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 목사의 시편 강해(2)

시편 2편은 제왕시이면서 메시아 예언시혹은 찬양시이다. 시편 1편과 더불어 작자가 미상 시이다. 1편은 복으로 시작되고 2편에서는 복으로 끝마친다. 그래서 한 쌍의 시로 보는 학자도 있다.

시편 전체를 왕궁으로 비유할 경우, 시편 1편을 그 출입구라고 한다면 시편 2편은 그 왕궁의 보좌에 앉으신 메시야를 만나게 된다.

이방 나라들이 다윗 왕국에 대한 음모와 반약으로 통치를 거절하는 것을 비웃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언약의 주로 오신 그리스도의 왕국의 우주적 통치를 예언적으로 노래하며 그 분을 경외하며 섬기기를 요청하고 있다.

본 시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두 왕국의 종국을 보며 준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신분과 영적 싸움의 현장과 삶의 원칙과 우선순위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다.

 

A. 이방 나라들의 음모와 하나님의 비웃음(1-6)

1. 반역한 나라들에 대한 탄식(1-3)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표준 새 번역은 “1. 어찌하여 뭇 나라가 a) 공모하며, 어찌하여 뭇 민족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a.70인 역에는 격노하며) 2. 어찌하여 세상의 임금들이 나서고, 어찌하여 통치자들이 음모를 꾸며 주를 거역하고, 기름 부음 받은 분을 거역하면서 이르기를 3. 이 족쇄를 벗어 던지자. 동여맨 이 사슬을 끊어 버리자 하는가?”이다.

1절에 시인은 어찌하여라고 수사 의문을 통하여 놀람, 의분, 격정을 표출하고 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어찌하여가 일석이조(一夕二鳥, double-duty) 기법으로 1, 2절에 각각 2번씩 총 4개의 동사에 각각 적용할 만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이방 나라(뭇 나라, 열방, 민족들, 나라들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됨)의 이스라엘에 왕에 대한 반역에 대한 통탄과 의문을 제기하는 말이다. ‘어찌하여는 좌절감을 나타내는 의문사가 아니라 이방 나라들의 반역적 행위에 대해 놀라움과 조소를 나타내는 수사 의문사이다(D. Kidner).

이스라엘 역사를 회고해 볼 때, 뭇 나라들(이방 나라, 민족들, 열방들)이 그동안 예루살렘 왕의 통치를 받으며 그에게 복종하였다. 그러나 새 왕이 등극하면서 여러 속국의 왕들이 음모와 반역을 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하여 어찌하여어리석고 허무한 짓들을 하고 있는가 하며 수사 의문으로 놀라움을 나타내고 있다.

로저손과 맥카이(Rogerson & Mckay)본문에서 언급된 열방은 직접적으로는 이스라엘 지배하에 있었던 이방 나라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이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에 도전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협하는 모든 종류의 세상 사람들을 가리킨다라고 했다.

이 세상의 왕들과 관원들은 서로 꾀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속박으로 여기며 그에게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악인들은 당을 지어 악을 행하며(2:8),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지만, 그들의 모든 계획은 헛될 것이다.

여기서 '기름 부음 받은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쉬야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자란 의미로 여기서는 이스라엘 왕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의 왕들(특히, 다윗 계열의 왕들)은 대관식 때 기름 부음을 받았다(왕상 1:45). 이 기름 부음은 하나님의 왕직을 대리하기 위하여 그 자신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낸다(28:41; 3:3; 삼상 10:1; 16:3).

당시 이방 나라들은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통치와 체제를 벗어나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반역을 꾀하였다. 이것은 종말론적으로 만왕의 왕 되시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이신 메시야에 대한 다스림을 거부하는 세상 나라의 통치자인 악한 권력자, 악한 제도, 악한 영, 악한 무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본 시는 일차적으로 다윗 왕가의 정통성에 대한 제왕시(royl psalm)이나 긍극적으로는 장차 오실 영광의 왕이신 메시야 예언시(messianic psalm)이다.

