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52)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64)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슈바 아도나이 할레짜 나프쉬)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홀쉬에니 레마안 하세데카)”(6:4).

인생은 짧고 예술과 역사는 길다. 세상은 점점 더욱 전쟁의 소식이 많고 비참한 현실들이 늘어나며 매일 더욱 처참한 소식을 전하는 것 같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하늘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소망의 근원이 바로 우리 하나님, 주의 소식과 말씀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팬데믹 세상에서 엔데믹 세상으로 변하여 큰 재앙의 여운이 아직도 상처 받은 사람들과 그 이웃 사이에,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 전염되어 그 파국(破局)적 상황이 심각하며 불운한 결과를 계속 낳고 있는 현실이다.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현악 여덟째 줄에 맞춘 노래)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아도나이 알 베아프카 토키헤니)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웨알 바하마트카 테아스레니)”(6:1). 이 세계는 마치 주의 분노와 책망의 장()처럼 영혼은 황량하고 패허가 된 땅과 나라의 모습이다.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한네니 아도나이 키 우메랄 아니)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레파에니 아도나이 키 니베하루 아짜마이)”(6:2). 인생의 수척(瘦瘠)한 상황은 무엇인가. 본문에서는 뼈가 떨리는 상태가 고난과 질병, 고통과 공격으로 쉴 새 없이 그 아픔 상태를 보여준다. 더욱이 시인은 영혼의 패허, 황량한 영혼의 상태를 말하고 있다.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웨나프쉬 니베하라 메오두)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웨아타 아도나이 아드 마타이)”(6:3).

미국에서 총기 소지를 금지하지 않기에 연일 총기 살인 사건으로 나라가 불안에 떨고 있다. 이 세상은 이상적인 나라가 없으며 이 땅에서 완전한 나라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한국도 북한은 미사일 발사로 평화를 위협하고 남한은 정쟁(政爭)과 분당, 총선으로 정국이 갈라져서 팬데믹 시대 이후 어려움이 크다. 또 사람들 사이에 분쟁도 심화되어 가는 형국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시편 6편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얻고자 한다. 시인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사랑하심으로 구원해 달라고 간구한다(6:4).

우리의 현실이 죽음과 사망, 절망과 무소망으로 말미암아 감사함이 없는 상태라면 한갓 지옥에 머물러 있는 실존과 현실을 말한다.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키 에인 바마웨트 지케레카)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비쉐올 미 요데 라크)”(6:5). 우리가 시편의 말씀에 주목하며 소망하는 이유는 우리의 절망적인 현실에서 하나님의 계시적인 도우심이 주께 있으며 그 전적인 구원이 주께 나옴을 아는 까닭이다.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야가에티 베아네하티 아쉐헤 베콜 라에라 미타티 베디메아티 아르쉬 아메세).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아쉐샤 미카아스 에이니 아테콰 베콜 쪼르라이)”(6:6-7). 아무리 어두운 현실일지라도 또 탄식이 심해서 밤마다 침상에서 눈물을 흘려 요를 적신다 할지라도 구원의 확신은 의심이 없이 확고하다. 또 근심으로 몸이 쇠하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운 현실이라더라도 시인은 절망하지 않는다. 시인은 희망을 가지고 한탄하는 상황에서도 탄식의 기도를 하며, 탄원(歎願)하며 기도한다.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수루 미메니 콜 포아레 아웬)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키 샤마 아도나이 콜 비케이이)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샤마 아도나이 테히난티 아도나이 테필라티 이카흐)”(6:8-9). 기도할 수 있는 힘이 없고 기도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을 지라도 시인의 고통받는 그 자체의 탄식이 기도가 되고 또 시인은 그 울음 소리를 들으시는 주님이 계심을 고백한다. 이러한 결과로 말미암아 원수들은 사라지는 기적적인 상황이 도래한다.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예보슈 웨이바하루 메오두 콜 오예바이)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야슈부 예보슈 라가)”(6:10).

시편의 초입부에서는 표제어(압살롬 도피시)에서 현악과 관악(시편 3, 4, 5)시가 나오고 현악 여덟째 줄 노래와 식가욘 노래, 깃딧 노래, 뭇랍벤 노래(시편6, 7, 8, 9)등이 연속되며 음악적 악기와 웅장한 노래가 울려 퍼진다. 단조의 운명의 노래가 퍼지는 것은 인생의 고난의 바다가 인생 초장에서 펼쳐지기에, 시편 기자는 시편의 세계가 클래식 음악의 장단조 운율과 마디의 구성처럼 시편의 구성이 이와 비슷함을 알려준다. 시편 6편은 시편 3-41(다윗의 시모음집)의 다윗 시이며 탄식(참회)시에 속해서 기도의 노래이며 탄식 시편이 탄식과 기도, 감사, 절대적 확신이 담긴 것을 볼 수 있다. 6; 28; 31; 62편은 이런 탄식시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다윗의 시는 시의 대명사와 인류가 최고 많이 읽은 대중적 시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가지는 악의 상황, 전쟁과 큰 질병의 상황에서 느끼는 절망적인 상태를 담고 있는 슬픔과 행복이 교차되면서 이 탄식시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백성과 개인이 자신의 깊은 마음에서 울려진 노래를 하고 있다.

