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 목사의 시편 강해(4)

시편 3, 4, 5편은 모두 다윗이 쓴 비탄시이다. 다윗이 그와 맺는 하나님이 신실하신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는 탄원시, 신뢰시이다. 시편 3, 4편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과 그의 추종자들의 반역으로 급박하게 쫓기는 다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긴급한 구원을 간구한다.

시편 3편을 아침의 기도이며, 시편 4편은 저녁의 기도로 한 쌍을 이룬다. 5편은 압살롬 반역이 터지기 직전에 다윗이 닥쳐올 위기 상황을 감지하고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간구하는 시이다.

본 시편은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자는 두려움이 몰아치는 밤조차도 평안히 맞이할 수 있음을 노래하는 저녁 찬송시이다. 본 시는 탄식과 애가로 시작되지만(1-2), 신뢰의 찬양(7-8)로 마무리하고 있다. 그래서 본 시를 비탄의 시, 애가의 시, 신뢰의 시라고 불리운다.

본 시의 표제에 다윗의 시, 인도자(메낫체아크, 찬양대장, 지휘자, 혹은 파트장)를 따라 현악기(네기노스)에 맞춘 노래라고 하였다.

고난과 역경 중에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확신하며 진정한 심령의 평안과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고난의 현재의 실존에서 오직 참 구원과 참 소망되신 주님을 전적 신뢰하는 가운데 누리게 될 기쁨과 평안을 찬양드리는 시다.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형형색색으로 끊임없이 침노하는 각종 고난과 시련 속에 위로를 받고 또한 각자의 시편 4편을 노래해야 할 것이다.

사진 제공 : 정준모 목사
사진 제공 : 정준모 목사

1. 탄식: 나의 기도를 들어주소서(1)

[개정]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 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새번역] [지휘자를 따라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다윗의 노래] 1.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내가 곤궁에 빠졌을 때에, 나를 막다른 길목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곤란을 당한 다윗이 자신의 의가 되신 하나님께 자신의 무죄함을 하나님의 공의에 호소하여 기도드리고 있다. 막다른 길목, 곤란의 상황에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 주시길 확신하며 부르짖고 있다.

 

1.1. 의의 하나님(1)

1절에 내 의의 하나님(개정)’ 혹은 의로우신 나의 하나님(새번역)’은 히브리 원문에 엘로헤 티데키로 되어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의를 주시는 분이라기보다 나의 하나님 곧 의의 하나님이란 뜻이다. 하나님께서 공정한 재판을 주관하는 재판관처럼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잘 판단하셔서 자신에게 의를 주시는 하나님이란 뜻이다. , '정의롭게 판단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이다. 다윗의 대적들은 그를 정죄하고 대적하는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바르게 판단하셔서 오해와 누명을 벗기신다는 뜻이다(Rawlinson).

벤게메런(vanGemeren)의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아버지-자식관계를 가장 확실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다. 다윗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관계에서 자신을 의롭게 여기시고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가 확고하게 서 있는 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다윗의 자만이나 교만한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맺은 의로운 관계 때문에 갖게 되는 자신감 혹은 확신이라고 볼 수 있다.

브릭스(Briggs)하나님은 다윗의 송사를 원수를 대항하여 신원해 주시며, 그의 권리를 세워주시는 분으로 해석하고, 비텐비져(Buttenwieser)억울함을 보상해 주시는 분으로 해석하였다.

의의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과 직결되기에 에게게 구원을 베푸시는 인자하신 하나님이시다. ‘내 구원의 하나님’(18:47)이시며 또한 내 인자함의 하나님(59:11, 18)으로서 구원과 인자함을 베푸시는 하나님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했으나 우리의 억울한 사정을 잘 판결하셔서 우리가 의롭다고 판정해 주시는 분이시다. 인생사에서 얼마나 원통하고 억울한 일로 가슴에 멍이든 우리의 현실을 온전하게 억울함 없이 판단해 주실 분은 오직 우리 하나님, 의의 하나님뿐이시다.