 

다윗 왕가의 정통성을 말하는 제왕시이자

메시야 예언시인 시편 2편

유대의 종교지도자들과 헤롯 왕과 로마 총독 빌라도가 함께 연합하여 하나님의 보내신 메시아를 십자가에 죽게 하였다. 사도 베드로는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라고 말하였다(4:27-28).

기름 받은 자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뜻한다. 구약에서 왕, 선지자, 제사장이 기름 부음을 받았다. 기름 부음의 신학적 의미는 하나님의 선택받음, 직책 임명, 직분 수행에 필요한 성령님의 지혜와 덧입음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메시야로서 왕, 선지자, 제사장 등 3 중직을 수행하는 진정한 왕이요, 선지자요, 제사장이시다.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부정하고 그의 보내신 메시아를 대항하였지만,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뭇 나라들이 하나님께 분노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께 분노하여도 유익이 절대 없다. 오히려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은 헛된 일이 될 뿐이다.

이방, 세상 통치자들이 함께 은밀하게 도모하고 음모를 꾸민다. 바벨탑 사건 때부터 인간들은 계속해서 서로 뭉쳐서 하나님을 대적해 왔다. 그들은 두 명 이상의 사람이 연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한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였다.

3절에 우리가...하자라고 스스로 격려 내지 권고하는 언급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이방 왕들의 음모를 꾸미기 위한 악한 결의를 말한다. 그들은 이스라엘 왕이 부과한 여호와의 율법이나 통치 체제를 맨 것과 결박혹은 족쇄사슬로 보고 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의 명령을 따르는 것을 자체를 때로는 족쇄와 사슬로 여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도전하는 자유방임적 생각이며 태도이다. 하나님 말씀 가운데 사는 것이 자신을 얽어매고 결박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미 자신의 영혼이 병들었거나 은혜가 소진되어 버린 상태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현대 인본주의, 세속주의, 향락주의가 얼마나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깨뜨리고 성경적 윤리관을 파괴하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인간의 교만의 극치인 현대 자유주의 극치는 곧 인간 스스로 하나님이 되는 엄청난 죄를 범하는 것이다.

 

2. 하늘에서 비웃으시는 여호와 하나님(4-6)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표준 새 번역을 다음과 같다. “4.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이 웃으신다. 내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 5. 마침내 주께서 분을 내고, 진노하셔서, 그들에게 호령하시며, 이르시기를 6. 내가 거룩한 산 시온 위에 나의 왕을 세웠다 하신다.”

세상 나라와 민족들과 그들의 왕들과 제왕들의 음모와 반역에 대하여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 정서적, 감정적 반응(4-5)과 행동적, 정치적 반응(6)을 보여주고 있다.

4절의 하늘에 계신 자는 매우 높은 분에 대한 칭호이다. 위엄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초월성을 나타낸다(123:1). 표준 새 번역에는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 ‘공동번역에는 하늘 옥좌에 앉으신 야훼”, 기타 번역에는 하늘에 좌정하신 분등으로 번역하였다.

하나님은 단순히 하늘에 계신 자’(개역 개정) 혹은 하늘에 앉으신 자’(RSV, NASB)가 아니라 하늘 보좌에 좌정하신 자’(the One enthroned in heaven, NIV, NJB, NAB)이시다.

또한, 그분은 '가 되신다. ’는 히브리어로 '아도나이이다. 그것은 만물을 소유하신 분(8:1), 지극히 탁월하신 주, 만물 위의 주를 나타내는 말이다. 하늘 보좌에 좌정하신 분은 바로 우주의 왕, 만유의 주가 되신다. 이 우주의 왕께서 지상의 왕들의 악한 도모와 음흉한 음모를 비웃으신다.

하늘에 계신 분이 웃으실 뿐 아니라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웃으신다'는 표현은 신인동형론적(神人同形論的, anthropomorphic)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반역 음모를 결국 이루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는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37:13:59:8).

이처럼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전 우주를 통하시는 주권자가 되신 하나님께서 그분과 그분의 통치자들을 반역하는 자들에 대해 웃으실 뿐만 아니라 가소롭게 여기시고 비웃으신다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은연중에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 위에 뛰어나심을 나타내시는 것이다(Kraus).

