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54)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66)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전 강서대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전 강서대 총장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미 이텐 미찌온 예슈아트 이스라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베슈브 아도나이 세부트 아모)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야겔 야아콥 이스마흐 이스라엘)”(14: 7).

역사는 과거의 사건들처럼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인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움직이며 거기에서 악성(惡性)과 선성(善性)이 교차되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여 간다. 정치 논리가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것 같지만 거기에는 인간이 먹고 사는 문제, 경제적인 요인들이 나라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이러한 세상의 논리가 움직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세계를 구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이를 묻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살아가야 하는 도상(途上)에 우리는 서있다.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아마르 나발 베리보 에인 엘로힘)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히쉬히투 히트이부 알리라 에인 오세 토브)”(14:1).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결국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의 차이를 보게 되는데,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소유와 부재에서 그 인생의 중요한 문제와 그 결과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시편 14편은 어리석은 자의 모습을 잘 그려주고 있다. 시편 53편처럼 똑같이 그 시구가 반복된다. 이 두 시편 중에 어느 것이 더 본래의 본문이며, 시대적으로 앞선(우선) 본문인가? 학자들은 시편 14편이 먼저 지어진 것으로 본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아도나이 미샤마임 히시키프 알 베네 아담)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리레오트 하예쉬 마스킬 도로쉬 에트 엘로힘)”(14:2). 예언자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세계를 보여주며 다양한 관점에서 어리석은 사람의 타락과 그의 무력적인 탄식의 상황을 포함하고 있다(1-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하콜 사르 야흐다우 네에라후)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에인 오세 토브 에인 감 에하드)”(14:3). 하나님의 시각에서 예언자처럼 말하며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대다수가 거룩하지 못하고 더러운 자가 되며,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는 상황을 보게 된다.

하나님이 없다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어리석은 인생의 종말은 바로 예언자의 격렬한 공격의 연설로 나타나며 시편기자는 이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할로 아드우 콜 파알레 아웬)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오케레 암미 아케루 레헴 아도나이 로 카라우)”(14:4). 통치자에게는 피통치자에 대하는 것이, 백성을 떡 먹듯이 먹는다는 표현을 하며 하나님을 부르지도 않고 찾지도 않는 모습을 보인다. 사악한 사람들의 태도와 그 행위를 보면서 시인들은 그들이 두려워하고 또 매우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며 하나님은 의인의 세대에 계신다고 말한다(5). 하나님이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지만 의인은 오직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고 살아간다고 밝힌다(6). 결국 4-6절을 통해 어리석은 자의 행위를 비난하고 사악한 사람의 결과를 말한다. 결국 이 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의 결말로 끝을 맺는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미 이텐 미찌온 예슈아트 이스라엘)”(7절 전반부). 또한 심판과 은혜의 구조에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을 하게 되다가 은혜로 바벨론 망국의 상황에서 귀환하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베슈브 아도나이 쉐부트 암모)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14;7). 시편 14편은 이처럼 고난의 삶을 보여주며 시편 53편과 시편 40:13-17, 시편 70(70:540:17-여호와)이 하나님의 칭호(엘로힘)로 중복된 시편의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시편 기자의 강조와 시어 반복을 통한 시적 표현의 강조점이라 볼 수 있다. 역사는 고난의 역사에서 회복의 역사로 바뀐다. 이 때 구원의 하나님이 당신이 만나는 곳, 시온 곧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 구원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시인은 고백하고 또 노래한다. 이러한 고난의 삶이 무신론적 사고와 삶에서 기인된다는 사실을 시인은 고백하며 오늘도 고난의 현장, 포로의 현장에서 회개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며 이 시는 마친다. 이러한 삶의 모습처럼 조선 땅에 빛을 전해준 선교사가 있다.

