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57)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69)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전 강서대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전 강서대 총장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17:8-9).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마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이리라. 요즈음은 선거철이라 좌우 진영과 여야 분당(分黨)으로 말미암은 신당 창당으로 국민은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정치로 인생 문제를 풀려는 정치인들의 현상들을 볼 수 있다. 교회 안에도 선거의 바람은 불어서 자유당과 민주당, 보수당과 진보당의 대립으로 인한 목회자의 입장 표명으로 실망한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게 된다. 과연 우리는 예수당, 하나님의 천국당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어떻게 생각할까.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리페우로트 아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아니 샤마르티)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아르호트 파리츠)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타모크 아슈라이 베마에게로테이카)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발 나모투 페아마이)”(17: 4-5).

시편 17편은 공동체 감사 시편으로 나오지만 일부 분류되어 개인 탄식시에 속한다(3-7; 9/10; 13; 17; 22; 25-28; 31; 35; 38-39; 40:13-17=70; 42/43; 51-52; 54-57; 59; 61; 64; 69-71; 77; 86; 88; 94.16-23; 102; 109; 120; 130; 139-143 ). 표제어가 시편 기자의 기도시로 <다윗의 기도>로 나온다. 6개의 범주에서 축제와 의식 시편기도의 노래가 나오는데 시편 17; 86; 90; 102; 142편은 표제어가 다윗의 기도로 나온다. 여기는 탄식시로 시작하여 감사시를 포함하여 개인과 공동체의 시편을 포괄한다(크라우스, 존데이). 이 시편 17편은 왕정시편으로서 시편 16편과 더불어 개인 탄식시로서 왕정시편에 속한다(크로포트).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밀레파네이카 미쉬파티 예쩨 에니네이카 테헤제나 메샤림) ”(17:2).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아니 베체데크 에헤제 파네이카)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에세베아 베하키츠 테무나테카)”(17:15).

시편 17편은 시편 제1(3-41)에서 첫 번째 단락에 속하며, 시편 3-14편의 하나님의 부재를 다루는 탄식시와 두 번째 단락은, 시편 15-24편에 속한다. 여기에서 1권의 중심은 성산에 오를 자의 자격 조건을 논하는 두 시편(15, 24)에 감싸여 있다. 여호와의 보호하심을 찬양하는 신뢰시편 16, 23편은 시편 15, 24편의 안쪽에 들어가서, 절망과 근심을 표현하는 시편 17, 22편 안으로 들어가 배열되었다. 그래서 전쟁에서 도우시는 승리하는 왕(18, 20-21)이 등장하고 제일 중앙에는 율법,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왕과 율법이 중심을 이루는 제 2권의 구조를 살필 수 있다. “(다윗의 기도)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쉬메아 아도나이 쩨데크)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하크쉬바 린나티) 거짓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하아지나 테필라티 베로 쉬페테 미르마) ”(17:1).

시편이 영혼의 해부학이라 하는 이유는 바로 사람의 심령의 문제를 속시원하게 해결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의의 호소, 나의 울부짖음, 거짓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기도를 들어 달라고 시작한다. 이 기도문의 이 시편은 인생의 처절한 고통과 위협과 위험, 시험을 잘 보여준다.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바하네타 리비)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파카드타 라에라 쩨라페타니)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발 티메짜 자모티 발 야아바르 피)”(17:3). “그들의 마음은 기름에 잠겼으며 그들의 입은 교만하게 말하나이다(피모 디브루 베게우트) 이제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그들이 에워싸서 노려보고(아슈레누 아타 세바부부 에네헴 야쉬투)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리테오트 바아레츠) 그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디메요노 케아르예 이케소프 리테로프)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웨키케피르 요세브 베미스타림) 여호와여 일어나 그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쿠마 아도나이 카드마 파나이오 하케리에후)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팔레타 나프쉬 메라샤 하레베카)”(17:10-13).

더욱이 이 시편 17편은 보통 사람의 인생의 길과 성공한 사람들의 보편적 속성을 너무 잘 보여준다.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헤레캄 바하임)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니이다(우쩨푸네카 테말레 비테남 이스베우 바님 웨히네니후 이트람 레올레헴)”(17:14). 이 세상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과 인생의 모습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천국 시민이나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들은 이러한 시편 17편의 인생길을 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시편은 모델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는 천국 입성의 안내자(매뉴얼)이자 나침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이다.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하펠레 하사데이카 모쉬아 호심 밈미트코메밈 베미네카)”(17:7). 주의 기이한 사랑을 받은 사람은 시편 150편의 아름다운 거룩한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시편들은 다윗과 솔로몬, 모세, 고라(아삽) 자손이 그 시인이자 바로 그 시인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시를 노래로 부르고 쓰신 분이 있다. 바로 마로덕 선교사는 조선 한반도에서 아름다운 성경의 시편, 시와 노래를 부르신 것이다.

