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John 2:19

They went out from us, but they were not of us; for if they had been of us, they would no doubt have continued with us: but they went out, that they might be made manifest that they were not all of us.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진정한 복음주의로부터 탈출하는 자신을 혹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을 변호하며 성경을 기꺼이 따르는 복음주의자들이라며 자신의 시야는 가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Evangelical and Catholic Together / 복음주의 가톨릭 연합' 기관이 생기며 언제부터인지 영국의 개신교인들은 우유부단한 마음을 가지며 나름대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가톨릭과 타협하는 모습들을 필자는 지난 25년간 보아 왔습니다. 이는 마침 고국의 정치적인 모습을 보고 있는양 상당히 많은 교회 지도자들 중에 한때 복음주의자들 위치에서 지금은 점점 더 적대적인 문화로 인해 어떤 면에서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 다른 교회 지도자는 탈출할 방법을 찾으려는 큰 유혹에 휩싸이고 있는 것 같네요. 이글을 통해 자신들이 바로 성경의 가르침대로 신앙생활하고 있는지 피차간에 살피며 도전을 받길 원합니다.

저들의 탈출구 모습은 기독교인들로 주류에 머물면서 안일한 사고로 곧 문제를 피하며 나아갑니다. 저들도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이라며 반박을 합니다. 더 나아가서 자신들이 승인하지 않는 일을 따라 하는 것을 의미할 때까지 본인은 성경을 기꺼이 따르는 복음주의자들이라며 자신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 유행하는 무지개 끈을 착용하거나 무지개 가방을 들며 심지어는 무지개 옷을 입고 다니는 저들에 대하여 필자는 나름대로 몸을 커버한 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전하고자하는 세상적 무지개 메시지를 부끄럽지 않게 오히려 자랑삼아 알리려는 자들을 만날 때에 독자들은 어떤 행동을 취합니까? 놀랍게도 가까운 친구가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서로 반하는 의견 때문에 그 자리를 피하시렵니까? 주님의 참된 교회에서 저들에게 전해지는 결혼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에 이웃의 눈치따라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동성 결혼식에 저들이 초대받는 것도 똑같이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기꺼이 따른다며 자신들도 복음주의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저들의 눈빛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저들의 삶에 미국과 유럽 아니 전 세계적으로 큰 문제인 낙태가 '안전하고, 합법적이며, 드물어야' 한다는 전 미 대통령 빌 클린턴의 견해가 결국은 태아 대량 학살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는 말입니까? 저들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낙태를 좋아하지 않지만 저들로부터 나타나는 또 다른 면은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생각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국의 요즘 정치인들의 행보를 보듯이 '기득권 견해'가 성경과 점점 더 충돌함에 따라 참 복음주의 교회 안에도 위에 표현된 겉치례적 기독교인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가 더욱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나 교회의 경험들은 저들로 철저한 선택은 마음의 충성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럴 때에 요일: 2:19 말씀은 혹 의견이 달라 길이 갈라져 고통스러울 때 우리에게 필요한 위로가 됩니다.

존경하는 독자들이여, 우리 나이가 들수록 보다 솔직해집시다. 고국이든 이국땅이든지 매일 전도와 선교에 노력하지만 그 사역 일인 전도는 참으로 쉽지는 않습니다. 사실 요즘은 우리 고유의 한국 문화의 전도자로 나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쉽습니다. 세상은 한류를 타며 그 문화적 관심도가 세상 사람들에게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어떤 정치적 목적으로 압력이 증가되는 가운데 문화 전도사역을 하라면 우리 안에는 제한된 기쁨이 있지만 오히려 스스로 기뻐서 하게 되는 문화 전도자의 일은 보다 잘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교회 사역도 마찬가지로 자유분방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오히려 철저히 진리를 지키려는 것보다는 위에서 언급한 복음주의 탈출 노선에 서는 것이 더 쉽고 자신에게는 당연하다고 스스로 자문자답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어느 매체를 통해 '긍정의 힘이 강하다'라는 글과 프로그램을 보며 많이 웃기도 했습니다. 우리 자신의 삶을 위로부터의 믿음과 긍정적으로 우리 관계를 생각해 보지 않으렵니까? 우리는 주안에만 있으면 일반적인 은혜의 수단을 통해서 감사하게도 우리 그리스도인 편에는 놀라운 능력을 맛보며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앎니다. 개혁 신학자 찰스 하지(Charles Hodge)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람의 영혼에 대한 성령의 초자연적 영향력의... 그 순례길 곧 보통의 통로'라고 묘사했습니다. 다시금 각자에게 주어진 직책이라는 위선의 옷을 벋어버리고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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