 

1.2. 부르짖을 때 응답하시는 하나님(1)

시편 여러 곳에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응답해 주시길 간구하고 있다(3:5; 17:6; 27:7; 55:17; 86:6,7; 91:15; 99:6; 102:3; 118:5; 119:145, 146; 120:1; 138:3). 예레미야도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리라라고 약속하셨다. 기도를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응답의 확신을 갖지 않는다면 그 기도는 무용지물이다. 기도드릴 때,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고 교훈하는 몇 가지 말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마태복음 77~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 마태복음 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 마가복음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 요한복음 157-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 요한복음 1623~24-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요한일서 514~15- “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사진 제공 : 정준모 목사
사진 제공 : 정준모 목사

 

1.3. 곤란에서 해결해 주시길 간구(1)

곤란’(챠르)은 히브리에 동사 챠라르에서 나온 말이다. 그 뜻은 묶다’, ‘제한되다’, ‘괴롭히다’, ‘좁은’, ‘부족한등이다. ‘너그럽게 하다자리를 넓게 만들다’, ‘마음을 크게 갖는다는 뜻이다. 문자적으로 곤란 중 너그럽게 하셨다는 것은 협곡에 포위된 군대가 포위를 뚫고 넓고 광활 지역으로 빠져 나오는 해방과 승리를 의미한다.

다윗이 위기를 당했을 때는 포위망에 갇혀있는 곤란 중에 있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적의 포위망을 뚫고 넓고 위험이 전혀 없는 지역(너그럽게 된 지역)으로 나오게 되는 것을 간구하고 있다.

젠거(Zenger)위기에서의 구원을 얻게 됨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라고 했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협곡(곤란)에서 구속을 받는 (너그럽게 되는 것)것이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 “주님, 오늘 당면한 제 인생의 협곡, 곤란에서 주님의 도우심으로 해방과 평안, 곧 너그러움을 주옵소서

다윗은 과거에 이미 구원받은 신앙체험을 근거하여, 또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상기 하면서 확신에 찬 기도를 드린다. “곤난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곧 이미 지난날에도 너그럽게 해주신바 있으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신앙생활에서 지난 날 체험과 간증을 현재와 미래에 당면한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과 역사를 기대하고 호소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큰 힘이 된다.

 

1. 4. 은혜 베푸시길 간구(1)

주님의 은혜을 간구하는 것은 절박한 문제에 부딪칠 때, 나타나는 기도 내용이며 마땅한 자세이다. 주님은 부르짖을 때, 은혜를 베푸시고,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시다.

어려움을 당하면 기도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닐까? 곤란을 만나면 기도하는 신호이다. 곤란은 기도 시작으로 곤란을 끝을 내어야 한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5:13).

다윗은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라고 간구한다. 다윗이 자신이 가진 의()는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라 전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얻은 것이다.

또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구원도 전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윗은 자신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곤란 즉 환란과 위기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의 여유와 안정을 주시고 그를 건져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제공 : 정준모 목사
사진 제공 : 정준모 목사

 

2. 촉구: 인생들아 주님을 위로하라(2-5).

[개정] 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 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새번역] 2. 너희 높은 자들아, 언제까지 내 영광을 욕되게 하려느냐? 언제까지 헛된 일을 좋아하며, 거짓 신을 섬기겠느냐? (셀라) 3. 주님께서는 주님께 헌신하는 사람을 각별히 돌보심을 기억하여라. 주님께서는 내가 부르짖을 때에 들어 주신다. 4. 너희는 분노하여도 죄짓지 말아라. 잠자리에 누워 마음 깊이 반성하면서, 눈물을 흘려라. (셀라) 5. 올바른 제사를 드리고, 주님을 의지하여라.

