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글을 내용과 표현이 어색한 부분을 찾아 고치는 것’을 고쳐 쓰기라고 한다. 세상만사 한 번에 완벽해지는 것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첫인상이 좋아야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 보고 내면과 실력을 판가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계절을 3번 정도 겪어봐야 조금 알 수 있다고 한다.
한번 각인된 인상은 강렬하게 남는다. 첫인상 이후에 상반되는 모습이 보이더라도 3분의2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는 인식을 지배적으로 받는다. 그래서 그 사람의 새로운 행보를 의심하거나, 아예 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내면을 아는 것은 어려울 뿐 아니라 각인된 인식을 바꾸기도 어렵다. 

   ‘사람을 고쳐 쓸 수 있는가’가 최근에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결론은 ‘불가능하다’다. 그만큼 사람의 타고난 성격과 기질, 습관을 고치기란 쉽지 않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환경에 직면하면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사람을 고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사람은 물건과 달리 일원화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건은 처음부터 목적을 가지고 규격대로 만들면 그 기능을 한다. 사람은 자신의 관점을 가진 뒤에는 그것이 틀렸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해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다.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와 유사과학에 매료되면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려하지 않고 반대 의견이 틀렸다고 반박한다. 지구 평평설을 주장했던 자들이 대표적인 예다. 개과천선(改過遷善)이라는 말을 ‘개(犬)가千善’으로 바꿔 ‘개가 천 번 착해지면 인간이 된다’는 말이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런데 유독 개 같은 사람은 천 번을 바뀌어도 사람다운 사람으로 거듭나기가 어렵다. 
2018년 ‘수리병원’의 간판을 걸고 물건을 수리해주는 사람이 관심을 받았다. 맥가이버(Mac Gyver)처럼 고장 난 만년필, 우산, 안경테, 시계, 자전거 등의 물건을 임기응변과 순발력으로 고쳐주는 수리의 탁원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고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고치기 어려우면 바꿔 쓰는 것이 상책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 번 관계를 맺고, 입사를 시켰는데 버릴 수 없기에 직책을 바꾸고, 임무를 바꿔서 적재적소에 쓰려고 하지만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상대를 바꿀 수 없기에 내가 바꿔서 상대해주기’도 한다. 대책은 있는가? 난감하다.

임동헌 목사(첨단교회)
임동헌 목사(첨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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