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외형적으로는 사람의 말로 된 여러 이야기의 모음이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이야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이야기들을 모아 한 권의 책이 될 때까지는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통해 일하셨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록하게 하셨다. 성경은 사람들이 결정해서 성경이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결정해 놓은 것을 사람들이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성경 자체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사랑하시고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사람의 말로 기록하셨고 사람의 말을 통해 전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의 말로 성경을 만드셨고, 과거에는 지금 같은 인쇄술이 없었기 때문에 성경을 읽기 쉽고, 듣고 이해하기 쉽게 만드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이렇게 성경을 말하고 듣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여러 장치를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창세기 22장에서 슬로우비디오같이 아브라함의 행동을 통해 아브라함의 마음을 엿본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아브라함의 행위를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히브리서11:17)’고 말한다. 그리고 이삭을 드리는 이브라함의 믿음을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브리서11:19)’고 말한다. 히브리서 저자의 말을 따라 미루어 짐작하면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창세기22:3-4)’는 슬로우비디오같은 아브라함의 순종의 과정 속에서 믿음으로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깊이 묵상했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은 믿음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신다. 아브라함의 순종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이해하지 못할 하나님의 요구 앞에서 고민했고, 힘들어 했음을 볼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나 우리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 고민하는 것은 같을 수 있으나, 아브라함은 그 고민을 믿음으로 극복했다. 우리는 믿음의 결과로 주어진 ‘여호와 이레’에만 주목하고, 그런 축복을 얻기를 기도하지만, 아브라함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세기22:2)’는 하나님의 말씀을 고통스럽지만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았다. 축복의 결과는 창세기 22:19에서 암시해 준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갈라디아서1:7)’고 말한다. 갈라디아교회는 바울의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라는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지만, ‘구원을 위해서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이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바울이 전해준 복음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임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말하고 듣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힘을 넣어 하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것이 되고, 이야기의 내용 가운데 듣는 이들이 불편해 보이는 것을 생략하고 말하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있다. 혹은 이야기를 전하면서 자기의 생각을 첨가하기도 하고, 다른 이야기들을 섞기도 한다. 그래서 성경을 말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듣는 사람들은 올바로 듣기 위한 분별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말하고 듣기 위해 성령께서 우리에게 지혜 주시기를 기도하자.

오성환 목사(광주 이야기가 있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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