위기 속에서도 전적 하나님을 신뢰한 다윗은 승리가 자신에게 있음을 확신하였다. 다윗은 용기백배하여 대적자들에게 헛된 일을 하지 말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를 경외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2.1. 헛된 일, 거짓을 그만 두라(2)

인생들은 원문에 인간의 아이들아로 되어 있다. 다윗에게 반역한 그의 아들 압살롬과 그의 추종자들을 가리킨다(삼하15:1-12). 그들에게 인간(이쉬)이라고 한 것은 유한성을 가리킨다. 다윗 자신에게 반역하고 대항하는 그들의 행위와 노력이 결국 헛되고 허사로 돌아갈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인생들이 지닌 뉘앙스가 부자들’, ‘권세가들로 이해하고 새번역에서는 높은 자들로 현대어 번역에서는 권력 잡아 힘깨나 쓴다는 자들로 번역했다. 이것은 압살롬과 그의 추종자들의 위치와 신상을 표현한 것 같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부, 권력, 영화도 순간일 뿐이다.

어느 때 까지혹은 언제까지는 견디기 힘들 것나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탄식시에서 많이 등장한다. 때로는 삶의 긴 터널을 지나갈 때, 탄식하며 주님, 어느 때까지 이런 고난의 밤을 지내야 합니까? 하며 울부짖을 때가 있지 않는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는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 왕국의 왕권에 도전하고 탈취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헛된 일허사’(리크)어떤 일을 망치고 방해하는 악한 행위를 뜻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의 왕권에 도전하고 찬탈하려는 행위는 곧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거역하는 인간의 무모하고 부질없는 악한 행위라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행위가 거짓(카찹:궤휼, 잘못된 것, 거짓된 것)을 구하는 것으로 보았다.

압살롬의 반역은 그의 계획 시초부터 거짓으로 시작되고 진행되고 거짓으로 마쳤다.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 권위, 제도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불응하고 도전하는 것은 하나님 권위에 대한 도전이요, 그 일은 헛된 결과를 가져오며 거짓 행위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압살롬의 거짓 행위를 추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압살롬의 생애는 안타깝게도 거짓으로 일관되었다. 그는 이복동생 다말을 겁탈한 동생 암논을 살해하기 위해 마음에 없는 거짓으로 성대한 잔치를 베푼다. 부왕 다윗이 병석에 누워있는 동안 4년 동안 거짓으로 민심을 도적질 하였다(삼하 15:1-6). 반역을 도모하기 위해 무리들을 헤브론으로 군집시킬 때에도 제사드리고 간다고 부왕 다윗을 속였다(삼하 15:7-12). 병석에 누워있는 다윗 왕을 문병한 것도 다윗의 상황을 면밀히 확인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리기 위해 거짓으로 한 짓이다(41:5-9).

압살롬은 늘 다윗의 왕권을 빼앗기 위해 거짓말만 즐겨하고 그의 입은 다윗을 축복하나 그의 속마음은 저주를 품는 간사스럽고 거짓으로 일관되었다. “너희가 그를 그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릴 궁리만 하고, 거짓말만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저주를 퍼붓는구나( 셀라 )(62:4).

결국 압살롬은 그처럼 자랑하던 자신의 머리카락이 나무에 걸리고 심장이 창에 찔려 비참한 종말을 맞이한다. 그의 생애는 간사와 거짓으로 일관되었다. 그러나 거짓으로 시작된 그의 반역이 허사로 끝나버린 사울 왕과 마찬가지로 가련한 인생이다. 어떤 경우에도 진실하게 살며 공의를 따라 살아가야 하겠다. 요즈음 거짓이 활기 치는 시대이다.

수원수구(誰怨誰咎:남을 원망하거나 탓할 것이 없음)의 세상이다. 정계, 언론계, 교육계, 군 당국, 교계 등 어느 한 분야에 정직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이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도 하나니”(딤후 3:13). 종말의 징조 중 하나임을 지적한 바울의 교훈이 예사롭지 않다. 거짓없는 정직한 영성을 주옵시고, 정직한 세상을 만들기에 썩어지는 밀알이 되게 하소서, 아멘.