하나님은 인간들이 자기를 대적하여 음모하는 것을 보시고 웃으시고 비웃으신다. 하나님은 사람의 반대를 두려워하시거나 당황하거나 멈짓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다만 그들의 음모와 도모에 대하여 비웃으실 뿐이다.

하나님은 하늘에 앉아 계시는 분이시기에 웃으신다. 그분은 영광스러운 보좌에 위대한 왕으로 앉아 계신다. 그분의 우주의 통치자로 앉아 계신다. 그분은 인간들처럼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궁금해하면서 하늘 보좌 앞에서 이리저리 서성거리고 당황하고 계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 속에 세상을 통치하기에 완전한 평화와 확신 속에 앉아 계신다.

하나님은 하늘에 앉아 계시기 때문에 웃으신다. 그분의 통치 영역이 세상의 왕좌가 아니다. 그분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지닌 하늘의 보좌에 앉아 계신다. 하늘에 앉아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땅을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보이스(Boise)하나님은 떨지 아니하신다. 그는 광대한 하늘 성벽 뒤에 숨어 적의 수를 세시지 않는다. 그분은 자신의 왕국에 대하여 상대방 적수에 맞대응하기 위하여 충분한 군사력이 있는가 계산하지 않는다. 그는 당황하여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으신다. 그는 이 엄청난 지상의 바보들을 보고 그저 '웃기만 하신다’” 라고 적절히 비유적으로 말했다.

모건(Morgan)하나님께서 비웃으시는 이 웃음은 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위로가 된다.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 능력의 웃음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 사랑의 웃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인간의 고난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분의 뜻이 성취되는 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의 모든 교만한 자랑과 폭력을 비웃으신다라고 하였다.

여호와께서 모든 역사의 현상에서 악인들의 대적을 비웃으실 것이다. 지난 수 세기에 걸쳐 많은 악인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분의 왕국을 도전하고 핍박해왔다. 이 적들의 모든 일은 좌절되고 무너질 것이다.

역사적으로 한 예를 살펴볼 때, 기독교를 혹독하게 핍박했던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AD 284-305 재위)가 있었다. 그는 극심하게 기독교를 박해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무자비하게 박해했고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그는 기독교의 이름이 말살된다는 문구가 적힌 메달을 만들어 매달라고 명령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또한 그의 제국 국경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힌 두 개의 기념물을 세웠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조비아누스 막시미아누스 헤라클레우스 카이사르레스 아우구스티(Diocletian Jovian Maximian Herculeus Caesares Augusti)는 로마 제국을 동서로 확장하고 공화국을 파멸로 몰고 간 기독교인의 이름을 말살시킨 공로를 인정한다.”

그는 이처럼 자신의 신상을 만들고 전 지역에 세우고 강제 숭배를 하게 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모든 곳에서 금지시켰다.

그러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죽어서 역사 페이지의 한구석에 달린 한낱 각주처럼 사라졌다. 반면에 그 악한 자가 그처럼 혹독하게 말살하고 박해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명성과 영광이 온 땅에 왕성하게 퍼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바로 우주의 왕, 역사의 왕께서 땅의 악한 왕들을 통치는 비웃으시는 것이 아니겠는가?

6절에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고 했다. 여기서 '내가'는 히브리 본문에서 강조 어법으로 사용되었다. 다윗 왕조의 왕을 세우신 이는 바로 하나님이심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메시아를 거절하고 대적하는 세상의 왕들과 메시야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자신과 대조시킨다.

나의 왕이라는 말은 사람들에 의해서나 사람들의 혈통에 따라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특별한 작정과 뜻에 따라 세움을 받은 왕이라는 뜻이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일을 행하실 왕이시다.

내 거룩한 산 시온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예루살렘과 다윗 왕조를 모두 하나님께서 세우셨음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세우신 그곳에 거하신다. 하나님께서 그의 왕 메시아를 그곳에 세우신다는 것은 메시아께서 그곳에 오실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신약시대의 메시야 도래와 그분의 통치를 예고하시는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육체로 그곳에 오셨고 부활하심으로 자신을 주와 그리스도로 확증하셨고(2:36), 그의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땅에 전파될 것이며 장차 재림하심으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딤후 4:1).

