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하나님은 죽었다”는 당시 부패한 교회의 죽음

                      이이삭 목사 (Azusa Pacific Univ. Calvin Theological Sem.)

 

스칸다나비아 정신의학회지(Acta Psychiatrica Scandinavica)에 독일의 신경의학자 올쯔에 의해 쓰여진 논문 “니체의 정신병” (Friedrich Nietzsche's mental illness – general paralysis of the insane vs. frontotemporal dementia Dr M Orth, Department of Neurology, University Hospital Eppendorf, Martinistr, 20, 20246 Hamburg, Germany) 에 의하면 1889년 당시 44세의 니체가 바젤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1900년 8월 25일에 55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고통 받던 그의 병명이, 알려진 것처럼 매독 후기 단계인 대뇌 마비로 인한 신경장애가 아니라 전두측두엽신경장애 (frontal temporal lobe) 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비슷한 이론으로 2003년 레오날드 섹스(Leonard Sax) 박사가 의학저널에 정교한 연구와 함께 “니체의 치매 원인은 무엇이었나?”(Journal of Medical Biography, vol. 11 What was the Cause of Nietzsche's Dementia?)에서 니체의 정신병인은 천천히 발달하는 뇌종양이라고 주장한바 있다.

니체의 병인(病因)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남긴 많은 저작들의 모호한 의미와 해석에 끝없는 논쟁들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 배후에 신경장애의 영향이 부정적 또는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더구나 니체의 아버지 루트비히 니체(Carl Ludwig Nietzsche,1813-1849) 역시 루터교회 목사였으나 니체가 겨우 5살이었을 때 뇌질환으로 35세에 유명을 달리했던 그의 가족력을 무시해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니체 역시 아버지와 같이 빨리 죽게 될 것이라는 심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반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가 화폭에 그려냈던 신비한 색채와 역동적인 사물의 선이 스스로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갈 수 밖에 없었던 신경장애로 인한 고통의 산물이었던 것처럼 니체의 작품을 접할 때 마다 보통 인간의 이성으로 들여다 볼 수 없는 심연의 깊은 곳을 회화적으로 표현해 내는 니체철학만의 치명적인 매력과 중독성의 원인을 같은 맥락에서 추론하고 싶은 생각을 떨쳐내기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니체가 정신병원에 요양중인 모습

니체는 탁월한 학구력으로 본대학에서 신학과 고전철학을 연구했고 리출(Albrecht Ristschl, 1822-1889)의 제자가 되어 그를 따라 라이프찌히 대학으로 옮겨 학문의 폭을 넓혀갔으며, 그 결과 24살의 최연소 나이로 바젤대학의 문헌학 교수로 임명된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임용으로 단순히 그의 연구실적의 평가였다는 사실은 그가 학계에 얼마나 장래가 촉망되었던 유망주였는가를 잘 말해준다. 그랬던 그의 벅찬 희망도 잠시, 겨우 십 여년의 교수 생활 끝에 병약한 건강으로 퇴직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적은 연금에 의존해 외롭고 고독하며 고통스러운 삶의 여정 속에서 대부분의 저작들이 탄생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저작은 당시 학계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했으며 종교계와 도덕주의자들로 부터 당연히 혹독한 비판을 받았으나 사후 그의 철학은 유럽의 철학과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 19세기 최고의 철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 1939)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등과 함께 근대철학을 전복(subversion)시킨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특히 "하나님은 죽었다"는 이 한 구절은 그의 대명사로 실로 오랫동안 잘못 인용되거나 오용되어져 온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신성모독이며 불신앙과 무신론의 상징어가 된 것이다. 그러나 한걸음 더 들어가 이 구절의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이 한마디의 의미를 곱씹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은 죽었다. 하나님은 죽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안식을 얻을 것인가? / Gott ist todt. Gott bleibt todt. Und wir haben ihn getodtet. Wie trosten wir uns, die Morder aller Morder?”

