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46)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58)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강서대 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강서대 전 총장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하쉐미에니 바보케르 하세데카)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키 베카 바타흐티 호디니에니 데레크 주 에레크)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키 에레이카 나사티 나프쉬)”(143:8).

 

전쟁의 참화는 심화되어 지구촌의 앞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하마스 팔레스틴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의 비극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평화에 대한 갈구를 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래며 주님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게 된다.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미즈몰 다윗드, 아도나이 쉐마 테필라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하아지나 엘 타하누나이 베에무나트카 아네니 베찌드콰테카)”(143:1).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리를 듣고 우리의 간구를 들을 때 이 세상에 평화가 오는데 싸움의 양극단은 이해 관계와 원한과 조직의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말미암아 전쟁의 칼을 갈며 더욱 어려운 싸움의 날을 세우고 있다.

시편 143편의 기자는 자신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법정을 열지 말라고 한다.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웨알 타보 베미쉬파트 에트 아베데카) 주의 눈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키 로 이쯔다크 레파네이카 콜 하이)”(143:2). 인생의 삶과 공동체의 생활터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 자신의 논리로 공동체의 평화를 운영하려한다. 그러나 맞지 않거나 공영과 공존을 위한 공통분모 보다는 자신의 진영의 생존과 번영을 위하여 행동을 하다 보면 새로 갈등하고 첨예한 대립을 하고 급기야 지나친 공격으로 서로 갈등의 폭을 넓히며 전쟁으로 치닫게 된다. 지구촌의 극서 지역과 아시아 대륙의 북쪽 지역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이러한 갈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키 라다흐 오에브 나프쉬)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디카 라아레츠 하야티) 나로 죽은 지 오랜 자 같이 나를 암흑 속에 두었나이다(호쉬바니 베마하샤킴 케메테 올람)”(143:3).

이 시인은 공동체의 대립과 원수의 심한 공격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위기와 심한 괴롭힘으로 인해 건강의 치명적 상태가 되어 죽은 지 오랜 상태가 되어 암흑 속에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와티트아테프 알라이 루히)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베토키 이쉬토멤 립비)”(143:4). 심령이 상하고 마음이 참담한 상태, 이는 죽음의 병으로 치달으며 심령이 죽어가는 상태임을 말한다. 시인은 너무도 힘들고 괴로워서 죽음에 치닫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주고 하나님의 극적 도우심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임을 고백한다. 이 탄식 시편에서는 과거의 일을 생각하며 괴로움의 끝을 알 수 없는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다. 이를 통해 시인은 영혼의 깊은 회개의 차원을 들어가게 한다. 한편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셨던 일을 기억하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역사 속에 구속의 강한 손길을 기원한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자카르티 야밈 미케뎀 하기티 베콜 파올레카)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야데이카 아소헤아흐)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페라시티 야다이 엘레카)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나프쉬 케에레츠 아예파 레카 셀라)”(143:5-6).

시편 143편은 다윗의 모음집으로서 시편 140-145편의 구성에서 있어서 그 탄식의 상황에서 이 시인은 여호와께 구원을 요청하는 일련의 다윗 탄식 시편이다. 결국 시편 145편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의 행위를 통한 여호와의 응답으로 제시되며 시편이 결론적 찬양으로 끝나게 된다. 악인들의 공격과 핍박과 압박, 고소와 고발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시인은 극한 위협 속에서 피난처와 바위, 구속자이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며 노래하고 있다. “여호와여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하찔레니 메오예바이 아도나이)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엘레이카 키시티)”(143:9). 이 시편 143편은 탄식의 극한 상태를 묘사하며 인간이 당하는 고난의 심층 해부를 하고 있다.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페라쉬티 야다이 엘레이카 나프쉬 케에레츠 아에파 레카 셀라)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메헤르 아네니 아도나이 카레타 루히 알 타스테르 파네이카 미멤니)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웨니메샤레티 임 요르데 보르)”(143:6-7).

영혼의 문이 열리고 고통과 스올의 고뇌가 해소되고 해결되는 때는 아침에 기도하고 말씀 속에 묵상함에 있음을 시편 기자는 말하고 있다.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다(하쉐미에니 바보케르 하세데카 키 베카 바타흐티)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호디에니 데레크 주 엘레크 키 엘레이카 나샤티 나프쉬)”(143:8). 또 시인은 평화의 땅으로 인도하며 공평한 땅으로 인도해 달라고 요청한다(143:10). 마지막으로 시인은 주의 이름을 위하여 살리시고 환난에서 구원해달라고 요구한다(143:11). 결론적으로 시인은 원수의 제거와 대적자 관계에서 그 적의 해소를 간구하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의 원수들을 끊으시고(우베하스데카 타쩨미트 오예바이)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멸하소서(웨하아바드타 콜 쪼라레이 나프쉬)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키 아니 아브데카)”(143:12). 시편 143편은 짧지만 우리 인생의 고난의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며 대적자의 사라짐으로서 시인 실존의 평화가 옴을 결론적으로 밝히고 있다. 우리는 이 문제가 예수의 십자가 위에서 그 평화가 옴을 알고 있다. 결국 주의 종이기에 인생의 문제가 해결됨을 고백한다.