 

B. 이방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7-12).

1. 아들의 법령(7-9).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표준 새 번역은 “7. 나 이제 주께서 내리신 칙령을 선포한다. 주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c) 네 아버지가 되었다. (c. 또는 너를 낳았다) 8. 내게 청하여라. 뭇나라를 유산으로 주겠다.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네 것이 되게 하겠다. 9. 네가 그들을 d) 철퇴로 부술 때에, 질그릇 부수듯이 부술 것이다 하셨다. (d. 또는 철 홀로 다스릴 때에)”라고 되어 있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법령(의정서, 칙령, ) 전한다. 이것은 어떤 인물을 합법적인 통치자로 인준하는 증빙 문서를 의미한다(Kraus). 이 법령의 다윗 언약인 삼하 7:14의 내용과 일치한다. 다윗 언약에서 다윗과 그의 후손은 여호와의 양자로 선택되었다. 양자됨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권을 부여받게 되었음을 뜻한다, 다윗 계열의 왕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땅을 기업으로 받고 아울러 그의 대적들을 심판할 권세를 부여받은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Weiser, Briggs, Rogerson, & Mckay).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로 지목된 시온의 왕은 신약시대에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본 절은 구속 역사 관점과 언약 신약 관점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행하여질 예수의 대관식을 보여 준다.

또한, 본문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인정을 받는 동시에 그 증거들이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여러 가지로 나타났다. 그것은 (1) 예수의 세례(3:17), (2) 변화 산상에서의 변모하심(17:5), 그리고 (3) 예수의 부활 등이다. 이 셋 중에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 사건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과 만왕의 왕이심을 충분히 증거하고도 충분하게 남는다(Craigie).

그는 메시아의 예표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한다. 이것은 성경에서 가장 핵심 내용인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다. 저자는 본문에서 메시아에 대해 세 가지를 예언한다. 그런 맥락에서 본 저자를 다윗으로 본다.

 

첫째로, 메시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7절에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시며, 그가 아버지의 아들임을 밝히시고, 아버지에게서 난 자로서의 그의 신분을 강조하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5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라고 언급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모든 천사보다 우월하신 증거로 인용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께서 모든 천사보다 더 뛰어나고 뛰어난 이름을 받으셨다고 언급한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뛰어난 이름은 바로 아들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때로는 천사들은 하나님의 아들들로 부른다(1:6).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특정한 의미에서 어떤 천사에게도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것은 오직 삼위일체의 제2위이신 성자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그 이름이 바로 메시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2위 성자, 아들 되신 하나님의 호칭이다. 놀랍지 않는가?

오늘날은 언제인가? 하나님께도 우리처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자가 아니신가? 그러므로 하나님께 오늘날영원한 현재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의 관계는 영원적이다. 그것은 그의 아들의 신성(神性)에서 증거된다. 시간 세계 속에서의 관계라면 아들은 참된 하나님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창세 전에 그가 아버지와 함께 누렸던 영광에 대해 말씀하셨다(17:5). 성경의 풍성한 증거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은 그가 행하신 기적들과 부활로 확증되었다(20:30-31; 1:4).

 

둘째로, 메시아 왕국은 온 세상 땅 끝까지 미칠 것이다.

8절에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라고 했다.

"내게 구하라이는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20:4;21:2, 4;삼하 24:12;왕상 3:5). 하나님께 자유롭게 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선택된 왕, 그의 아들이 가질 수 있는 특권 중 하나이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 자녀인 성도들이 받은 기도의 특권이기도 하다(16:23-24).

이어서,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선택된 왕의 아버지이신 주 하나님은 온 우주를 소유하고 계신다. 그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에게 온 땅을 물려주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상속자(相續者)(21:38;4:7)가 되기 때문이다.

크라우스(Krause)“‘그의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겠다는 뜻은 그의 통치가 온 세상에 미칠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또한 페로네(Perowne)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택하신 자녀에게 '아낌없이' 무엇이든 주신다뜻이다고 했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를 통한 우주적인 통치를 예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Craigie, Rawlinson, Briggs).