사진 제공 : 정준모 목사
사진 제공 : 정준모 목사

 

2.2.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알라(3)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워 그에게 왕권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주권이요,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하신 일이심을 여러 성경에서 언급했다. 다윗은 이런 사실을 대적자들에게 선포하여 그들의 반역행위가 철저히 잘못된 것으로 다윗에게 범하는 죄악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범하는 죄악상임을 밝히고 있다.

다윗은 자신을 하나님이 택하신 경건한 자로 고백하고 있다. 이 뜻은 거룩한 자’, ‘신실한 자’, ‘자비한 자’, ‘성도등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전적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앙고백적 자아관이라고 할 수 있다.

택하다는 뜻은 구분하다’, ‘특별히 취급하다는 뜻이다. 구약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며 선민사상을 강조한다(Brueggemann & Bellinger).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를 구분하신다”(set apart, KJV, NIV, RSV, NASB) 혹은 경건한 자를 위해 기이한 일을 행하다”(performs wondersNJB, NAB) 등으로 번역하였다.

경건한 자는 자기 스스로 경건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택하여 경건한 사람으로 세우시고 경건하게 살 수 있도록 도우셨기에 경건한 자라고 일컫는 것이다. 성경에 수없이 다윗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심에 대한 사실을 언급한다. 그 이유 중 언약 신학과 사상에서 볼 때, 다윗은 바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적 인물, 그림자가 되기 때문이다.

2절에 언급된 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는 자들에게 3-5절에 7가지 명령문으로 권면을 한다. ‘알아라’, ‘두려워마라’, ‘죄를 짓지 말라’, ‘잠자리에 누워 말하라’(깊이 반성하라), ‘잠잠하라’(눈물을 흘리라), ‘제사를 드리라’, ‘의지하라등이다. 이는 더 이상 범죄하지 말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명령적 권면이다.

크레이기(Craigie)7개 명령문이 점진성을 띤 명령문으로 보고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너희는 화와 분노로 가득해 떨 수 있다. 그러나 죄는 짓지 말아라! 너희 마음속이 악한 말로 가득할 수 있다. 그러나 밖으로 표현하지는 말아라! 조용히 침대에 누워라, 그곳에서는 나쁜 짓을 할 수 없다.”고 했다.

 

2.3. 떨며 범죄하지 말라(4)

떨다’(라가즈)분노하다’, ‘두려워 떨다는 뜻이다. 크레이기Craigie)분노함으로 떨 수는 있으나 어떠한 행위를 함으로 범죄하지는 말라고 해석했다. 다윗은 압살롬과 그 추종자들이 자신의 잘못과 저지른 죄악에 대하여 두려워 떨면서 분하게 여기고 더 이상 죄짓지 는 어떤 행동을 하지 말고 회개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수많은 밤을 기도로 새워본 다윗(16:7; 17:3; 22:2; 57:8; 108:2)은 그들에게 잠자리에 누워 자신들이 행한 행위에 대하여 깊이 반성하고 자들이 범한 행동을 깊이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권면한다.

새번역에는 마음 깊이 반성하고 눈물을 흘리며 각성하라는 뜻으로 번역되어 있다. 다윗에 대한 압살롬과 그 무리들의 반역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요 범죄이기에 그들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정준모 목사
사진 제공 : 정준모 목사

2.4. 하나님을 의지하라(5)

다윗은 대적자들에게 3-4절에서 7개 명령문으로 이런 짓들을 하지 말라로 부정적 명령을 한 후, 두 가지 긍정적 명령을 한다. ‘의의 제사를 드리라’(5). 여호와를 의지하라(5) 등이다.

