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 (353) - 구약성경과 선교이야기 (165)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전 강서대 총장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전 강서대 총장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아도나이 야딘 아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샤프테니 아도나이 케찌드키 우케투미 알라이)”(7:8).

오늘의 세계는 이전에 지구촌의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며 현대(現代)를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인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않는 문명의 이기를 통한 고통의 질이 더 가중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임 로 야슈브 하르보 일토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콰쉬토 다라크 와예코네네하)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웨로 헤킨 켈리 마웨트)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히쨔이오 레돌킴 이프알)”(7:12-13). 오늘의 심판과 하나님의 권능있는 불화살의 현실은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 탄식의 엄청난 소리가 나고 있으며 이 재앙의 소리가 우리의 귀전에 지금도 들리고 있다. 시편 7편의 시인은 원수들에게 쫓기고 있다고 토로한다.

“(다윗의 식가욘,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따라 여호와께 드린 노래)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쉬가이욘 레바위드, 아쉐르 샤르 라도나이 알 디브레 쿠시 벤예인니)(아도나이 엘로하이 베카 하시티)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호쉬에니 미콜 로드파이 웨하찔레니)”(7:1). 시편 4편과 5편의 시인의 고난은 적대자들의 거짓 고소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시편 7편은 억울한 시인의 시점으로부터 비롯되어 자신의 무죄함을 호소하며 고백하는 모습이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아도나이 엘로하이 임 아시티 쪼트)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임 예쉬 아웰 베카파이 임 가말레티 쇼레미 라와아) 내 대적에게서 까닭이 없이 빼앗았거든(하렐짜 쪼르리 레쾀)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이라도프 오에브 나프쉬 웨아세그 웨이르모스)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라아레츠 하야이 우케보디 레아파르 야쉬켄 셀라)(셀라)”(7:3-5). 1권 시편 3-14편이 한 단위로 하나님의 부재라는 주제 하에 첫 부분(3-7)과 셋째 부분(9-14)이 위치하여 전체 구조의 중간에 시편 8편 창조시(여호와 왕)이라는 중심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되며 좌우 대칭의 수미상관 구조를 형성한다. 시편의 1권 초반부 시편에서 탄식시(1-7, 9-14)와 하나님의 부재(3, 14), 의로운 재판관(7, 9)로 형성하고 있다.

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이 만민을 심판하실 뿐 아니라 자신의 무고함을 판단하실 분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엘로힘 쇼페트 짜디크 웨엘)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조엠 베콜 욤)”(7:11). 이 재판관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실 재판관(1:5-6)이며, 시편 2편에서는 하나님이 우주적 재판관으로 등장한다(2:10). 여기서는 시인의 정당성과 성실함을 입증하실 재판관으로 나타난다(7). 시인(의인)은 악인들과 관계에 있어서 다양한 고통(원수 쫓김, 부자들의 억압, 거짓 고소, 죄로 인한 질병걸림)중에서 하나님께 도움과 구원을 간청한다. 시편 7편은 탄식과 고통의 터널을 지나가면서 하나님을 불신하기보다 신뢰하는 모습을 보인다.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이게마르 나 라 레샤임 우테코넨 짜디크)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우보헨 리보트 웨라이요트 엘로힘 짜디크).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마기니 알 엘로힘 모쉬아 이스레 레브)”(7:9-10).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당하는 우리의 문제가 영적인 문제에 있다는 생각을 하며, 그 자각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저 원수와 대적자, 악인이라는 존재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히네 예하벨 아웬 웨하라 아말 웨야라드 샤케르)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보르 카라 와야흐페레후 와이폴 베샤하트 이프알)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야슈브 아말로 베로쇼 에알 콰드코도 하마소 예레드)”(7:14-16). 이 시인은 너무도 신랄하게 악의 실체와 악인의 형편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신약의 성령의 실재와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마주하면서 제기되며 우리는 이것이 인생의 영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또 그 실제에 부딪히게 된다. 그래서 영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된다. ‘살리는 것은 영이요 주의 말씀이라는 사실과 예수의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게 된다(요한 6:63-64). 이러한 복음의 삶을 알고 깨닫고 영적으로 살아간 분들이 있다.