사실, 이스라엘 역사상 그 어떤 왕도 8절의 제시된 것처럼 이방 나라, 곧 열방 모두를 복속시키고 땅끝까지 다스린 적이 없다. 솔로몬 경우에도 그의 통치권이 북으로 유브라데 강변까지 남으로 애굽 하수까지 미쳤다고 할지라도 두로같은 푀니시아 지역은 복속하지 못하였다(왕상 11:14-25).

물론 하나님의 약속에는 유브라데 강 이편에서 대해까지, 애굽 시내까지 이스라엘이 차지할 약속의 땅이다(15:18-21; 1:7; 1:4; 왕상 4:21). 이 약속은 솔로몬 당대에 잠시 이루어졌을 뿐이다.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영토 확장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러므로 시편 28절의 세상 끝까지는 문자적 성취가 아니다. 이것은 상징적으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그 약속의 땅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메시야 통치가 지역적인 가나안 약속의 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미친다고 선교학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6:1-7; 68:31-32; 72:8; 49:6; 7:14; 2:32; 1:8; 13:37)등이다.

메시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유업을 받으시고 온 세상을 심판하실 권세를 하나님 하아버지께서 맡기셨다. 요한복음 522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종말에 이르러 요한계시록 1115절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라고 예언하셨다.

구약의 다윗 왕국의 확장은 신약의 메시아 왕국을 예표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온 세상의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며(28:19; 1:8)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셀 수 없이 큰 무리가 구원을 얻을 것이다(7:9). 세계 복음화에 대한 시편 저자의 예언으로 오늘날 거의 이루어지고 있다.

 

셋째로, 메시아께서는 철장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심판하실 것이다.

9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저희를 깨뜨린다는 원어(테로엠)는 고대 번역들(LXX, Syr, Vg)에서 저희를 다스린다’(티르엠)는 말로 읽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니엘 2:34에서 열방을 부서뜨리는 돌로 예언되셨다.

철장(鐵杖, rod of iron)'쇠로 만든 지팡이나 막대기, 철퇴"이다. 쇠막대기로 질그릇을 부수는 것은 고대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질그릇, 항아리에 적국들과 그들의 왕들의 이름을 적어서 박살을 내면서 그들을 통치하고 지배할 것에 대한 상징적 행동을 나타낸다. 애굽의 왕들은 대관식 때에 주변 세계에 대한 자신의 통치권을 과시하기 위하여 주변 나라들의 이름을 적은 질그릇들을 깨뜨리곤 하였다(Kraus).

역사적으로 볼 때, 다윗 왕국이 이처럼 강력한 통치권을 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것은 메시야 되신 그리스도께서 초림의 부활 역사와 재림의 온 우주 심판을 예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애굽의 왕은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질그릇을 깨뜨렸지만 메시야는 '실제로' 질그릇을 깨뜨림과 같이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그리스도를 철장으로 다스리는 자로 묘사되셨다(2:27; 12:5; 19:15). 그의 통치권은 그의 구원 사역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으나, 장차 세상을 심판하실 때에 완성될 것이다(17:31; 딤후 4:1).

어떤 학자들은 깨뜨린다는 단어가 파괴적인 용어이므로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그라스도의 통치를 묘사하는 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Wette, Hupfeld). 그러나 이 구절은 계시록에서 세 번이나 그리스도의 통치와 관련되어 인용되었다. 요한계시록에는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통치를 묘사한 구절이 여러 곳에 나와있다(2:27;12:5;19:15). 로린손(Rawlinson)의 언급처럼 그리스도의 통치에는 두가지 요소 즉, 평화적인 요소와 아울러 악한자들에게 무서운 형벌을 내리시는 심판적인 요소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이방 나라들에 주신 법령(10-12).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표준 새 번역에는 “10. 그러므로 이제, 왕들아, 지혜를 배워라. 땅 위에 있는 통치자들아, 경고하는 이 말을 받아들여라. 11. 두려운 마음으로 주를 섬기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를 찬양하여라. 12.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어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진노하실 것이니, 너희가, 걸어가는 그 길에서 망할 것이다. 그의 진노하심이 지체없이 너희에게 이를 것이다. 주께로 피신하는 사람은 모두 복을 받을 것이다.