하나님의 예배, 제의적 상황에서 신탁의 약속(6:10)으로 성수(聖水)과 우슬초(정결초)로 정결하게 하며 감사제의 식탁과 성전 예배에서 이 시편이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탄식의 상황에서 결국 감사로 이어지는 노래는, 선교사들이 땅끝에서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일어났다.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 1838-1904, 마늑태)는 존로스와 더불어 <예수 셩교전셔>(1882, 1887)를 번역하여 출판한다. 최초의 한글 성서인 누가복음은 1882년 서북 방언으로 첫 번째 번역되어 출판된다. 그 다음에는 요한복음이 출판되는데 매킨타이어의 뜻에 따라 서북말 판과 서울 말판으로 두 가지 번역판이 출판된다. 마가복음부터는 서울말 수정을 거쳐 출판하게 되는데 아밤, 오맘 아반이(아바니)’ 등 적지 않은 서북 지역의 말이 계속해서 그대로 사용되었다. 1887년에는 신약 전체의 번역을 완료하게 된다. 성경 번역에서 먼저 중국어 성경에서 바늘눈’(희랍어)바늘구멍으로 번역하였고, 나중에 한국어로는 바늘귀로 번역하게 된다.

매킨타이어는 존 로스의 넷째 여동생 캐더린과 1876년 결혼하여, 존 로스와는 매형관계로 한글 성서 번역과 매서인(권서인, 전도인)을 세례를 주어 한국 내로 파송하여 복음 전도하는 일을 하며 긴밀한 협력 선교를 하게 된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들은 로스의 전도인들의 안내로 서북 지역을 여행하며 세례 문답을 통해 세례를 주며 선교를 하게 된다. 특히 첫 성서 번역에서 순 한글로 엘로힘/데오스하느님/하나님으로 번역하여 한국 사회와 문화 역사에서 빛나는 신앙의 길을 열었다.

존로스와 존 매킨타이어의 선교 정책은 두 가지로써 1) 그 나라의 가치관이나 신앙을 버릴 필요가 없고 그 보다는 그 문화를 바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을 세우도록 보여주는 것이다. 2) 비기독교 지역에 있는 교회는 외국인 선교사의 활동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 기독교인들의 생활과 전도를 통해서 실행되어야 한다. 이 로스의 선교 정책은 네비우스 선교 보다 더 깊고 포괄적인 토착 선교 정책이었다. 로스의 <만주 선교 방법론>(2019년 번역 출판, 순교자의 소리)은 자립, 자전, 자치의 삼자 정책이며 사도 바울의 선교를 따랐다. 곧 사람이 많이 다니는 도시에 전도소를 개설하고 순회 전도하는 바울의 전도 방식을 실천하였다.

좌측 존 로스 선교사, 우측 매킨타이어 선교사
좌측 존 로스 선교사, 우측 매킨타이어 선교사

존 매킨타이어와 존 로스는 하늘에 계신 최고의 하늘님을, 한국인의 정서에 맞도록 엘로힘, 데오스 ‘God’하느님으로 1881년 최초로 표기하였다. 이는 지식인들이 한문식 상제’(上帝), ‘천주’(天主)를 민중이 애용하는 언어로 하느님/하나님으로 표기하였다. 로스의 첫 한글 번역 예수셩교 누가복음’(18823)에는 하느님과 하나님을 병기하며 표기하였다. 요한복음(188110)에서는, 서울의 철자법에 따라 신명을 하느님대신에 하나님으로 개정하였다. 이 병기 용법이 1887<예수 셩교 전서>에서는 하나님으로 통일하였다. 존 매킨타이어는 1904917일 별세하여 만주 땅에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이는 존 로스의 선교사의 은퇴보다 6년 앞서서 그는 소천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에 성경을 번역해준 존(요한) 가족은 만주 땅과 에딘버러에 묻혀있지만 성경의 언어 세계를 열어준 은인임을 알게 된다. 한국 선교의 중요한 기반이 성경 번역에 있음을 알고 희생적 번역 작업과 서북 청년들의 언어로 번역하였다가 다시 서울말로 번역하는 작업을 통해 어려운 한글 성경번역을 하였던 것이다. 요한 가족 선교사를 통해 한국어 세계를 열어간 선각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노고를 통해 조선 땅은 서서히 복음의 빛이 비취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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