첫째로 다윗은 의의 제사를 드리라고 권면한다. 압살롬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자신들의 반역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거짓된 제사를 드렸다(삼하 15:7-12). 다윗은 그러한 불의한 제사가 아닌 의의 제사, 형식적 제사가 아닌 진정성 있는 제사를 드리라고 권면한다. 의의 제사는 마음을 찢고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진실하게 드리는 제사를 일컫는다(51:17; 2:13).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품고 회개하지 아니한 제사를 받지 않으신다(66:18). 하나님은 악인의 제사는 미워하시고 정직한 자의 기도는 기뻐 받으신다(15:8).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 통회하는 마음을 원하신다(51:19).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의 희생제물을 기뻐하신다(51:19). 하나님은 스스로 마음의 가죽을 베는 자를 찾으신다(4:4). 하나님은 마음을 찢고 돌아오기를 원하신다(2:3). 하나님은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미워하신다(1:13). 하나님은 하나님의 전에서 거짓말하는 것을 심히 경계하신다(7:4). 하나님은 삶에서는 죄악을 짓고 하나님 전에서는 제사 드리는 거짓을 책망하신다(7:8-10).

두 번째로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면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자신을 전적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이다(McCann). 하나님께서는 어떤 종교 행위 그 자체보다 그 행위자의 신실성, 곧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고 살아가는 삶을 원하신다.

오늘날 성도들이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거슬려 살다가, 예배자리에 와서는 진실한 자기 성찰, 회개와 각성도 없이 형식적 예배와 감정적 열정에 몰입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예배는 두렵고 떨리는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그분 앞에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 상한 마음으로 의의 제사를 드리고 그분을 전적으로 앙망하며 사모하며 의지하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 하겠다.

 

3. 기쁨과 평안: 주의 얼굴을 비취소서(6-8)

[개정] 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새번역] 6.수많은 사람이 기도할 때마다 "주님, 우리에게 큰 복을 내려 주십시오."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며 불평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의 환한 얼굴을 우리에게 비춰 주십시오. 7.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 주신 기쁨은 햇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에 누리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 8. 내가 편히 눕거나 잠드는 것도, 주님께서 나를 평안히 쉬게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다시 한 번 더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재확인한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님께 복을 구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다윗 자신은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무한한 복을 누리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 주위 사람들은 땅의 복을 구하나 자신은 하나님의 얼굴, 즉 하나님 자체를 구한다고 확신에 넘치는 고백과 간구를 하고 있다.

 

3.1. 하나님 얼굴을 바람(6)

6절의 여러 사람’, ‘수많은 사람2절의 교만한 대적자와 달리 6절에는 소심한 회의론자, 낙심한 자들을 일컫는다. 그들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자, 좋은 일을 보여줄 자가 어디에 있는가하며 내뱉는 불신앙적 불평과 불만, 의심과 회의라고 할 수 있다.

’(토브)은 추수절 수확물 혹은 수확물을 얻게 하는 비를 가리킨다고 하나 일반적으로 땅에서 얻는 물질적 복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불경기, 물가 상승, 이자율 급등, 직장 퇴출, 사업장 폐업으로 고통당하는 상황에서 누가 우리에게 선을 베풀까 의심하고 신앙을 포기하는 연약한 성도들을 보게 되는 안타까움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땅의 것에 대한 관심, 육적인 일에 대한 집중으로 영적이고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실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윗은 땅의 물질적인 풍요만을 구하는 수많은 인생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웃으시는 얼굴을 구하고 있다(6). 대적자들의 입에서 뿜어내는 불 신앙적 회의와 불평에 대하여 다윗은 아론의 축복 기도문(6:25-26)을 상기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였다.

하나님 얼굴은 구약에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언약적 축복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은 이 땅에 어떤 물질적인 복과 비교될 수도 없고 비교할 수도 없는 복 중의 복이요 복 그 자체이다. 또한 하나님의 얼굴은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 임재 안에 있다는 그 자체보다 더 큰 은혜와 더 큰 복이 무엇이 있겠는가?

다윗은 1절에서는 하나님’(엘로힘)으로 기도하였으나 여기서는 여호와’(야웨)로 기도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그 신실하신 하나님, 여호와 이름을 부르며 축복을 간구하고 있다. 기도는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찾는 것이 중요하며 그 하나님의 성품, 능력, 약속을 바라보고 언약을 근거하여 기도하는 것이 기도의 본질이다.