1882년에 저술한 그의 저작 즐거운 지식(Die frohliche Wissenschaft-The Gay Science ) 중에서 , 그것도 사뭇 불길한 아이러니(tragic irony)로 저자와 대비하게 되는 한 광인(The Madman )의 입을 통해 외치게 했던 선언이다. 물론 그는 짜라투스트라(Spoke Zarathustra )를 통해서도 동일한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어쨌든 광인의 입에서 나온 말 일지라도 어법상 분명한 의도는 하나님이 존재하시지 않는다는 무신론이 아니라 사람들 편에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탄식,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죽인 것과 같은 형국이 되었다는 일방적인 비존재의 황망함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없다는 신정의(神定義)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했던 기준이 붕괴되므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존재가 무의미하게 되었다는 뜻이며 더 나아가 우리가 믿었던 우리식의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심장한 표현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18세기 후반부터 유럽을 풍미한 계몽주의사상은 결국 신의 죽음으로 결론을 내게 되고 실존주의에 탑승한 인류가 합리적인 이성을 가지고 합리적인 사유를 통해 다다르게 되는 종착지는 어디일까? 그 곳은 다름아닌 유물사관이며 무신론이며 허무주의일 뿐이다.

니체는 그 종착점을 이미 예상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삶과 가치를 개척해 나가야 하며 이 새로운 프레임(new frame)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질서를 해체(deconstruction-Jacques Derrida,1930-2004)해야하고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 해석학(Philosophical hermeneutics)을 발전시켜나가며(Hans-Georg Gadamer1900–2002) 실증과 역사(Auguste Comte1798–1857)를 대비시켜 구멍 뚫린 형이상학(Metaphysica)을 겨우 과학적 설명과 지식으로 메꾸어 새로운 존재로 나아가고자 하는 몸부림이 바로 현대사조의 흐름이 아니었던가?

어쨌든 니체는 마치 바둑의 몇수 앞을 내다보고 선수를 치듯이 결국 현대철학이 맞닥뜨리게 될 허무의 늪에 이미 서서 광인의 입을 통해 신을 죽인 인간들이 가야 할 험난한 인간 스스로의 자아 정체성의 (Identity)의 방황을 우려하면서 모호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으로, 광인을 통해, 짜라투스트라를 통해, 또는 비극의 탄생(Die Geburt der Tragödie aus dem Geiste der Musik, 1872)을 통해 , 마치 현대인에게 성경을 쓰듯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초인(übermensch-극복하는 사람)을 내세우며, 삶과 생명을 내세우며, 윤회까지 들먹이며 가히 망치를 든 철학의 선지자로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작금 동서양을 막론하고 니체가 재조명 받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포스트모더즘의 탈중심적, 다원적 사고는 현대사회의 모든 사회구조, 가정, 학교, 직장, 조직, 예술계 뿐 만 아니라 가톨릭교회, 개신교회에 까지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철학을 그저 철학으로 치부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언제나 한시대의 철학은 마치 공기처럼 모든 영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남북으로 갈라져 신음하는 이유, 오늘날 매일처럼 좌파-우파, 종북-친북 논쟁을 하며 이 작은 나라가 세대를 걸쳐가며 정치적, 이념적 열병을 앓아야 하는 이유는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1770~1831)의 관념론적 변증법과 포이에르바하(Feuerbach, Ludwig,1840-1872)의 유물론을 마르크스(Karl Marx1818-1883)와 엥겔스(Friedrich Engels,1820-1895)가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발전시켰으며 이것을 레닌과 스탈린이 계승하여 정치철학화한 질긴 망령이 아닌가?

이 마르크스적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분쟁이 냉전시대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으며 얼마나 많은 비극과 악을 양산해 내었는가? 니체도 마찬가지다. 니체에게 그런 의도는 없었겠으나 그의 디오니소스적(Dionysostic)인 초인사상이 히틀러에게 많은 영감을 준 것이 사실이며 히틀러 한사람의 사상에 의해 독일민족 전체가 집단 감염되었고 또 다른 한 민족 유태인은 600만 명이나 희생되어야 했으며 그의 광인적인 집념 때문에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이 유럽 뿐 아니라 전 세계, 전 민족에게 얼마나 크고 깊은 상처를 주었는가?

