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전태규 목사】 재무부가 하나님이여!

  • 입력 2024.07.3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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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감리교회는 당회, 구역회, 지방회, 연회, 총회 이렇게 다섯 개의 의회가 있다. 그 중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 당회인데, 일 년에 한두 차례 당회를 통하여 임원을 선출하고 속회(구역)를 개편하고 부장을 뽑고 기관장을 인준하게 된다.

나는 목회자의 아들로 자라났기 때문에 당회 때마다 어머님이 마음 졸이시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아왔다. 예부터 내려오는 말 중에 '당회 마귀가 있다'는 소리까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성도들 중에 다른 부서에는 도통 관심이 없으면서 유독 재무부에만 큰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재무부원이 되려면 믿음도 좋아야 하고, 헌금 생활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며, 말도 아낄 줄 알아야 한다. 또 기쁜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도록 성도들을 북돋워 줄 수 있어야 하고, 나아가 교회 재정이 부족할 때에는 앞장서서 채울 줄 알아야 진짜 재무부원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에는 관심 없고, 재무부원이 되는 것이 무슨 큰 벼슬이라도 되는 양 착 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옛말에 '제사에는 관심 없고 제삿밥에만 관심 있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런 데다 쓰는 말이 아닌가 싶다.

오래 전, 아버지가 논산 지역에서 목회하실 때의 일이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면 재무부 사람들은 항상 주택 건넌방에 와서 회계 정리를 하였다. 부임하여 첫 주에 식사 대접을 하게 된 것이 두 번째 주부터는 안 하는 게 어려워져 계속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는 항상 점심 식사 차리는 일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 시골에서 주말 마다 음식을 차려 낸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어느 주일엔가는 꾀가 나서 가만히 계셨다고 한다. 회계 정리가 끝나면 집에 가겠지 하는 마음에서다. 그런데 재무부원들은 매주 식사하던 습관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일이 다 끝났는데도 졸고 있을망정 갈 생각을 안하였다. 안 그래도 마음 불편하게 계셨던 어머니는 급히 부엌으로 가서 식사 준비를 하셨다. 그 후부터는 꾀가 통하지 않는 것을 아시고는 아예 해야 하는 일로 여기시고 매주 봉사하셨던 기억이 난다.

어려웠던 시절의 한국 교회 실상은 참으로 비참하였다. 특히 농촌교회는 재정이 더 어렵다 보니 정해진 생활비를 제때에 못 주고 매주 나누어 주곤 했다. 때문에 자녀들 등록금이 나오거나 가정에 급한 일이 생기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평생을 이렇게 생활해 오신 어머님은 은퇴하신 후에도 가끔씩 "재무부가 하나님이여!“라고 말씀 하신다.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삶의 무게가 느껴져 힘없는 웃음이 나온다. '그동안 걸어오신 목회의 길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셨을까? 를 생각하면 아들로서 마음이 아프다.

나도 교회 개척을 하여 오늘에까지 이르렀지만, 재정이 부족하여 차용까지 해 주는 재무부는 거의 없었다. 이제는 한국교회들이 좀 더 성숙해져서 진정 봉사하는 청지기로 거듭나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주여! 지난날 주님의 사역을 위해 고생을 기꺼이 감수했었던 저들에게 이제 편안한 삶으로 보상해 주시고, 후손된 우리는 사명을 위해 더욱 일하는 지체들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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