사진 제공 : 정준모 목사
사진 제공 : 정준모 목사

 

3.2. 하나님이 주신 기쁨(7)

하나님의 빛나는 얼굴을 체험한 다윗은 그에게 임한 기쁨은 햇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한 수확보다 더 큰 만족감을 고백하고 있다. 진정한 행복은 어떤 예배나 예식, 또한 거대한 종교 축제나 행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더위기 풍성한 수확의 햇곡식과 가득 찬 새 포도주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행복과 기쁨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는 것이다. 그 이유는 주님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평안, 안식, 위로, 기쁨을 주시기 때문이다.

추수의 기쁨은 수고와 땀, 노동과 인내의 열매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보람으로 얻는 기쁨이다. 그러나 다윗의 심령 속에 흘러넘치는 영적 만족과 기쁨은 물질적 풍성함으로 오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보이는 물질의 풍요는 일시적이고 순간적이다. 그러나 여호와로 말미암는 기쁨은 영원하신 주님 그 자체이기에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고 영원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주시는 영생과 천국의 소망이 아닐까?

 

3.3. 하나님이 주신 평안(8)

추적자들에 의해 쫓기는 정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을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다고 확고한 믿음을 가진 다윗에게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평안히 잘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오직 주님만이 진정하고 온전한 보호자가 됨을 고백하고 있다. 자기 욕심과 죄책감 속에 두려움과 불안 속에 평안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인생과는 차별된 참된 평강과 안식을 볼 수 있다.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에서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히브리 원어에는 눕고앞에 함께’, 혹은 한번에라는 단어가 있다. 한글 번역에는 생략되었다. 게세니우스(Gesenius)에는 “be united” 또는 “make one”으로 번역했다. 또한 포세트(Fausset)에는 “at once”로 해석했다. 이것은 매우 의미를 잘 살린 해석으로 눕고 자는 것이 동시에 바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눕자마자 잠들었다는 뜻이다. 대적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위기 속에서 눕자마자 잠들었다는 것은 상상 밖의 모습니다. 추적자의 쫓기는 자로서 피곤하여 바로 쓰러져 잠들었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을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분이 오직 여호와 곧 언약의 하나님, 약속을 신실히 지키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잠, 안식의 잠, 평강의 잠이다.

현대인들이 제일 많이 복용하고 있는 약 중에 하나가 수면제이다. 현대 사회를 불면증 사회라고 불명예로운 이름이 부쳐져 있다. 최근 뉴스 보도에 따르면, “국민 3명 중1, 한번 쯤 겪는다는 불면증..건강한 삶을 위한 첫 걸음은 '숙면이라고 서울대 병원 정신 건강 의학과 이유진 교수의 글이 소개된 것을 보면 쉽기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또한 불면증이 가져 오는 합병증도 매우 심각하다. 특히, 우울증을 동반하고 자살까지 이르는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사진 제공 : 정준모 목사
사진 제공 : 정준모 목사

어떤 약물, 민간, 운동 요법도 근본 치료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처방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아무리 위험한 위기일발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을 모신 자는 어디서나 환경을 초월하여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다.

시편 402절에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시편 7852-55절에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들의 기력의 처음 것을 치셨으나 그가 자기 백성은 양 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 떼 같이 지도하셨도다 그들을 안전히 인도하시니 그들은 두려움이 없었으나 그들의 원수는 바다에 빠졌도다 그들을 그의 성소의 영역 곧 그의 오른손으로 만드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또 나라를 그들의 앞에서 쫓아내시며 줄을 쳐서 그들의 소유를 분배하시고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그들의 장막에 살게 하셨도다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계시면 대적자의 공격, 험산준령, 검푸른 바다, 삭막한 광야, 뜨거운 태양 빛 그 무엇이 두렵겠는가? 하나님께서 그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에는 안전히’, ‘평안히인도하실 것이다.

