Ad Fontes!”(근원으로 되돌아가자!)의 핵심이다. 가톨릭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 =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초점을 흐리게 하는 그 외의 많은 것을 같이 사랑하고 예배한다. 이 같은 복음의 본질에서 빗나간 모습에서 사랑(예배)의 초점을 하나로 해야 한다는 것이 루터의 신학원리이자 개신교 종교개혁이었다.

철저한 그리스도 중심주의’(Radical Christocentricity)가 개신교 신학원리의 핵심이다. 여기에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전하는 예수의 증인’(1:8)이 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사명임을 내포하고 있다. 마치 유대인들이 야웨의 증인’(43:10)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크리스천의 삶의 목적은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에 있다. 루터는 이것을 하나님으로 하나님 되게 하라!”(Let God be God!)는 말로 표현하였다. 이것이 루터의 개혁 취지의 전부였다.

루터는 시편 11817절의 말씀(“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을 자신의 일평생 표어로 삼아 개혁사업을 추진해 갔다. “교회는 개혁되었다. 그러므로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이 말은 17세기 개혁교회들이 내세운 표어로서, 16세기 종교개혁가들의 시대정신을 이전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개혁정신(모세의 유대교에서 예수의 기독교)에 뿌리를 둔 개신교(프로테스탄트)의 불변의 표어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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