10절에서 12절은 이방인들에게 주는 법령이다. 이 법령에는 이방인들이 행하여야 할 일들 3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것, 둘째, 그 아들에게 입맞추는 것, 셋째,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등이다.

10절은 세상의 악한 자들에 대한 권고이다.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 곧 메시야에 대한 도전에 대한 어리석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대한 절대복종을 촉구하고 있다. 그들에게 지혜롭게 행동하고 그의 경고를 받아들여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 지혜로운 행동과 경고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11-12절의 내용이다.

 

첫째,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떨며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이 말씀에 대하여 랑게(Lange)첫째로, 신앙적인 차원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섬기라는 뜻이며, 둘째로) 정치적인 차원에서 여호와께서 세우신 왕에게 복종하면서 다윗 왕조의 속국으로 만족하라는 뜻이다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순복하라는 권면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 태도이다(1:7). 떠는 것은 마땅히 두려할 자를 두려워하는 뜻으로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촉구하는 것이다. 즐거워하라는 것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참된 기쁨과 만족을 얻으라는 말이다.

히브리서 13:28,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라고 교훈하였다. 경건함과 두려움과 기쁨은 성도들이 가져야 할 신앙생활의 올바른 덕목들이다.

 

둘째, 하나님의 아들로 오실 메시야에게 입 맞추라고 권한다.

입 맞추는 것은 주로 고관이 아랫사람의 겸손한 키스를 받는 복종의 키스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하나님께서 그분과의 관계에서 원하시는 애정을 뜻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 앞에서 우리의 합당한 위치와 자세를 갖추시길 원하실 뿐만 아니라 그분 안에서 기뻐하고 사랑의 관계를 갖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와 중보자이시며 세상의 모든 왕들 중의 왕이시다. 모든 사람은 그를 구주와 주로 고백하고(10:9; 고전 12:3) 그에게 복종하고 그를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그들의 길에 속히 임할 것이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6:22).

하나님이 세우신 왕께 입맞추지 않으면, “길에서 망한다고 했다, 그 뜻은 무엇일까? 일차적으로 객사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자기에 주어진 명에 다하여 살지 못하고 일찍 죽는다는 뜻이 있다. 이것은 각자가 처해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 진노의 심판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왕권에 도전하고 하나님의 아들 되신 메시야에게 순복하지 아니하고 대적하는 자는 그 악한 행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요한복음 318절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진노가 급하심이라이라고 했다. 공동번역에는 자칫하면 불붙는 그의 분노표준 새 번역에는 자신이 걸어가는 그 길에서 망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신속한 심판을 일컫는 것으로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 시는 진노의 무서운 경고로 끝나지 않고 복된 삶을 누리를 것을 권면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구하는 것이며 이방 나라들의 회심을 요청하는 것이다.

 

셋째로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이 말씀의 뜻은 문자적으로 그 안에서 피난처를 찾는 자이다. 곧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이다. 이방 나라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대적하고 음모를 꾸미지 말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야 진정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 피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뜻이다. 세상이나 세상 권세를 의지하지 말고 사람이나 그의 지혜도 의지하지 말고 돈이나 재물도 의지하지 말라는 권면이다. 사람이 참으로 의지할 자는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뿐이다.

결론을 맺으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신하는 자에게 결국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알고 그분을 바로 알고 섬기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에게 진노하시나 그에게 피하는 자에게는 확실하고 분명한 도움과 보장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또한 구속 역사와 언약 신학적 입장에서 볼 때, 아무리 이 세상 나라와 세상 권력이 그리스도의 나라, 그리스도를 도전하고 악한 도모를 꾸릴지라도 결국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승리할 것임을 선포하며 그의 진노가 임하기 전에 하나님께 나와 굴복하고 그분을 경외하며 섬기라는 뜻이다. 늘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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