모세도 요단강 동편에서 이스라엘 12지파를 축복하면서, 신명기 3327-28절에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평화에 대하여 대표적으로 물리적 힘, 패권자의 힘으로서 평화(Pax) 있고 심령에 솟아나는 내면에 솟구치는 평화Shalom)가 있다. 다윗은 패권자의 힘을 상실하는 가운데서도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 평강이 있었다.

존 파이퍼(John Piper)우리의 가장 우선적이고 최종적인 목적이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것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회복하는 것이고 이러한 것을 통해, 우리가 모든 조건과 상황에서 평안을 쟁취하는(Peace Making) 능력을 얻게 된다고 했다.

주님께서 어떤 환경,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임마누엘로 안전하게 하시니 두려움과 불안 초조감 없이 눕자마자 평강의 잠을 곧 바로 잘 수 있는 것은 믿는 사람들의 참된 안식과 평강의 잠을 주시는 주님의 큰 은총이요 은혜요 선물이요 축복이다.

 

결론

본 시의 저자인 다윗은 참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이다. 그는 위기 속에 자신이 그 상황을 다급하게 모면하거나 급박하게 탈출하기 위하며 하나님께 현상적이고 물리적인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으로 긴박하고 다급한 상황에 대하여 그 심각한 현상과 문제들을 하나님께 토로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의 현장에 분명코 개입하셔서 전화위복의 상황으로 급전시키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고 고백하고 노래를 드렸다.

대적자들이 호시탐탐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두려운 마음과 걱정스런 생각을 바꾸게 하였다. 기도하는 사람은 그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처한 상황을 변화시키기보다 기도하는 자신을 기쁨과 평강으로 이끌어 준다.

기도를 통하여 상황에 대한 불평과 원망을 하기보다 하나님의 전적 도우심을 의지하고 신뢰하면서 참된 평강과 안식을 누리게 된다는 진리를 배울 수 있다.

험악한 인생길에 수많은 시험이 복병처럼 호시탐탐 밀려올 때에도 항상 주의 얼굴빛을 구하는 자에게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큰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 그것은 보혜사 성령님께서 영원히 우리 안에 거하시며 참된 위로자가 되시면 진정한 문제 해결자가 되어 주시길 때문이다.

 

사진 제공 : 정준모 목사
사진 제공 : 정준모 목사

우리는 호라티오 스페포드(Horatio Spafford(1828-1888)가 작시한 "내 영혼 평안해 (It is well with my soul)"라는 찬송시 속에 4명의 자녀들의 생명을 동시에 빼앗아간 참람한 아픔의 심연 속에 주님이 주신 평화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찬송시를 썼던 호라티오 스페포드(Horatio Spafford(1828-1888)는 당시 시카고에서 성공한 변호사이자 부동산 투자자였다. 그와 그의 아내 에나(Anna)1명의 아들과 4명의 딸을 낳고 교회에서 자선 활동과 봉사의 삶을 살며, 신실하게 그리고 유복한 삶을 영위했던 가정이었다.

1871년 그들 가족의 불행이 다가왔다. 그 해에 성홍열(Pneumonia)로 네 살 된 아들을 잃었습니다. 몇 달 후 시카고 대 화재(Great Chicago Fire)로 인해 소유 재산의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 1873년 다시 큰 비극이 설상가상으로 닥쳤다.

인생사에 지친 가족들이 휴식을 취하려 온 가족이 유럽 여행을 계획했다. 가장인 호라디오 스페포드는 가족과 함께 할 계획이었지만 예기치 않은 사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카고에 머물고 아내와 자녀들을 먼저 보내게 되었다.

18731121, 프랑스 정기 여객선인 빌 뒤 아브르’(SS Ville du Harve) 호에 호라티오의 부인 에나와 네 딸을 포함, 313명의 승객을 태우고 출항하여 미국에서 유럽으로 가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고 있었다.

출항을 한지 약 4일 만에 대서양 바다 한가운데서 빌 뒤 아브르호는 스코틀랜드의 강력한 철제 선박인 락크 에론(Loch Earn)과 충돌했다. 갑자기 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심각한 위험에 처했다.

