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브(AJAB) 신학과 요한 르네상스(7)

 

1. 나는 지난 시간에 종교개혁 505주년(20221031)에 겟세마네 개교 34주년 학술강연회에서 <아자브(AJAB)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경위를 말했다. 이 날 세 분의 강사(민경배 박사님, 유석근 목사님, 그리고 나)가 발표를 하였는데, 나는 아자브(AJAB) 운동과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그런데 이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내가 쓴 책을 강의에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거의 다시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 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우연히 내 저서 요한복음서 재발견: 부활의 신학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20076월 중국 선교사로 떠나기 직전에 펴낸 책이다(여기서 구약학 교수인 내가 신약문서인 요한복음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말하고자 한다). 그런데 책 끝 후기(Epilogue)”다시 성경, 다시 예수라는 제목이 있는 것이 아닌가!

아자브’(AJAB)다시 예수’(Again Jesus), ‘다시 성경’(Again Bible)의 이니셜인데, 난 이미 그때 아자브를 말하고 있었다. 단지 때가 차지 않아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15년이 지난 20228, 신앙생활 50년이 되었을 때 주님께서 다시 내게 이제부터 아자브 운동을 시작하라고 일깨워주셨다. 여기서는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500여 년이 지난 오늘의 기독교회 상황에서 500주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2. 토마스 쿤(T. Kuhn, 1922-1996)은 과학의 발전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에 의해 혁명적으로 이루어지며, 이 변화를 과학혁명이라고 불렀다. 역사상 최고의 과학혁명은 천동설(지구중심설)이 지동설(태양중심설)로의 변화이다. 자연에 일정한 주기가 있듯이 인류 사상사에도 일정한 주기가 있다. 그 주기란 500년 단위로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 또는 사상사의 집대성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주전 1800년경 아브라함의 소명으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500여 년이 지난 주전 1300년경 모세에 의한 율법으로 집대성되어 세계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류 사상사의 기축(基軸)시대로 일컬어지는 주전 6-5세기(주전 500-400년대)에 동양에서는 석가(주전 560-480년경), 공자(주전 551-479), 노자(공자와 비슷)가 출현하였고, 서양에서는 소크라테스(주전 470-399)를 비롯한 수많은 소피스트들이 등장하였다.

주전 6-5세기 이전에는 자연()을 철학의 주제로 삼은 주술과 신화를 특징으로 하는 천왕(天王)시대였다. 그런데 인류의 성현들이 대거 출현한 주전 6-5세기는 천()의 시대에서 인()의 시대, 즉 인간을 철학의 핵심 주제로 삼는 사상사의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이 시대는 인()을 본()으로 하는 인본주의시대, 인왕(人王)시대였다.

이때로부터 거의 500년이 지난 주후 1세기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4:4)으로 또 한 번의 사상사의 일대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 왕이 되어 통치하는 나라(세상 나라)에서 신()이 왕이 되어 통치하는 나라(하나님 나라, 1:15; 3:3), 즉 인()을 본으로 하던 시대에서 신()을 본으로 하는 신본주의시대, 신왕(神王)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 시대는 인간의 노력과 행위에 의한 율법적(구도적) 세계관(율법의 종교)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에 기초한 복음적 세계관(은혜의 종교)으로의 사상의 일대 전환이 일어났다(1:16-17; 3:28; 2:8-9 ).

자연을 신격화했던 천왕시대는 자연의 힘 앞에 무력한 인간이 신을 달래려고 온갖 주술을 행하던 시대였고, 인왕시대는 인간이 신(진리)을 찾아 나선 구도자의 시대였다면, 신왕시대는 신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찾아오신(성육신) 은혜의 시대였고,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다(1:1-18).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의 마침표(종언)가 되신다. 그리고 이를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문서가 요한복음이라는 점에서 요한복음은 천하제일지서(天下第一之書)이다.

 

3. 한편 지난 2천 년 동안의 기독교회의 역사도 약 500년 단위로 분열과 개혁의 길을 걸어왔다. 초기의 기독교회는 셈계, 헬라계, 라틴계라는 세 종족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500년경 단성론자들인 셈계가 분열되어 나갔다. 또한 약 500년 후인 1054년 동서교회의 분열로 헬라계(동방교회)가 분열되어 나갔다. 그 후 약 500년 후인 1517년 루터로부터 시작된 개신교 종교개혁으로 서방교회인 라틴계는 다시 가톨릭과 개신교로 분열되었다. 그런데 개신교 종교개혁 이후 500년이 지난 오늘날 또다시 패러다임의 전환으로서의 새로운 종교개혁이 요청되고 있다.

그리스도교 사상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삼는다고 할 때, 1의 종교개혁은 주후 1세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모세의 종교’(유대교)에서 예수의 종교’(기독교)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그리고 16세기 마르틴 루터에 의한 제2의 종교개혁은 베드로를 중시(교회와 교황)한 베드로의 종교(가톨릭)에서 바울을 중시(성경과 예수)한 바울의 종교(개신교)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2의 종교개혁은 한마디로 베드로 르네상스에서 바울 르네상스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그런데 아드 폰테스’(Ad fontes), 근원으로 되돌아가자라는 기치로 내걸고 출발한 제2의 종교개혁 이후 500년이 지난 오늘날 21세기에는 신학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청되고 있다. 즉 기독교는 바울 복음에 기초한 바울의 종교보다는 더 근원적인 예수 복음에 기초한 예수의 종교이다. 따라서 바울서신에 기초한 바울의 종교에서 바울(서신)보다 더 근원에 속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서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19세기에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 우선설에 기초하여 마가 르네상스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네 개의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객관적 보도가 아닌 각 복음서 기자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서 배태된 문서라는 점에서 마가 우선설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연구에 이어 20세기 들어오면서 불트만(R. Bultmann)에 의한 요한복음서 연구(The Gospel of John)가 나오면서(1941) 공관복음서를 넘어 완성된 복음서(이에 대해서는 다시 자세히 다루고자 함)로서의 요한복음 시대가 열렸다.

그와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핵개발과 인공지능(AI)시대를 맞이하면서 역사의 종말과 최후 심판을 다루는 <요한계시록>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제 드디어 요한 르네상스시대가 본격화된 것이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시간부터 다루도록 하자). 이를 제 3의 종교개혁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도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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