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아무 말도 없이 잠잠히 있는 것, 혹은 그런 상태’를 말한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침묵이다. 아니, 말을 참는 것이다. 말을 못해서가 아니고,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적당한 때를 위해 미루는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 침묵한다. 그러나 말해야할 때 말하지 않은 침묵도 있다. 진실을 숨기는 경우다. 이것은 비겁한 침묵이 있다. 묵비권은 개인에게 주어진 권리이기도 하지만, 비겁함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처세술이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눅 19:40).

 

경청을 위한 침묵과

진실을 숨기는 침묵

 

   말은 한두 살 때부터 배우기 시작하여 평생 사용한다. 그러나 침묵은 평생을 배워도 지키기가 어렵다. 그래서 침묵하는 법을 평생 동안 배우고 또 배워야한다. ‘침묵은 가장 고상한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언어학자들은 ‘말을 하면서 배우는 것보다 오히려 침묵하면서 더 많은 어휘를 배운다’고 한다. 
언제 침묵해야할까? 내가 하는 말을 소중하게 듣지 않은 사람에게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나를 소홀하게 대하거나 홀대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말에 귀 기울지 않는 상대에게는 말할 필요가 없다. 말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어떤 말이든지 절대 금해야한다. 

   나에게서 나간 말은 더 이상 내 말이 아니다.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말은 어떤 누구에게도 절대 말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입이 무거운 사람에게라도 하지 말아야한다. ‘내 비밀은 내 입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가 말하지 않으면 그 비밀은 유지될 수 있다. 내 입에서 나간 말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심리학자 클라크 무스타카스(Clark Moustakas, 1923~2012)의 시, ‘침묵의 소리’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존재의 언어로 만나자.… 중략, 그대를 겉으로만 알고 싶지 않기에 침묵 속에서 나의 마음은 그대의 아름다움을 비춘다.… 후략” 말의 언어가 아닌 마음의 언어로 만나는 것이 진실함이라고 풀이된다. 
하나님의 심판대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왜냐면 ‘내 입으로 직고’하기 때문이다. 증인이 필요 없다. 증거도 불필요하다. 벌거벗은 것과 같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은 생각도 하지 말자. 하지 말아야할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자. 그것이 올바른 침묵이다.

임동헌 목사(광주첨단교회)
임동헌 목사(광주첨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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