마로덕(馬路德, Luther Oliver McCutchen, 1875-1960, 루터 올리버 맥커진) 선교사는 올라탄 말을 재촉하며 선교(포교)하러 다닌 마로덕 덕이리라선교사는 위봉 교회, 완주 고갯길의 교회를 세워서 복음이 불꽃처럼 여러 고을로 퍼지게 한다. 이 완주 위봉 교회는 인근 학동교회, 수만교회, 신월 교회 등 설립 할 수 있는 모태 교회로서 역할을 한다. 위봉교회 당회록(1907325)과 위봉교회 세례교인 명부에는 당시의 성도의 이름이 나온다. 한시(漢詩)(‘어찌하여 이름이 마로덕이던가, 올라탄 말을 재촉하여 포교하러 다닌 덕이리라’) 따라 마로덕 선교사는 전북 동남부의 산악 지대를 바울처럼 영혼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해 무려 80교회를 개척한 위대한 자취를 남기며 선교의 전설로 남아 있다. 그는 190320대 미혼으로 선교하러 조선에 와서 60대 할아버지가 되어 귀국하던 1941년까지 38년간 선교 사역을 하였다. 완주 최초 제내리 교회는 1900년 김성식, 정종혁을 포함한 13성도가 만동리의 김성식 집에서 시작하여 초대 목회자로서 마로덕 선교사가 시무한다. 그는 1910년 한 손에 성경과 다른 한 손에는 쇠고기를 들고 가정을 방문하며 복음을 전하였고, 교통이 불편한 산촌 장수에 말을 타고 방문하여 장수 교회를 세우게 된다.

마로덕 선교사는 씨뿌리기 전도법혹은 농부 선교법이라는 선교 방식을 주창하였고 장터 사랑방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콩을 볶아 나누어 주며 1단계 씨뿌리기를 하고, 2단계로는 방문을 통해 성경을 더 가르치고 잘못 아는 것을 교정해 주는 물주기잡초제거를 하고, 어느 정도 복음을 이해한 사람들을 구별하여 교회 구성원이 되게 하는 3단계 수확하기를 거쳐서, 지역 교회의 일꾼 될 자를 선별하는 가지치기의 과정을 적용했다. 산꼭대기 정상에서 시작된 위봉교회가 바로 서서 복음의 불꽃은 인근 수많은 고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어머니 교회라는 이름의 위봉교회는 전라도 복음의 수원지가 되고 있었다. 마로덕 선교사의 사택과 마로덕 선교사 기념비가 있는 전주 호성교회는 그 선교의 발자취를 살필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윗줄 ,마로덕 선교사, 위봉교회, 이덕봉 장로 / 아랫줄, 말을 타고 복음을 전하는 마로덕 선교사, 매서인, 조사
윗줄 ,마로덕 선교사, 위봉교회, 이덕봉 장로 / 아랫줄, 말을 타고 복음을 전하는 마로덕 선교사, 매서인, 조사

선교사의 전도의 열매가 이덕봉(1889-1950) 순교자(충남 금산)를 낳게 된다. 마로덕 선교사가 전주 선교부에서 멀리 떨어진 금산 지역에 복음을 전할 때에 전주 성경 학교를 통해 이덕봉이 있었다. 그는 삼촌 이춘원의 전도를 받고 금산읍 교회에 그의 엄마와 같이 출석한다. 이 때 마로덕 선교사의 심광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근대 교육을 받고 전주 신흥학교 중등과를 졸업한다. 또 선교사는 그를 전주 성경학교에 보내서 목회자로 자랄 수 있도록 교육을 받게 한다. 이덕봉은 성경학교 3년 과정을 졸업하고 평양신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하는데 바로 마로덕 선교사가 그를 돕는다. 하지만 이덕봉은 인삼밭을 운영해서 평양신학교에 재학 중인 삼촌 이춘원과 조카 이재봉의 학비를 충당한다면서 선교사의 진학 제의를 거절하고 평양신학교 진학을 포기하였다.

이후에 이덕봉은 조사로 임명받고 금산읍 교회, 부림교회, 금성교회, 내밀교회를 돌보며 목회를 한다. 이덕봉은 농사의 수입과 소와 인삼밭의 소출과 재산을 팔아 건축비를 도와서 예배당을 완공하게 된다. 이 때 그는 역평 교회 건립 후 장로로 피택되어 마로덕 선교사의 집례하에 장로로 장립된다. 이덕봉 장로의 인삼밭은 질 높은 농산물이라는 소문으로 말미암아 그의 인삼밭 경영이 번성했지만 6.25전쟁으로 말미암아 수영리 교회에 공산당이 급습하여 마로덕 선교사의 앞잡이라는 죄목으로 인민재판에 회부되어 순교 당하게 된다. 그는 19509.22일 안타깝게 소천하게 된다. 복음의 씨앗은 연단 과정을 통해 한국 교회의 순교와 부흥의 역사를 가져오게 하였다. 마로덕 선교사의 사역으로, 영적 거장의 소문은 퍼지고 또 퍼져서 그 뒤를 잇는 복음의 사람들이 오늘도 그 사역을 감당하며 땅 끝에 마음을 두고, 우리의 갈릴리에 서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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