이는 결코 단순한 비약이나 가설이 아니다. 현실이며 팩트인 것이다. 이것은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실과를 먹은 인류의 비극 (창세기3:6), 철학의 독한 바이러스이다. 인간 스스로 지혜롭게 된 듯 착각하게 만드는 철학의 독,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얼마든지 신념 있고 멋진 광인이 될 수 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된다” 는 창세기 3:5절 사단의 유혹은 우리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 된 것이며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을 따라 선악과를 먹은 사건은 결국 최초의 “하나님은 죽었다” 는 인간의 철학적 선언이었던 셈이다.

그뿐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어떤 것인가?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만의 왜곡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죽게 한 것이다. 성경에 그렇게 많은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그렇게 세밀하고 자세하게 그렇게 친절하게 메시야의 오심을 예고했으나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하나님, 자신들이 이메이징(imaging) 한 메시야로 채워진 그들의 눈에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는(이사야53:2) 초라하고 무능한 예수를 메시야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라고 외쳤고 결국 인류는 다시 한번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죽으신 하나님을 선언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죽음을 선언한 광인의 다음 행동에서 진실로 가슴을 칠 수 밖에 없게 된다. 같은 날 광인은 여러 교회(divers churches)에 들어가 레퀴엠 “영원하신 하나님(aeternam deo)”을 노래한다. 그리고 "이 교회들이 오늘 하나님의 매장지나 무덤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냐?"("what are these churches now if they are not the tombs and sepulchres of God?")고 힐문한다.

니체는 분명히 광인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죽으심을 선언하게 된 근원지를 교회로 포인팅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은 그냥 생성되지 않는다. 시대사고의 반영이다. 종교개혁 후 3백여년어간의 당시교회는 부패한 성직자들로 넘쳐났다. 물질주의 기복신앙으로 성경을 왜곡했으며 정치를 등에 업고 권력을 행사했다. 당시 많은 지성인들은 부패한 교회를 향해 하나님은 죽었다는 표현을 이미 쓰고 있던 터였다. 따라서 광인이 연주한 레퀴엠은 그들이 예배하는 하나님, 금송아지처럼 우상화되고 변질된 하나님의 죽음을 상징하는 비극적인 음악이었던 것이다.

레퀴엠(Requiem)은 기독교에서 죽은 이를 위해 연주하는 곡으로 미사 통상문(Kyrie,Gloria, Credo,Sanctus,AgnusDei)과 함께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aeternam dona eis Domine)로 시작하는 진혼곡이다.

광인의 레퀴엠, 니체다운 극적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철학자이면서 상당한 경지에 이른 음악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을 가장 중요한 철학적 반성의 주제로 삼았으며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영향을 받아 바이올린과 피아노곡, 성악 및 합창곡 다수를 작곡했다. 특히 오케스트라와 합창으로 작곡된 “삶의 찬송가 (Hymnus an das Leben )” 는 자신의 철학적 투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존경스러운 것은 그렇게 어려운 고난과 역경속에서, 삶을 포기해야 할 고통과 정신적 질병 속에서, 결코 삶의 냉소나 허무를 표현하지 않고,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삶은 진실로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메세이지를 곡 전체에 정중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는 그냥 앉아 오선지에 써 내려간 찬송가가 아니라 그의 비극적이고 뒤엎어진 삶을 통째로 녹여낸 염세와 허무주의에서의 뼈저린 극복이며 자신의 철학에 완성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그가 광인을 통해 교회에서 연주한 레퀴엠은 그래서 더욱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불행하게도, 한국교회의 위엄 있고 당당한 건물 속에서 화려하고 장중하게 자리 잡고 있는 파이프오르간 앞에서 아니, 나의 위선적인 신앙양심 앞에서 광인의 레퀴엠을 듣고 있지 않은가? 니체가 혹 광인으로서 내뱉은 한마디 말일지라도 발람이 당나귀의 충고(민수기22:30)를 들은 것처럼 다시한번 되새겨 듣고 곱씹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지...광인이 불렀을 레퀴엠의 애테르남(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을 들으며 새삼 무거워진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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