에나는 서둘러 네 자녀를 갑판으로 데려왔다. 그녀는 그곳에서 네 자녀(Annie, Maggie, Bessie, Tanetta)와 함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를 살려주시거나, 우리에게 닥친 위험을 잘 견디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약 12분 이내에 이 선박은 4명의 호라티오 자녀들을 포함하여 226명의 승객을 대서양의 어두운 바다 아래로 수장시켜 버렸다.

배가 침몰한 지점에서 구조작업을 하던 선원이 잔해 위에 떠 있는 한 여성을 발견했다. 아직 살아 있는 에나였다. 그는 그녀를 배에 태웠고 그들은 9일 후 웨일즈 카디프에 상륙한 또 다른 큰 배에 실렸다. 거기에서 그녀는 남편에게 "혼자 살아남았으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Saved alone, what shall I do?)"라는 문구가 적힌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짧은 전보를 남편 호라티오 에게 보냈다.

혼자 살아남아 보낸 그의 아내의 전보를 보고 그는 충격과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사랑하는 네 딸들을 잃고 정신없이 헤메고 있을 그의 아내를 생각하여 정신을 차리고 부인을 만나기 위해 사고 선박회사에서 제공하는 배를 타고 사고 현장으로 갔다.

가는 도중 선장은 그에게 말을 건넸다. “지금 배는 당신의 딸들이 잠긴 물 위를 지나고 있다고 했다.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던 그의 마음에 또 다시 커다란 파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검푸르고 깊은 차디찬 바다 속에 잠들어 있을 딸들의 얼굴이 떠올라 너무나 괴로웠다. 그는 눈물로 통곡하며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주님,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했던 저에게 어찌하여 이토록 큰 시련을 주십니까?”

죽은 아이들의 얼굴이 밤새 자기 눈앞을 지나갔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 아닌 씨름을 하던 중 그에게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평안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의 입술에서는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평안을 고백하였다.

“It is well with my soul.” (내 영혼 평안해)의 시를 적었다. 시카고로 돌아온 그는 필립 폴 블리스(Philip Paul Bliss, 1838-1876)에게 자신의 아픈 사연과 고백을 들려주었다.

작곡자 필립 폴 블리스는 미국의 복음 성가 작곡자로서 가장 이름이 높던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스페포드의 고백과 시에 감동을 받은 블리스는 바로 그 자리에서 곡조를 붙였고, 이런 계기로 우리 말 찬송가 413<내 평생에 가는 길 순하든지>이다.

위와 같은 비극적이고 처참한 상황 속에서 좌절과 낙심 속에서도 주님의 위로와 평강을 체험한 후 위대한 찬송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사진 제공 : 정준모 목사
사진 제공 : 정준모 목사

 

[시편 4편 한영 기도문]

 

주님, 불의가 가득한 세상,

주님은 저의 의가 되십니다.

Lord, in a world full of injustice,

The Lord is my righteousness.

 

악인들의 맹공으로 제가 욱여쌀 때,

주님이 저를 하늘 위로 올려 주소서.

When I am overcome by the onslaught of evildoers,

Lord, lift me up to heaven.

 

온갖 악담으로 저의 명예와 이름을 추락될 때,

주님은 진실을 아시고 진정한 도움이 되십니다.

When my honor and name are ruined by all kinds of evil remarks,

The Lord knows the truth and is a true help.

 

저들이 주님이 저를 버림받았다고 비아냥거릴 때,

, 주님 저에게 주의 얼굴빛을 비추어 주소서,

When they complain that the Lord has abandoned me,

Oh Lord, make your face shine on me,

 

저들이 땅의 성공과 육신의 명예로 희희낙락거릴 때,

주님, 저는 주님 품속에서 참된 안식과 평강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When they rejoice with earthly success and physical glory,

Lord, let me enjoy true rest and peace in your arms.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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