 

레이놀즈(William D. Reynolds, 이눌서, 1867-1951)선교사는 성서 번역가이자 신학자이자 교육가였다. 그는 1910년 출판된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의 번역 작업을 주도하였다. 이눌서 선교사는 조선 예수교 장로회 신학교(평양장로회 신학교)에서 1917년부터 1937년까지 어학 교사 및 조직신학교수로 재직하며 기독교 신학연구지인 신학지남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다가 1937년 은퇴하여 미국으로 귀국하였다. 그는 한글성경 번역에 있어서 한국어 선생이었던 김필수의 역할이 컸다. 성경 번역의 과정은 길고 힘든 여정이었다. 그는 한 권씩 개인역이나 수정역으로 나오던 신약 전체를 1900년 단권 신약성경을 출판했다. 여기서 출판된 성경에서 여러 가지 오류가 발견되자 레이놀즈와 언더우드, 게일은 아예 성경 번역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이들은 1902년부터 1906년까지 무려 555회의 토론과 수정 과정을 거치면서 최초의 공인역본 신약전서를 출판하게 되었다.

레이놀즈(William D. Reynolds, 이눌서, 1867-1951)선교사
레이놀즈(William D. Reynolds, 이눌서, 1867-1951)선교사

이눌서 선교사는 히브리어에 정통하여서 1910년 구약 성경출판에서도 주역의 역할을 하며 신구약 성경 한권이 온전히 출판되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되었다. 그가 56개월 만에 구약 성경 번역을 완성하자 모교 햄든 시드니 대학에서 개교 133년 만에 처음으로 명예신학 박사를 주었다. ‘빛나는 업적을 인정하여 19086월 신학박사(D.D.)학위를 수여한다. 그는 유니온 신학교에서 고전 교육을 중시하는 전통에 따라 히브리어와 헬라어 습득을 하였고 거기에 기초한 성경 원문해석을 익혔다. 그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했는데 1894년과 1895년에 전라도와 남해안 일대를 탐사하게 된다. 이때 그는 일기와 메모지에 한국 고유명사를 한글로 기록했을 뿐 아니라 국영문 혼영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글을 많이 사용했다. 그 수첩 뒤에는 한글 발음법, 문법, 단어, 도량단위와 셈법, 일상회화, 5단계 경속(敬俗)어체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조선 상임성서실행 위원회가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턴, 게일 등 재편되면서 레이놀즈가 1895년 공인 번역위원회에 들어간다. 공인 번역 위원회는 중국의 전례를 참고하여 각 번역 위원이 조한규(아펜젤러), 김명준(언더우드, 레이놀즈), 송덕조(언더우드), 최병헌(스크랜턴), 이창직, 정동명(게일), 김정삼, 이승두(레이놀즈), 홍준(트롤포프), 문경호(존스) 등 언어 조사의 도움을 받아 번역을 하였다. 그들은 1896-1897년까지 매주 세 차례 모여서 토론하며 19005월까지 로마서까지 실험역을 완성하고 초역을 마친다. 나중에 번역 위원회가 언더우드, 게일, 레이놀즈 세 명 뿐이었다가 언더우드와 게일이 질병과 안식년으로 떠나면서 19069월 성서위원회는 알버트 피터스 선교사와 윌라드 글리던 크램을 추가 번역 위원으로 임명된다. 레이놀즈와 이창직, 김정삼은 지속적으로 참석한 사람이었다. 여기서 피터스 선교사의 구약 번역작업이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전주에서 레이놀즈는 19084월부터 19104월까지 2년 동안 이미 번역위원회가 번역하여 출간한 창세기, 시편, 잠언, 출애굽기, 사무엘 상하, 말라기와 게일이 번역했던 욥기, 호세아, 예레미야를 제외한 구약의 모든 부분을 번역하였다. 이눌서 선교사가 거의 손을 보며 다시 번역하게 되고 피터스가 가세되여 마지막 완성하게 된다. 이눌서는 구약 성경을 평균적으로 오전에만 40-50절씩 번역했다. 이처럼 어려운 작업을 통해 191042일 최종적으로 구약 번역을 시작한지 1년 만에 <구약전셔>19113월 요코하마에서 3만 부가 인쇄되었다. 이리하여 <신약젼서><구약젼셔>가 출간되어 성경 전체의 한글 공인역을 완성하게 된다. 한국 기독교의 역사는 이처럼 성경의 번역의 중요한 기초 작업들을 통해 성장해갔고, 레이놀즈는 그의 선교 사역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는 성경 번역 작업을 이처럼 하였고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한국 교회는 이처럼 선교사들의 손길에 의해 하나님 나라의 성장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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