평화의 사도로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이 땅에 빛의 복음을 가져온 선교사가 있다. 그는 존 로스(1842-1913)인데 스코틀랜드 성서 공회 파송 선교사로 존 매킨타이어 선교사와 함께 중국 땅으로 간다. 그는 71세를 살며 중국 선교사로 중국 산동 지역의 윌리암슨 선교사와 만나서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이야기를 듣는다. 이는 한국 선교의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 후에 로스 선교사는 만주에 있는 고려문을 방문하여 1874년 한국인 이응찬, 김진기, 이성하, 백홍준(의주 3) 및 서상륜을 만나게 되고 그 중에 이흥찬에게 한국어를 배우게 된다. 로스 선교사는 1879-80년 안식년으로 본국으로 가서 한국을 소개하고 한글 성경 인쇄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한다.

좌측부터, 백홍준, 서상륜, 최명오
좌측부터, 백홍준, 서상륜, 최명오

선교사는 1881년 선양에 문광서원을 만들어 성경 인쇄를 하게 된다. 그는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발간해서 일본에서 발간한 이수정의 마가복음(1885) 보다 3년 앞서서 출간하게 된다. 계속된 번역과 신약 성경 전체 번역이 1887<예수 성교전서-로스 버전>을 인쇄하게 된다. 성경 번역 외에도 로스 선교사는 <한영입문>(1874), <한국의 역사, 고대와 현대>(1879)를 출판했다. 존 로스와 매킨타이어는 중국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다. 1881년에는 75명이 세례를 받게 된다. 이렇게 번역된 성경이 백홍준을 통하여 조선에 가져오게 된다. 특히 세관에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 선교팀은 번역성경을 찢어서 갖고 들어오기도 하고 인맥(외교 자문 뮐렌도르프)을 통하여 통관하여 들여오기도 한다. 어렵게 들어온 성경은 조선 땅에 빛으로 수놓게 되었다.

▶왼쪽 : 존 로스 선교사 ▶가운데 : 조선어 첫걸음 ▶오른쪽 : 『예수성교전서(예수셩교젼셔)』는 존 로스와 존 매킨타이어 그리고 한국인 이응찬, 백홍준, 김진기, 서상륜, 이성하, 이익세 등이 번역에 참여하여 1887년에 만주 성경(盛京, 현재의 심양)의 문광서원에서 발행한 한글신약전서
▶왼쪽 : 존 로스 선교사 ▶가운데 : 조선어 첫걸음 ▶오른쪽 : 『예수성교전서(예수셩교젼셔)』는 존 로스와 존 매킨타이어 그리고 한국인 이응찬, 백홍준, 김진기, 서상륜, 이성하, 이익세 등이 번역에 참여하여 1887년에 만주 성경(盛京, 현재의 심양)의 문광서원에서 발행한 한글신약전서

백홍준은 의주에서 활발하게 전도하고 예배드렸고, 그는 그 후 언더우드의 조사가 되어 의주 교회를 설립하고 한국 복음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조선에서 무시되던 언문(言文)의 글이 선교사의 성경 번역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과 모든 한국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세계적인 한글이 보급되는 길을 연다. 존 로스는 번역과 인쇄를 통해 사대부와 민중 사이의 벽을 허는 일을 하였고 조선의 글과 말을 배울 수 있는 길을 제공하는 큰 축복을 주었다(헨리 A. 로데스). 그래스고우 대학과 에딘버러 신학대학을 졸업한 존 로스는 1872년 중국 선교사로서 랴오닝성 잉커우(영구)에 파견된다. 그 후 선양으로 옮겨 그는 동문관 교회를 설립한다. 1878년 서상윤과 서상우(서경조) 형제를 만나서 선교 병원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죽어가는 서상윤을 고쳐주고 세례를 줌으로써 최초의 조선인 개종자가 되었고 누가복음을 조선말로 번역하게 된다. 동생 서경조는 조선으로 귀국하자 말자 로스 성경 번역과 출판 사업을 적극 돕게 된다. 이 번역 과정에서 존 로스는 조선의 글자는 현존하는 문자 가운데서는 가장 완전한 문자다고 밝히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존 로스와 그의 한국인 도우미를 통해 한국 땅에 빛의 복음이 전해지며 진리가 전파되는 통로를 열게 된 것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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