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유튜브를 시청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말하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의 말의 핵심요지는 이런 것이었던 것 같다.
“기독교의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는 계약관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근대적이라고 보여진다. 자기의 신이 우월적인 지위에서 백성에게 자신의 사상을 강요하는 계약을 요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사람의 말을 내가 제대로 옮기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대략 이와 같은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의 말에서 옳지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되고, 또한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것은 하나님은 결코 군림하는 폭군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사랑에 대해 인간은 알지 못한다. 인간을 만드시고 존엄성을 존중해 주셨다. 그리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다.
나는 기독교가 계약의 종교라면 오히려 자랑스럽다. 사실 계약이 가장 활성화되고 활발하게 체결이 된 것은 근대 계몽주의 사회에서부터이다. 민법에서는 사적 자치의 원칙, 특히 계약 자유의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다.
근대 사회에 논의되는 계약관계 이전에 이미 모세의 시내산 언약에서의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계약, 아니 그 이전의 아담과 하와의 언약, 더 올라가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의 언약 등 성경은 무궁무진하게 계약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이러한 계약관계에 대해서 깊이 고찰하여 볼 때 우리는 이것에 비판을 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이 얼마나 진보적이고 앞서 나가고 있는 사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또한 그리스에서 시작된 민주주의 그리고 근대 미국독립전쟁과 프랑스혁명의 기반이 된 사회 계약론 등은 성경보다 훨씬 뒤에 이루어진 일로서 성경과 기독교의 우월성을 증명하여 주는 것이다.
어떤 사실을 주장할 때, 있는 사실 그대로 말을 해야 한다. 불교가 옳은 점이 있으면 그것을 사실대로 말해야 하고 기독교가 옳고, 좋은 점이 있으면 그것에 대해 사실대로 말해야 할 것이다.
이것에 대해 오히려 폄훼하는 모습에서 가룟 유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한편 근대 사회계약은 통치자가 그 계약에 따라 행동을 할 때 그 의미가 가장 크게 드러나게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박훈 목사(백련교회, 광주기독교윤리실천운동 간사) 
박훈 목사(백련교회, 광주기독교윤리실천운동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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