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은 반만년 동안 단일민족으로 살아남은 민족이다. 그래서 붙어 다니는 수식어는 ‘열악한 환경, 은근과 끈기, 백의민족, 단일민족’ 등이다. 우리말의 억척이라는 말처럼 억척같이 살아남은 민족이다. 억척은 우리말로 ‘모질고 끈덕짐’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한자어 악착이라는 말이 비슷한 뜻으로 쓰인다. 악착(齷齪)은 ‘악착할 악, 악착할 착’으로 치아의 사이가 좁음을 뜻한다. 악착은 억척과 달리 ‘도략이 좁고 잔인하고 끔찍스럽다’는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중국에서 악착이 처음 쓰인 것은 6세기 초 시문집 ‘문선(文選)’에 나온 말로 ‘자잘한 것에 마음을 쓰다’는 뜻으로 쓰였다. 지금은 ‘도량이 몹시 좁음, 지저분하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당나라 한유(韓愈)의 시 ‘악착’을 명문당에서 출간한 ‘고문진보’에서는 ‘염치없는 자’로 번역하기도 했다. 
불가(佛家)에 구전으로 내려오는 ‘악착보살’ 이야기가 있다. 신앙심 깊은 보살이 자식들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느라 극락정토로 가는 반야용선의 배를 놓치고 말았다. 다행히 배에서 밧줄을 던져주어 보살은 그 밧줄에 악착같이 매달려서 극락정토로 갔다고 한다. 

   아무튼 세상에서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이루려면 억척이든 악착이든, 끈질김이 있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의지력이 약한 자가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다. ‘해보려는 놈에게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말처럼 투지와 노력을 통해 목표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일반은총의 자연법칙이다. 
승부근성은 삶에 많은 장점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목표를 이뤘다고 다 이룬 것이 아니다. 악바리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원칙을 깨면서 목표를 이룬들 자신과 타인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성취감 하나는 가질 수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성경은 “선을 행하되 포기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이루리라”(갈 6:9)고 말씀한다. 주님도 잔치 집에 자리가 비어있는 모습을 보시고 ‘강권하여 데리고 오라’고 하시지 않은가? KJV에서는 ‘compel them to come in(강제로 들오게 하라)고 번역했다. 즉 ‘올 때까지 초청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억척과 악착을 구별하자. 선한 목표를 위해 온갖 힘을 기울이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선하게 하자. 이것이 억척이다.

임동헌 목사(광주첨단교회)
임동헌 목사(광주첨단교회)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