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45)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57)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호찌아 미마세게르 나프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레호도트 에트 쉐메카)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비 야크티루)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짜디킴 키 티게몰)”(142:7).

 

세상은 점점 혼돈과 경기침체, 과학과 문명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성 파괴 심화되어 미래는 점입가경(漸入佳境) 상태로 빠져든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이 만든 매체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모시고 그분에게 집중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조하여 살펴보면 재미있는 결과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세계에 속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난은 크지만 그 고난의 대가와 보상이 크고도 놀라운 역사를 이룸을 볼 수 있다. “(다윗의 마스길(교훈시)내가 소리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비헤요토 바메아라 테필라)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콜리 엘 아도나이 에트한난)”(142:1). 시편의 다윗의 노래는 우리 인생을 살펴보는데 너무도 중요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표제어, <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마스길(교훈) 곧 기도>는 다윗의 생애를 다룬 시들 중에 탄식시이며 감사시에 속한다.

다윗의 생애는 시편 18; 34; 51-52; 54; 56-57; 59-60; 63; 142편 등으로써 사무엘서에서 언급되고 다루는 내용들과 연관되었다. 이 시편들은 궁켈이 탄식시와 감사시편은 분리하는데, 클라우스는 탄식시와 감사시(개인과 공동체)가 결합된 형태로 새 체계의 시라 본다. 때로는 축제와 예배의식과 결합되어 기도의 노래(테힐라)로 보여준다(모빙켈). 따라서 시편 17, 86, 90, 102, 142편은 이러한 성격을 지닌 기도의 노래(Tepilla)이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에쉬포크 르파나이오 쉬히)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짜라티 르파나이오 아기드)”(142:2). 이 시인은 불의의 고소를 당한 사람의 시로서 시인이 성전에서 고소를 당한 것을 인하여 하소연 하듯이 노래를 한다. 곧 고난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시련을 통해 예배와 종교 공동체의 법정, 성전 문 앞에서 시련을 당하는 모습이다. 이는 이스라엘 예배의 시편(모빙켈)으로서 다윗이 당하는 고난과 그 심도 깊은 고통을 빗대어 말하며 모든 성도들의 고난의 뿌리를 대변하고 있다.

내 영이 속에서 상할 때에도(베히트아테프-알라이 루히)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웨아타 야다타)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네티바티 베오라흐 주 아하레크 타메누 파흐 리)”(142:3). 이러한 개인 탄식시는 시편 3-5; 7; 11; 11; 17; 25-27; 31; 35; 38-39; 41-42; 43; 52; 54-59; 69; 77; 86; 88; 94; 102; 109; 139-140; 142 등이다(쉬미트). 시편 141-143(비르켈랜드)은 왕정시와 개인 탄식시(이튼, 142)가 불의한 사람들로 말미암아 고소를 당한 사람의 시임을 말한다.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하베트 야민)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우레에 웨에인 리 마키르 아바드 마노스 미메니)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에인 도레쉬 레나프쉬)”(142:4).

이 시편 142편은 다윗이 굴에서 숨어 살아가면서 쫓기는 인생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비전으로 인해 당하는 고난임을 알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탄식의 상황에서도 기도함으로, 시인이 감사로 바꾸는 놀라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자아크티 엘리카 아도나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아마르티 아타 마흐시) 살아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헬레키 베에레츠 하하임) 하였나이다”(142:5). 압박하고 핍박하는 세력이 아무리 강하고 군대처럼 조직적으로 공격해 들어와도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며 기도의 찬양을 부르고 있다.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하크쉬바 엘 리나티)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키 달로티 메오드)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하질레니 메로데파이)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키 아메쭈 미메니)”(142:6). 고난이 강하고 핍박이 감당하기에 그 고통의 심도가 깊어도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신앙으로 그 시험과 핍박을 이겨낸다. 이처럼 다윗(우리 인생)은 부정과 불의, 부패에 굴하지 않고 신앙의 용기를 가지고 현실을 극복하고 위기를 극복하는데 그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된다. 마침내 기도의 노래를 부름으로 의인들이 나를 두르는역사를 이루며 감사하며 감옥에서 탈출하고, 굴에서 해방되는 역사를 이루며 찬양하는 결론부를 보게 된다. 할렐루야.

 

이러한 시인의 삶을 산 분들이 계시다. 존 로스(John Ross, 나요한, 1842-1915) 선교사는 영국 선교사로 만주에서 홍삼 장사를 하던 서상륜의 도움으로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을 한글로 번역하여 쪽 복음서를 가지고 한국에 복음을 전한다. 그는 신약 성경 번역, 신약성서를 처음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존 로스는 조선의 육로와 기선을 이용하여 쪽복음서와 사도행전, 소책자들을 만들어 조선 땅에 전달하는 메신저 선교사로서 문서 선교사로 활동하게 된다. 그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교사로서 73세를 살며 한글 성경 번역을 최초로 한 선교사로서 한글 띄어쓰기를 처음 도입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존 로스 선교사와 예수셩교젼서
존 로스 선교사와 예수셩교젼서

그는 한국인 이응찬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운 후에 한국어 학습서(1877)를 내서 후속 선교사의 동원을 위한 귀한 저서를 내었고, 또 한국 역사책을 펴내기도 하였다. 존 로스는 중국 동북지방에서 사역을 하며 심양의 동관 교회를 설립하며 대륙의 동북 삼성의 복음의 전초기지를 마련하고, 문서선교와 한국 선교의 베이스캠프를 차리게 된다. 특히 존 로스의 신약 성서 번역, 예수 셩교젼셔(1887)의 발행은 한국 복음화의 큰 디딤돌 역할을 하였고, 이 성서는 존로스 역 성경이라 한다. 그 전에 1882<예수 셩교 누가복음 젼셔, 1883<예수 셩교셩셔 누가복음 데자행젹><예수 셩교 셩셔 마태복음><예수 셩교셩셔 말코복음>, 1885<예수 셩교셩셔 요한복음 어비쇼 셔신>, 1887<예수 셩교젼셔> 등 총 8권의 한글 성경을 간행한다. 이렇게 존 로스는 한국 선교를 위하여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도록 한글 성경번역을 작업하였다. 또한 한국 문화를 새롭게 여는 한글 성경 번역의 길을 열었다.

존 로스가 태어난 스코틀랜드의 시골 마을에서는 영어가 아닌 게일어를 썼기 때문에 로스는 학교에 입학하고서야 정식으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처럼 존 로스는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바로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데 용이하고 쉬운 일이었다. 로스는 한국어 습득의 수월성을 알았고 이 언어가 아름답고 단순하다는 사실을 알고 쉽게 번역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성서 공회에 속한 윌리엄슨 목사가 산둥반도를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펼친다는 소식과 토마스 목사가 선교를 하는 중에 대동강에서 순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한국 선교의 열의를 더 내었고 한국 복음화의 집중하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한국 복음화의 문은 열리고 있었다. 이처럼 한국의 복음의 빛을 비추는 선교사에 의해 조선 땅에 여명의 빛이 비추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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