레이놀즈(William Davis Reynolds, 이눌서(李訥瑞), 1867.11.12.-1951, 노스캐롤라이나)선교사는 성서 번역사이자 교육자, 신학자였다. 그는 평양을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하며 미 남장로교 개척 선교사 7인 중에 한 분으로서 성경 번역에 크게 헌신하였다. 그는 햄펀 시드니 대학을 최우등(Summa cum Laude)으로 졸업하고 한국에 와서 전라북도 전주시에 전주 신흥고등학교를 설립한다. 그는 이름에서도 알 듯, 이눌서, 어눌한 사람으로서 진주 홀을 쥔 사람이라는 뜻으로서, 모세와 같은 인물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짓는다. 그는 언더우드와 제일스 게일 선교사와 같이 성서 번역을 하며 호남 복음화의 아버지로 활동한다. 한글 번역에 10년 이상을 헌신하며 성경전서 발행하는데 그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레이놀즈 선교사는 18925월 볼링 선교사와 더불어 동일한 비전을 가지고 결혼하여 선교사로 나온다. 한국 선교의 동기는 1891년 테네시 주에서 열린 선교 대회에서 언더우드와 윤치호의 강연을 듣고 감동을 받고 그 때에 선교사로 자원한다. 그는 언더우드의 일가의 재정 지원(3000)을 받고 선교사로 파송되기를 결정한다. 이렇게 하여 189211월 레이놀즈 부부는 한국에 도착하게 된다. 그들은 군산항에 도착하여 전도하며 전주, 김제, 영광, 함평, 무안, 남해, 순천 등 남부 지방을 순회하였다. 특히 고흥에 복음을 전하여 첫 신자 신우구(한의사)에게 세례를 주었고 1906년 교회가 설립되게 한다. 후에 신우구 아들 신상휴와 서서평 선교사의 수양 딸 곽애례가 혼인하여 기독교 가정이 탄생하게 된다.

레이놀즈 미국남장로교회 7인 선교사 사진. 레놀즈 부부(가운데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전킨 부부, 테이트 부부, 린나 데이비스와 장인택 조사(맨 왼쪽)
레이놀즈 미국남장로교회 7인 선교사 사진. 레놀즈 부부(가운데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전킨 부부, 테이트 부부, 린나 데이비스와 장인택 조사(맨 왼쪽)

이눌서 선교사는 서울에 거주하면서 성경 번역 사업에 참여한다. 1897년 전주로 파송되어 전주 서문 교회 2대 목회자로 시무하게 된다. 후에 안식년을 다녀온 후에 목포로 전임하여 목포 목회와 전도 활동을 하며 성경 번역일도 감당한다. 갑작스럽게 1902년 아펜젤러가 순교하는 바람에 성서 번역을 전담하기 위해 서울로 이전한다. 그는 승동교회를 맡아 4년간 목회를 하면서 연동 교회(안식년 제임스 게일)17개월 맡기도 한다. 이눌서 선교사는 교단을 뛰어 넘어 선교를 하였고 성서 번역이 마무리 되면서 서울을 떠나 또 땅 끝 마을 호남 지방 복음화를 위에 군산(1908년 군산)에 가서 영명학교를 설립하고 동료 선교사 전킨이 소천하자 2월 전주에 와서 서문 교회와 인근 지방 교회를 섬긴다. 그는 뛰어난 언어적 능력으로 한글 성서번역 사업에 참여 하여 많은 공헌을 한다. 1893년 상임 성서 실행위원회를 설치하는데 기여하였고 1895년 성경 번역위원으로 활동하며 각 교파별 성경 번역 위원을 선정하여 체계적으로 번역 활동을 진행하였다. 그는 게일과 함께 성경 번역을 끝까지 마무리 하였다. 하나님의 선교는 레이놀즈 선교사의 삶을 통하여 알려졌고, 우리 선교 지원자들이 어떻게 선교를 해야 하는지 알게 한다. 한국의 선교는 이러한 영적 거장들에 의해 열렸고 또 그 빛의 복음이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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